배우 홍경. 사진. 구혜정 기자
배우 홍경.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영화 ‘결백’에서 홍경이 보여준 연기는 기대 그 이상이다. 안방극장에서 눈에 띄는 신예로 주목받았던 그는 영화 ‘결백’에서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정수로 분하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스크린을 장악한 그의 세밀한 표정 연기는 홍경이라는 배우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첫 상업영화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친 홍경. 그의 존재감은 20대 배우 중 단연코 돋보인다. 틀에 박히지 않은 배우를 꿈꾸는 홍경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Q. ‘결백’을 통해 스크린에 정식 데뷔하게 된 소감은.
홍경:
제게 정말 뜻 깊은 작품이에요. 무엇이든 첫 단추를 꿴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잊히지 않잖아요. ‘결백’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그 안에서의 제 역할, 그 모든 것들이 여느 작품보다도 특별했어요. 이런 캐릭터와 이런 소재가 첫 데뷔작이 돼 정말 좋아요.

Q. 자폐성 장애를 겪고 있는 정수를 연기 하면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나요.  그러한 캐릭터를 어떻게 준비해나갔는지 궁금해요.
홍경:
제가 연기하면서 중점을 뒀던 것은 ‘잘하자’는 것보다 실제로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나 그 주변 분들이 제 연기를 보시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이었어요. 제 바람이자 목표이기도 했죠. 그렇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분들의 특징적인 행동이나 움직임은 제게 있어 우선 과제는 아니었어요.

이분들의 마음에 중점을 두고 매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마음으로 이해하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향이 잡혔어요.

배우 홍경. 사진. 구혜정 기자
배우 홍경. 사진. 구혜정 기자

Q. ‘결백’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난장판이 된 집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정수의 모습부터 극에 확 빠져드는 느낌이 들던데요.
홍경:
제 첫 촬영이 바로 그 신이었어요. 이렇게나 많은 선배님들과 한 자리에 모인 것도 처음인데다 첫 영화의 첫 촬영이다 보니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더라고요. 주변 배우들에게 정수라는 캐릭터가 보일 수 있도록 연기를 해야 했는데, 어렵고 긴장되더라고요. 하지만 이어서 장면을 촬영하다보니 저 역시도 좋은 에너지를 받았고,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장면이어서 상황 자체가 주는 몰입감이 대단했어요. 긴장은 됐지만 제게는 좋은 경험으로 남았죠.

Q. 정수가 누나 정인(신혜선)에게 “누나는 왜 같이 안 살아?”라고 물어보는 장면 역시 그의 감정에 동화되는 듯했어요. 함께 합을 맞춘 신혜선 역시 그 장면에서 홍경에게 압도됐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죠.
홍경:
에이, 사실 그 장면은 누나가 다 만든 거예요. 누나와 정수의 관계가 잘 보이는 장면인 만큼 중요한 신 중 하나인데, 누나가 정말 잘 챙겨주셨어요. 제가 어떤 연기를 해도 누나가 그에 맞는 리액션을 해주신 덕에 저는 오롯이 저로서 연기할 수 있었거든요. (신)혜선 누나는 워낙 집중을 잘 하시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누나가 만든 공기에 몰입되면 저 역시도 동화되곤 했어요.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Q. 정수가 누나 정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도 궁금해요. 호송차 신에서는 누나를 낯설어 하지만 이후에는 누나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죠.
홍경:
정수에게 가족은 전부예요. 그러니까 누나 역시 정수에게는 가족이고, 지켜야 할 인물인 셈이죠. ‘가족이란 지키는 것’이라는 말이 몇 차례 나오는데, 그만큼 정수는 가족에 큰 애착을 가진 인물이에요. 저 역시도 누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감정이 올라왔어요. 떨어져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가깝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가까운 관계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정수 역시 누나와의 거리가 점차 좁혀진 것 같아요.

Q. 법정 신이나 여러 신에서 정수로서 선배 배우들과 유기적으로 호흡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았어요. 어려웠겠지만 좋은 배움의 장이 됐을 법한데.
홍경:
법정 신은 정말 어려웠어요.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긴장이 돼 준비를 열심히 했죠. 그 장면은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도 막히면 촬영 전체에 피해가 가는 상황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집중하려 했고요. 선배님들이 많은 배려와 이해를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배종옥 선배님은 아이디어를 먼저 제시해 주시고 자유롭게 여러 연기적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해주셨죠. 리허설을 맞춰보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젊은 배우 입장에서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배우 홍경. 사진. 구혜정 기자
배우 홍경. 사진. 구혜정 기자

Q.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갚아주는 건 정수의 인상적인 모습 중 하나였어요.
홍경:
사실 그 대목은 소모적으로 웃기기 위해 만든 신이라기보다는 정수의 캐릭터가 보이는 부분이이에요. 엄마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보여줄 정도로 정수는 엄마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엄마에 의지하는 인물이거든요. 어머니의 말이 곧 삶의 규칙인 거죠. 그런 장면들이 정수의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장면이 됐어요. 감독님께 정말 감사한 신이에요.

Q. 연기에 있어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낸 부분이 있었나요.
홍경:
그 부분은 제게 늘 큰 고민이었어요. 소통하면서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지만 연기로 제 생각을 보여드리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이 어떤 것을 말씀하시면 제가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걸 연기로서 보여드리려 했어요. 감독님의 요구와 제가 생각한 정수를 잘 섞어서 유기체처럼 표현하도록 노력했어요. 

