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그룹 단재완 회장의 네트워크
해성그룹 단재완 회장의 네트워크
  • 박세아 기자
  • 승인 2020.05.0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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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디자인 기자
김민영 디자인 기자

[미디어SR 박세아 기자] 

단재완

해성그룹의 모회사 격인 해성산업 회장. 

'현금왕'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 많아 은둔의 거부로 불린다. 고 단사천의 아들이자 수 조원의 자산을 가진 해성그룹의 수장이다. 단 회장은 현재 30.1%의 지분율로 해성산업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단 회장은 2014년 나눠져 있던 계열사를 한데 모아 그룹 출범을 공식화했다.

이로써 국내외 계열사 17개를 보유하고 1조원을 훌쩍 넘는 자산을 보유한 해성그룹이 닻을 올렸다.

그룹 출범 이후 삼성테크원 MDS 사업부까지 인수하며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는 등 한 길을 걸었던 아버지 때 와는 결이 다른 행보를 보였다.

복사용지 회사 한국제지와 반도체 부품업체 해성디에스, 공구 회사 계양전기 등을 거느린 해성그룹을 일궈낸 데는 단 회장의 안목과 수완이 한몫했다. 해성산업과 한국제지는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코스피 상장사 한국제지를 코스닥 상장사인 해성산업이 합병한다고 공표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가 코스피 상장사를 흡수 합병한 사례가 흔치 않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합병 관련 주주총회가 오는 27일 개최돼 통과되면 한국제지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계양전기, 해성DS, 세하, 원창포장공업, 한국팩키지의 주식은 모두 해성산업으로 통합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본래 한국제지는 1958년 설립된 종합제지회사다. 복사용지 밀크(miilk)가 바로 한국제지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단재완 회장과 그의 아들 2명이 한국제지 지분의 32.1%를 소유하고 있고, 해성산업 또한 6.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해성산업은 빌딩 관리와 임대사업을 벌이는 곳으로 알려져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단 회장 일가의 자산을 관리하는 역할에 치중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단 회장 일가가 직접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해성1빌딩과 해성2빌딩, 서울 중구의 해남빌딩과 해남2빌딩 등은 해성산업 법인 명의로 소유 및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단 회장 일가가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빌딩의 합산 추정가치만 조 단위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해성그룹은 장기적으로 그룹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화하고 그룹 내 계열사에 대한 적정한 지배력을 확보해 계열사 전체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합병을 계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한국제지 인수합병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량한 재무구조를 가졌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상당부분의 수익이 실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신성장동력은 미약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단사천

해성그룹의 창립자.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알려져 있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개성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세때 '나홀로 월남'한 케이스다.  

`일만상회`라는 재봉틀 조립회사를 설립하면서부터 사업에 발을 내디뎠고, 그 때 나이는 불과 스물세살이었다.

이때 모은 재산을 기반으로 1945년 해성직물상회를 세웠다. 이후 현재 국내 인쇄용지 시장 1위인 한국제지를 1958년 설립하고 1977년 계양전기를 세웠다. 

특히 1960년에서 1980년 재계에서 손꼽히는 현금왕으로 통했다. 명동 사채시장의 큰손 중 하나로 자금시장을 쥐락펴락했다. 전성기 때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보다 소득세를 더 냈을 정도라고 한다. 1970년대 국내 종합소득세 납부 순위 7위에 올라 눈길을 끈 바 있다.

이 때문에 재계의 내로라하는 총수들에게도 돈을 빌려줬다는 소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과의 일화는 유명하다. 정주영 회장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현금이 필요할 때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면 단 회장에게서 현금을 자주 빌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금융시장의 자금조달 능력이 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던 경제개발 시기에 단 회장의 엄청난 자금력에 의지했던 셈이다. 

1960년대 중반 단 회장이 한 번에 빌려줄 수 있는 자금의 규모는 약 60억원대 정도였는데 이는 당시 삼성그룹의 연간 영업이익 규모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거금이었다.

