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너머 작품 자체가 보일 수 있는 배우를 꿈꾼다"

배우 이무생.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데뷔 14년차 배우 이무생이 ‘부부의 세계’라는 인생작을 만나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 키다리아저씨와 같은 ‘윤기쌤’으로 사랑받은 그는 대중에 주목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인간 이무생보다는 작품 속 캐릭터로 더 비쳐지고 싶다는 이무생. 배우로서 무한정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가 보여줄 연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Q. ‘부부의 세계’를 통해 새로운 색을 보여줬어요.
이무생:
다양한 연기를 소화하는 게 배우의 숙명 같아요. 구체적인 색으로 표현하자면, 이번에는 아이보리 느낌을 보여드리려 했어요. 다른 색을 덮은 듯 오묘한 지점을 생각했죠. ‘부부의 세계’ 속 김윤기에게는 그런 색이 맞을 것 같았어요. 다른 색으로 변할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았다는 지점에서 꼭 맞는 색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Q.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둬 대중에 더 각인된 것 같아요.
이무생:
김윤기를 통해 위안을 얻은 분들이 많으셨다는데 저 역시도 울고 웃으며 여러 기분을 느꼈어요. 이런 색을 보여줬다는 게 그 다음의 새로운 시작이 된 것 같아서 홀가분하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이런 색과 다른 걸 보여주겠다는 편견에 갇히지 않으려 해요. 조금만 더 변화시켜도 다른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방증이 됐다고 생각해요.

배우 이무생. 사진. 구혜정 기자

Q. 김윤기 캐릭터가 큰 인기를 끌었어요.
이무생:
‘부부의 세계’가 다양한 연령층에 워낙 큰 사랑을 받은 덕 같아요. 김윤기 캐릭터가 워낙 다정했던 만큼 그런 모습들을 좋아해주신 것 같아요.

Q. 옷 태가 좋아서 ‘이무생로랑’(이무생과 의류 브랜드 이름을 섞은 표현)이라는 애칭도 붙었어요(웃음).
이무생:
하하, 코디 분이 제게 맞게 잘 입혀주신 것밖에 없어요. 평소에 몸 관리를 하는 편은 아닌데 ‘부부의 세계’ 이전에 시간이 생겨 안 하던 운동을 시작했거든요. 그래도 몸이 우락부락 좋은 편은 아니에요. 온전히 코디 분 덕택이라 생각해요.

Q. 후반으로 갈수록 지선우(김희애)와 이태오(박해준)의 서사가 부각되며 김윤기의 이야기가 덜 드러나기도 했어요.
이무생:
작품 전체를 보면 지선우와 이태오의 감정을 따라가는 게 당연히 맞아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주변 인물들의 역할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만족스럽기도 했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잖아요. 그래서 더욱 김윤기 캐릭터에 아련함이 남은 것 같아서 좋았어요. 물론, 그런 모습이 보여준 건 대본의 힘이기도 하고요.

Q. 김희애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이무생:
첫 촬영 때부터 많은 긴장감과 흥분된 마음을 안고 있었어요. 같은 작품을 한다는 게 꿈이냐 생시냐 싶을 정도로 영광이었거든요. 그런데 현장에 가니 김희애가 아닌 지선우가 앉아있더라고요. 그래서 저 역시 김윤기로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노력했어요.

배우 이무생. 사진. 구혜정 기자

Q.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가 좋았던 만큼 극 말미 지선우와 김윤기가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는 시청자 의견도 많았어요.
이무생:
상황이 주는 애잔함도 큰 것 같아요. 김윤기는 지선우에게 첫눈에 반했고, 막연하게나마 지선우를 위해 계속 기다리겠다는 마음으로 사랑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2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고백을 했을 테니까요. 지선우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큰 만큼 김윤기도 기꺼이 지선우를 더 기다릴 수 있던 거고요. 그 정도로 김윤기는 이성적이면서도 책임감도 강하고 부지런하며 멋있어요. 제게 없는 매력을 본 것 같아 김윤기를 연기하며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었어요.

