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배우 유아인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붙곤 한다. 그 중 일부에는 배우로서의 그에 대한 찬사를, 또 다른 일부에는 이슈 메이커로서 그가 보인 행보에 대한 평가가 담겼다. 하지만 몇 번의 변곡점을 지나 그는 이제 자연스럽게 세상의 흐름에 그냥 자신을 내던지기로 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유아인의 변화는 여기서 출발한다. 격동의 시기를 지나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된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유아인’답게 생동하고 있다.


Q. 어려운 시기에 영화 ‘#살아있다’를 선보이게 됐어요. 다행스럽게도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죠.
유아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분들에 공감대를 드릴 수 있을만한 영화 같아요. 너무나도 어려운 시기에 개봉하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나 그 시의적절함을 달갑게 표출할 수만은 없는 묘한 감정을 느껴요. 그저 재미있게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Q. 초반부터 홀로 극 흐름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점에선 부담감도 컸을 것 같아요.
유아인:
부담은 됐지만 오히려 그 부담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됐어요. 배우로서 도전의식을 자극하게 하는 영화니까요. 장르의 특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인물이 해내야 하는 역할이 강한 만큼 도전하면서 돌파해나가고 싶었죠. 촬영하는 내내 초반부에 만들어진 호흡을 고려하려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집본을 받아보며 흐름을 이어가려 했고, 중요한 장면은 집에서 혼자 리허설을 해본 뒤 감독님께 보여드리는 등 호흡을 조절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했어요.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Q. 일상적인 연기가 돋보였어요. 그래서 준우의 감정이 변화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따라가게 됐죠.
유아인:
크게 튀지 않는 옆집 청년 모습을 상상하며 연기했어요. 평범한 인물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만큼, 일상적 모습에서 극한의 감정까지 이어지는 모습이 리드미컬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려지길 바랐죠. 편안함이라는 키워드를 중점적으로 생각하면서 귀염성을 가진 친구처럼 보이고 싶어 연기에도 신경을 더욱 썼어요.

Q. 일반적으로 좀비 영화에서는 발생 근원이 명확하게 나오고 이를 구제하는 모습이 나오곤 하는데 ‘#살아있다’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더군요.
유아인:
그게 명확해지면 준우가 느끼는 공포나 막막해 하는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뉴스에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지 못 하는데, 사실 이미 벌어진 상황에 대처하며 살아가는 게 현실적인 거잖아요. 그리고 영화에는 ‘좀비’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고, 기존 작품과는 다른 좀비의 설정도 있었어요. 그 점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왔고, 차별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집 안에서 혼자 생존을 위해 사투하는 것을 보며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고 있는 현재의 시국이 떠올랐다는 관객들도 많아요.
유아인:
많은 분들의 심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시대는 이전과 달리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삶이 무엇인지 인지하며 살 수밖에 없게 됐다고 생각해요. 고립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준우의 모습이 인간으로서 살아있다는 걸 보여줘서 더욱 큰 공감대로 이어지는 것 같고요. 극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영화를 보니 더욱 찡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영화가 가진 이야기 외적으로 관객과 함께 호흡하면서 만들어지는 감정들이 강하게 와 닿는다고 느껴졌어요.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Q. 극 중 준우의 오열은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어요.
유아인:
사실 시나리오에는 그 정도로까지 표현돼 있지는 않았어요. 제가 조금 더 욕심을 낸 부분인데, 우려를 보이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꼭 그 감정에 도전해보고 싶었죠. 계산된 흐름에서의 감정은 아니었어도 고립된 인간이 절망의 끝까지 내몰렸을 때의 감정이 배설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Q. 이미 그려진 흐름과 반하는 내용을 제시한 셈이네요.
유아인:
감독님께도 의견을 피력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계산돼 있지 않았던 감정인만큼 전날 리허설을 통해 감독님께 제 생각을 말씀드리며 논의를 가졌죠.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역할을 가진 창작자잖아요. 그런 만큼 어떤 장면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그 모든 과정이 도전이라 생각해요. 저는 사실 의견을 잘 내세우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용기를 내 이야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이번에는 다행히 감독님이 잘 받아주신 덕에 그 장면도 나올 수 있었죠.

Q. 용기를 내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유아인:
과거에는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어차피 난 배우고 이게 온전히 내 영화는 아니다’는 생각을 가졌었어요. 배우의 일은 능동적이기보다는 이미 그려진 것을 수행해내는 건데, 어디까지가 제 영역인지 명확하지 않은 만큼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제 의견을 꺼내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공통된 목표가 있는 사람들끼리는 새로운 의견이 나와도 매듭이 지어질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시도해보는 재미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Q. 작품 전체를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유아인:
이 영화에서 필요한 나의 역할을 더 생각해보게 되는 거죠. 영화가 추구하는 그림이 명확하지 않다면,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호흡 안에서 새로운 그림이 생겨나는 것을 조율하며 매 순간에 임하는 게 좋겠다 싶었거든요. 하지만 그 생각에 고정되어야지 하는 것보다는, 작품이나 현장의 성질에 따라 배우 유아인으로서의 역할도 차이를 두려 해요. 이번 작품의 경우 인물에 애착이 생겨서 더욱 효과적으로 녹아들기 위해 여러 방안들을 고민하곤 했어요.

