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배우로서 이주영이 걷고 있는 길은 조금 특별하다. 영화 ‘메기’를 통해 독립영화계 신성으로 떠오른 그는 매 작품에서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맡으며 대중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배우는 자신의 외연을 넓혀가는 직업’이라는 지론에 맞게 이주영은 독창적인 방향으로 천천히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며 기회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그 길을 조금씩 넓히고 있는 이주영의 행보는 그래서 더욱 특별해진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배우 이주영’이 되어가는 것이므로.


Q. 영화 ‘야구소녀’의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감상을 느꼈을지 궁금해요.
이주영: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시나리오 자체에 현실적인 부분이 묻어있는 만큼 제가 조금 더 파고들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표면적으로도 대중에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극 중 고교 야구선수 주수인 캐릭터를 맡았어요. 드물지만, 실제로도 여자 야구선수들이 여럿 활약하고 있죠.
이주영:
현실에서도 야구를 하고 있는 여자선수들이 프로리그로 가기가 어려워서 다른 쪽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대요. 야구소녀 주수인의 실제 모델과 같은 분들이 계셨던 만큼 그분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려 했어요. 그리고 영화에서 편집된 장면이긴 한데, 실제 야구 국가대표로 활약 중인 여성 선수 분들과 함께 한 신이 있었어요. 야구라는 스포츠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선수들을 통해 주수인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었죠.

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Q. 실제로는 ‘야구 문외한’이라 들었어요.
이주영:
맞아요. 야구는 제가 전혀 모르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어요. 선수가 몇 명인지, 어떤 포지션이 무엇을 하는지를 몰랐던 만큼 자료조사를 열심히 했죠. 야구를 소재로 삼은 영화도 많이 봤지만, 저희 작품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주수인이 야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투수들의 자세를 많이 찾아봤고, 어떻게 던져야 그럴듯해보일지를 생각하며 계속 연습했어요. 실제 선수들과 한 달 가까이 함께 훈련을 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저 선수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도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느꼈어요.

Q. 극 중 투구 폼이 실제 선수를 방불케 했어요.
이주영:
저 기분 좋으라고 하신 말씀일 수도 있는데, 사실 저를 코치해준 감독님과 훈련을 함께 받은 선수분들이 ‘이 정도면 선수로 전향해도 되겠다’고 해주셨어요. 하하, 격려를 많이 얻은 덕에 더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계속 생겼죠.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치 내에서 최대한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Q. 주수인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꿈을 향해 계속 돌진하는 성장형 캐릭터예요. 실제로도 캐릭터와 비슷한 점이 있나요?
이주영:
글쎄요. 저는 연기하면서, 제가 주수인이 가진 힘과 에너지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주)수인이는 어리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도 자신의 꿈을 계속 펼쳐나가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땐 무모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수인이는 주변 사람들까지도 변화하게 만든다고 느꼈어요. 수인이의 단단한 에너지가 주위사람들조차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았거든요. 정말 대단한 친구인 거죠.

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Q. 영화 속 주수인이 그렇게까지 맹목적으로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이주영: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수인이가 하고 싶은 게 야구고, 사랑하는 게 야구잖아요. 저 역시 연기를 위해 계속 이유를 찾았지만, 주수인에게는 ‘왜?’라는 말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온 야구를 계속 하고 싶은 것’ 그 자체가 원동력이라는 답에 도달했어요. 요즘 우리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고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인이는 ‘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갈 수 없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래’라고 생각하고, 또 실행하죠. 저는 그 자체가 수인이라고 생각해요.

Q. 주수인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마이너리그’에 속해 있어요. 아이돌을 준비하다 좌절한 친구와 프로선수가 끝내 되지 못한 코치까지, 꿈을 이루는 데에 실패한 주변 사람들을 주수인은 천천히 감화시켜나가죠.
이주영:
그런 점에서 ‘야구소녀’는 모든 연령층과 남녀노소 모두를 공감시킬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주수인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인이와 다른 캐릭터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죠. 모든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꿈을 그리며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수인이가 ‘대변자’까지는 아니어도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담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욱 주변과의 관계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Q. 작품을 만들어나가면서 나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도 있었겠네요.
이주영:
맞아요. 사실 저는 연기가 너무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외의 거창한 미래는 그려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수인이의 꿈도 거창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야구를 하고 싶어서 계속 야구를 하는 수인이처럼, 저 역시도 계속 연기를 하고 싶어서 연기를 하고 있는 거거든요. 먼 시간이 지나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지면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때그때의 욕구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이거든요. 매 순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제 꿈이지 않나 싶어요.