Q. 김윤기와 이무생은 다른 편인가요.
이무생:
많이 다른 편은 아니에요. 다만 김윤기가 저보다는 이성적이고 기다릴 줄 아는 남자죠. 저도 나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되려 하는데 2% 부족한 인간적인 면이 있거든요(웃음).

Q. 아내가 ‘부부의 세계’ 속 김윤기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해요(웃음).
이무생:
워낙 김윤기가 자상하잖아요. 저도 자상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김윤기보다는 모자른 게 사실이에요. 아내와 ‘부부의 세계’를 함께 보면서 “내가 더 노력하고 내가 더 잘할게”라고 말하곤 했어요. 

배우 이무생. 사진. 구혜정 기자

Q. 실제로 기혼자잖아요. ‘부부의 세계’를 만들며 느낀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이무생: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이에요. 그와 동시에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느꼈어요. 결국 ‘부부의 세계’ 속 사건들은 부부로서 지켜야 하는 선을 넘었기 때문에 일어난 거거든요. ‘부부의 세계’는 부부관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결혼하면 진정한 내 편이 생기는 것이니까, 결혼을 아예 안 한다면 몰라도 하게 되면 좋은 사람과 해야 해요. 저도 그렇게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지금도 그 믿음을 잃지 않고 있어요. 결혼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니, 조금 늦어질지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최근 육아예능으로 가족을 공개하는 연예인들이 많아요. 예능 출연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이무생:
예능은 선택 같아요. 아직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것뿐이죠. 아내와 아이들에겐 자신들의 삶이 있잖아요. 제가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그들의 자유가 사라진다면 그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문제가 되는 거죠.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의향을 물어볼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예능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다 말주변도 없는 편이라 예능을 나가면 이미지가 반감될 것 같아요. 하하.

Q. ‘부부의 세계’ 이전에도 ‘지정생존자’ 등으로 주목받긴 했지만 비교적 무명이 긴 편이에요. 그 시간을 버티는 힘은 무엇이었나요.
이무생:
버텼다고 하기보다는 시간이 그냥 흐른 것 같아요. 쉬지 않고 크고 작은 작품을 계속 하며 바쁘게 보냈거든요. 그 모든 게 자양분이 됐다고 생각해요. 저를 갈고 닦은 만큼 지나온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아요. 연기에 만족은 없지만 매 작품 속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행복하게 했어요.

배우 이무생. 사진. 구혜정 기자

Q. 꾸준히 한 길을 걷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특히나 남들이 자신의 결과물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의지가 약해지기 쉽죠.
이무생:
배우로서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에 재미를 느껴서 그 끈을 놓지 않은 것뿐이에요.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남들이 발견 못한 매력을 찾아 숨을 불어넣는 게 배우가 할 일인데, 저는 그 자체에 매료됐거든요. 남들이 알아주는 건 제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저 좋자고 하는 것이니까 남들이 나쁘게 본다고 해서 의기소침해질 필요도 없었고요. 처음부터 편하게 마음을 먹으니 어떤 작업이든 끝이 아닌 시작이고, 그 모든 게 계속 반복될 거라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느끼게 돼 일희일비하지 않게 됐어요. 그런 게 저를 지탱하는 힘이 된 거죠.

Q.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있는 만큼 내면이 단단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후의 인터뷰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이무생:
저는 늘 작품으로서,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인간 이무생보다는 작품에서 그 역할로만 보이고 싶고요. 그 캐릭터로 보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작품 자체가 보일 수 있는 배우를 꿈꿔요. 그렇게 되어야 인간 이무생이 궁금해지지 않을까요? 하하.

Q. 관록이 느껴지는 말이네요(웃음).
이무생:
배우의 매력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는 모르지만, 인간 이무생을 내비치면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이무생이라는 한 개인이잖아요. 하지만 배우로서 캐릭터가 되면 무한정의 사람이 돼요.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작품에 숨어서 캐릭터로서 제가 보이게 되는 걸 원하고 있죠. 앞으로도 그런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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