Q. 도전의식이 생겨 ‘#살아있다’에 참여하고, 예전과 달리 배우로서의 의견을 피력하게 됐으며 최근에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을 공개하기도 했어요. 기존의 유아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죠. 변화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유아인:
개인으로서의 편안함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 말인즉슨 지금까지는 편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 동안의 저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제 신념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안정적인 것보다는 도전적이고도 실험적인 것을 좋아하고 또 추구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려면 호흡을 가다듬고 쉬어가는 순간도 필요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오락적인 장르물을 택하게 되고, 예능에도 출연해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됐어요. 삶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 색다른 시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 거죠. 30대가 되고 나서 방황 아닌 방황을 했고, 목적과 방향성이 불분명한 상태로 일을 해왔거든요. 지금은 ‘그래, 나 그냥 불분명하게 있을래’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요.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Q. 생각의 변화를 겪게 한 계기가 있는 건가요?
유아인:
어느 순간부터인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제 삶의 동기가 실은 그다지 분명하지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를 움직이게 하는 힘들이 ‘나로부터 나온 힘’이 아닌 ‘나를 끌어가는 힘’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내 꿈’이 아닌 ‘내게 주입된 환상’을 쫓는 것처럼요. 저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사회적 목표를 어느 정도 이뤄냈고, 그 성취를 위해 20대를 쏟으며 살았는데, 그런 것들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됐어요. 그러면서 변화와 하나둘씩 맞닥뜨리게 됐죠.

Q. 비로소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에 가져오게 된 거군요.
유아인:
어찌 보면 제가 제 자신을 주변에 둔 것이기도 해요. 삶을 주변인처럼 관찰하면 어떨까 싶었거든요. 지금의 저는 애를 덜 쓰고 싶고, 그러고자 하는 갈망이 강해요. 그 동안 잘해내고 싶고, 내 의지대로 급하게 해나가고 싶은 마음에 휩싸여왔다면 지금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싶은 거죠. ‘네 체력이 거기까지면 딱 거기까지만 해’라는 생각도 하고요.

Q. 결국은 쉼표가 필요했던 거네요.
유아인:
그런 셈이죠. 여유를 주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어요. 불안함을 버리고, 온전하지 않더라도 시도해보려 하고요. 체력이 다 소진된 것 같다면 ‘그 에너지는 없어도 되는 에너지 같아’라거나 ‘네 진짜 에너지를 찾아’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하고, ‘남들 쫓아가느라 불안한 것 말고 진짜 네가 원하는 게 뭐야?’와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해요.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Q. 그렇다면 지금의 유아인에게 가장 큰 동력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유아인:
오로지 ‘사랑’이에요. 오그라드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말의 힘을 믿고 집중하려 해요. 혼란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택하고 기댈 수 있는 건 결국 사랑뿐이잖아요. 사랑, 미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에서 나 자신이 어디에 집중할지를 고르는 게 삶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사랑에 집중해야 하는 거고.

Q. 삶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온 것 같아요.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지금의 유아인에게 ‘산다’는 것은 ‘살아남는 것’과 ‘살아있는 것’ 중 어디에 더욱 가까운가요?
유아인:
지금까지 진지하게 답했던 것의 연장선으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거의 저는 잘 살고 있는 것 같아도 능동적이기 보다는 ‘살아지는 인생’, ‘끌려가는 인생’을 살았지만 이제는 ‘살아가는 인생’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으니 또 다른 어딘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잖아요. ‘#살아있다’가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 영화라 생각해요.

Q.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누구보다도 삶에 대해 진중한 태도를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됐어요.
유아인:
삶을 그려내고 다루는 일을 하고 있는 만큼 그건 당연한 것 같아요. 물론 매 순간 이러지는 않죠. 하지만 일종의 직업병처럼, 어릴 때부터 저는 그렇게 살아왔어요. 제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만큼 제가 해야 하는 고민들을 진지하게 해왔거든요. 그게 제 자신을 이중적으로 보이게 하고 때로는 과하게 진지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곤 하지만, 그런 자세 없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배우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들이 제가 연기하는 결과물에도 드러나는 것이니까요.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제공

Q.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과거의 유아인은 SNS 상에서 설전을 벌이며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하고, 때로는 비아냥거리는 반응에 직면하기도 했어요. 그 과정들을 겪으면서 인간과 삶에 대해 더욱 생각해보는 시기를 겪었을 법한데.
유아인:
저는 사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에요. 제 의견을 내놓음에 있어 거리낌 없이 임하려 했고, 제가 느끼는 의문을 풀어내고 싶었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던 힘은 애정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저 제 연기를 소비하는 사람들로만 본다면 제가 택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많아요. 하지만 저는 사람과 사회, 세상에 애정이 있고 제가 상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는 만큼 더욱 더 소통을 하려 해요. 

Q, 그 역시도 결국은 ‘사랑’인 거네요.
유아인:
그런 셈이죠. 저는 늘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부당한 일이 있다면 의문을 제기하고 싶고요. 인터넷으로 소통이 가능한 이 시대에서, 연예인과 대중은 결코 멀지 않다는 인식도 전달하고 싶어요. ‘우리는 그렇게 멀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대화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늘 갖고 있거든요. 그 모든 근원은 애정과 사랑이에요. 동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저는 깊은 애정을 갖고 많은 분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싶어요. 새로운 소통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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