Q. 선배 배우들과 호흡하며 배운 점들도 많을 것 같아요.
홍경:
정말 많았어요. 혜선 누나는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셔서 누나를 믿고 누나가 만든 길을 그냥 걸어가기만 하면 됐어요. 그 정도로 집중도가 좋으시고 상대 배우를 배려해주시는 분이에요. 배종옥 선배님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주셔서 감탄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선배님의 신이 아니어도 제가 연기하는 장면들을 봐주시고 여러 조언을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허준호 선배님은 정말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분이신데 슛만 들어가면 무서운 카리스마를 보여주셔서 놀라웠어요. 감탄할 수밖에 없었죠. 태항호 형은 유연함 그 자체여서 어떤 상황, 어떤 디렉션에도 그에 맞게 변화하셨어요. 그 덕에 저도 항호 형과 함께 하는 장면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Q. 그래서일까요? 극 중 정수와 양순경(태항호)의 호흡이 눈에 띄었어요. 의도치 않은 콤비와도 같았죠.
홍경:
항호 형님은 어떤 것도 다 받아주셨어요. 법정 신 중에서 모두가 착석하는데도 정수 혼자 기립해 있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그 부분은 시나리오에 나와 있지 않았어요. 제가 서있겠다고 의식한 게 아니고 정수의 세계에 빠져있어 그냥 계속 서있었거든요. 그런데 항호 형이 그걸 받아주셔서 그 부분이 살아날 수 있었어요. 감사함이 컸죠.

배우 홍경. 사진. 구혜정 기자
배우 홍경. 사진. 구혜정 기자

Q. 연극 무대에서의 즉흥연기가 스크린에 도 담긴 셈이네요.
홍경:
맞아요. 저는 매번 달라지는 생동적인 연기를 좋아해요. 현실에서의 저희도 똑같은 말을 늘 다르게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 역시도 매 테이크마다 연기를 다르게 하고 싶었다는 열망이 컸어요. 선배님들이 그런 연기를 해주셔서, 저는 이번 현장이 꼭 ‘고농축’으로 교육을 받는 학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웃음).

Q.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가장 좋은 교육은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거죠(웃음).
홍경:
그 덕에 정말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선배님들이 잘 만들어주신 길 위에서 선배님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정말 좋았거든요. 반면에 그래서 더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요. 제가 극을 망치거나 흐름을 방해할까봐 걱정이 컸지만 선배님들께서 열린 마음으로 경험이 부족한 저를 이해해주시고 감독님 역시 용기를 북돋아주셔서 감사했어요.

Q. 스크린에서는 이제 첫 데뷔작이지만 그동안 안방극장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어요. ‘학교2017’과 ‘저글러스’, ‘라이브’와 ‘라이프 온 마스’ 등을 거치며 ‘결백’에까지 이르렀죠. 그동안 가장 많이 배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홍경:
저는 아직도 느리게 걸어가는 느낌이에요. 아직도 모든 게 다 처음 같고, 긴장감을 느끼곤 해요. 하지만 그건 나쁜 긴장감이라기보다는 연기에 도움이 되는 긴장감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해 제 연기에 도움이 되게 하려고 노력해요. 늘 일정한 자신감을 갖고 싶어서 그 감을 익히고자 연습하고 있고, 극 중 인물로서 온전히 연기할 수 있게끔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지금도 열심히 배워가는 단계예요.

Q.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 있을 것 같아요. 연기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홍경:
유연함이에요. 어떤 포지션에 투입돼도 제가 가진 것들을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다방면에 꼭 맞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제 의견을 내보이는 것도 좋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시는 감독님과 선배님들이 뭔가를 말씀하실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제가 가진 것과 섞어서 시도해나가는 게 어려우면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배우 홍경. 사진. 구혜정 기자
배우 홍경. 사진. 구혜정 기자

Q. 흔히들 배우들은 연기란 참 어렵지만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말을 하곤 해요. 배우로서 홍경은 연기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요?
홍경:
하나만 꼽긴 어려워요. 다만 제가 지금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연기를 하면서 저에 대해 알아가고 제 안에 닫혀 있던 부분을 하나하나 열고 환기시키는 게 정말 매력적이라는 점이에요. 막힌 것들을 뚫어나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연기에 있어서는 열린 자세가 더더욱 중요하다 느끼고 있어요.

Q. 앞으로 하고 싶은 장르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을 것 같아요.
홍경:
특정 작품을 정해 두지는 않았어요. 하나를 정하면 그것만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자칫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놓칠 수 있으니까, 열린 자세로 어떤 작품이든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자는 마음이 가장 커요. 다만 한 가지 갖고 있는 생각은, 지금 우리 세대의 초상이 담긴 20대 중심의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밝은 면 외에도 어두운 면이 담긴 심도 깊은 작품이 있다면 꼭 참여해보고 싶어요. 틀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20대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어요.

Q. 배우로서 가진 방향성으로도 느껴져요.
홍경:
맞아요. 제가 늘 생각하고 추구하는 바가 있어요. ‘먼지 한 톨 없는 곳에서 연기하는 배우도 되지 말고, 너무 거품 많은 곳에서 연기하는 배우도 되지 말자’는 건데요, 저는 적당히 균형을 지켜가며 제가 해야 하는 연기와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나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 안에서 제가 가진 것들을 표현하는 배우라면 더욱 좋겠죠? 그리고 20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의 영역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연기는 30대부터’라는 말이 있지만, 20대 때 할 수 있는 연기를 유연하게 해나가고 싶다는 바람이 커요. 틀에 갇혀있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배우가, 지금의 제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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