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Q. 주수인처럼 10대 시절에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방황하는 순간은 없었나요.
이주영:
10대 때의 저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학창시절에 매년 장래희망을 쓸 때마다 적당한 것을 지어내곤 했죠. 그렇게 10대를 보내다 20대에 연기를 하게 됐고, 여러 작품들을 통해 지금까지 좋은 만남을 이어가게 된 것 같아요.

Q. 독립영화를 찍던 시절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들이 조명되기도 했어요.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의 배우 이주영을 만드는 데에도 자양분이 됐을 것 같은데.
이주영:
맞아요. 배우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봤는데, 그러다 안 해본 일을 해보고 싶어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봤어요. 주변에서는 위험하지 않겠냐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오히려 홀 서빙 아르바이트보다 쉽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만 내 한계를 정해놓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부딪혀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데뷔 이후 꾸준히 좋은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어요. 점차 이주영이라는 배우의 세계가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이죠.
이주영:
배우는 항상 자신의 외연을 넓혀가야 하는 직업 같아요. 과거에도 저는 연기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제 자신이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다만 제 이름을 알리면서 기회의 장이 넓어졌고, 그 덕에 외연을 넓힐 수 있었죠. 여러 경험들을 통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배우가 된 것 같아요.

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Q. 외연이 넓어지면서 이주영이라는 배우가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의 폭도 넓어졌어요. 작품선택에 있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주영:
방향성보다는 작품을 고를 때의 제 상태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가면서 영화나 드라마들이 이야기하는 바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하는 이야기이거나 혹은 제가 접근해본 적이 없는 캐릭터에 큰 흥미를 느끼곤 하죠. 이제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드라마가 구분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고 매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제게도 건강한 선택이자 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방향 같아요.

Q.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하는 이야기’라는 대목이 흥미롭게 들리네요. ‘이태원 클라쓰’나 ‘야구소녀’ 모두 기존의 관념을 깰 수 있는 캐릭터를 맡아 연기했던 것도 이 같은 생각의 연장선상이었을까요.
이주영:
개인적으로는 늘 그런 한계를 깨려고 하는 편이에요. 물론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테니 더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려 하고요. 최근 미디어에서 젠더와 관련된 부분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창작자들이 그런 부분을 간과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더 좋은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죠. 그 과정에서 저 역시도 많이 배우고 또 느끼고 있어요. 이제는 이 세상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이야기를 전함에 있어 양질의 방법을 잘 찾아가고 있잖아요. 그 안에서 작업하고 연기하는 저도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뿌듯하고 또 좋아요.

Q. 그래서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배우 이주영은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주영:
하하. 사실 저는 과거에 제가 해온 일이나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를 많이 고민하진 않아요. 그래서 제게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생각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죠. 많은 분들이 저를 ‘좋은 배우’ 혹은 ‘멋진 배우’라고 평가해주시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진짜로 그런 사람이 되려면 제가 살아가는 모습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게 부끄러울 만한 일을 하지 말자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해요.

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배우 이주영. 사진. 싸이더스 제공

Q. 매 순간의 자신에 집중하는 만큼 자신을 자신답게 지키는 것이 중요한 가치로 작용할 것 같아요.
이주영:
맞아요. 그런데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해요. 저라는 사람을 지키는 데에는 제 의지도 중요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거든요. 저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들이 제 외벽에 탄탄히 자리하고 있을 때 안정감이 느껴지고 ‘그래도 내가 지금 나쁘지 않게 나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해요. 주위 사람들의 응원과 제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동력이 지금의 저를 이끌고 있고, 제 자신에게도 큰 가치로 느껴지는 편이에요.

Q. 지금의 이주영이 집중하고 있는 이야기는 현재 상영 중인 ‘야구소녀’겠네요(웃음). 관객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주영:
특정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그냥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희 영화는 재미있는 스포츠 오락영화이기도 하거든요. 여름에 어울리는 청량감 가득한 스포츠 영화를 봤다고만 해주셔도 저는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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