단 회장은 사채를 통해 사업 확장을 위한 재투자로 자금을 유용하기보다는 전국 요지의 부동산을 사들이며 재산을 불렸다. 명동 근처 도심을 비롯해 주요 상업지역의 땅을 사들였고 1960년대 후반부터 정부의 한강 이남 개발이 본격화하자 강남 땅에도 과감히 투자했다.

현재 서울 강남의 강남역과 삼성역을 잇는 테헤란로의 해성빌딩 2개 동을 비롯해 서초동 송남빌딩, 중구 북창동의 해남빌딩, 부산 송남빌딩 등 해성그룹의 주요 자산들은 대부분 단사천 회장이 일군 것이다.

이런 단 회장에게도 실패는 있었다. 1953년 설립했던 한국모방은 재투자에 실패하면서 제일모직, 경남모직 등 경쟁업체들에 자리를 내줬다.

또한 1982년 신한투자금융 설립에 참여했지만 공동 설립자 간의 경영 분쟁과 정부의 경영 개입으로 눈물을 머금고 사업을 접었다. 

이후 해성산업과 한국제지, 계양전기 등의 회사를 경영하며 은행에서 차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재산을 지키는 데 주력했다.

아울러 단 회장은 해성문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엄청난 현금 동원력에서 상상되는이미지와는 달리 평소 검소한 삶을 살았으며, 재무건전성을 강조하는 등 내실에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회장은 평소 자신에 대한 소문이 과장된 것이 많다고 해명하는 등 진솔한 성품의 소유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단우영

현금왕의 손자이자 '은둔 거부'의 아들.  

현재 한국제지 부회장이다. 밑으로 동생 단우준 해성디에스 부사장이 있다. 단 부사장과는 후계 경쟁을 해야 하는 사이다.

세간에 잘 알려진 복사용지 밀크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1979년생으로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삼일회계법인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한 바 있다. 

단 부사장은 1999년 한국제지 주주명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할아버지였던 단사천 명예회장이 보유 중이던 주식 일부를 증여했기 때문이었다. 

2008년 3세 경영수업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해 그 해 한국제지에 입사했다. 전무로 승진한 직후였던 2011년에는 직접 만든 복사용지 브랜드인 `밀크`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밀크는 출시 1년여 만에 국내 복사용지 시장에서 점유율 45%를 달성하며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이후 2014년 한국제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 단 회장의 뒤를 이어 기업을 물려받을 것이란 소문이 자자했으나 돌연 2017년 한국제지 부사장직을 내려놓으면서 해성디에스 기획조정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동생이었던 단우준 부사장도 기획조정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로써 장남과 차남이 서로 경쟁을 통해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고, 후계구도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동생과의 지분율 격차가 미미했던 점도 이런 소문에 힘을 실었다.

두 사람의 해성산업 소유 지분율은 각각 형인 단우영 부회장이 10.64%, 동생인 단우준 부사장이 10.42%로 격차가 크지 않다.

다른 상장 계열사인 계양전기, 해성디에스, 한국팩키지의 소유 지분율도 비슷하다. 계양전기는 단 부회장이 1.89%, 단 부사장이 1.87%를 갖고 있다.

해성디에스는 6.18%로 동일하다. 한국팩키지 역시 똑같이 지분 6%를 보유하고 있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 단 회장의 경영 시험대 위에 올라가 있는 셈이다. 공동 경영이나 계열 분리 시나리오 등의 추측이 무성하지만, 이 모든 것은 끝이 나 봐야 알 수 있다. 

해성그룹이 총 5개의 상장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두 아들이 상장 계열사 지분을 비등하게 보유하고 있어 힘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누가 선두에 나서 가업을 잇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해성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검토 중이기 때문에 다시한번 형제 앞에 공정한 경쟁을 위한 새로운 시험무대가 펼쳐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김무성

미래통합당 소속 제20대 국회의원.

단재완 회장의 선친인 고 단사천 회장과 김무성 대표의 선친인 고 김용주 회장은 생전에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사천 회장이 1953년 설립한 한국모방이 경쟁업체들에 자리를 내주는 과정에서 당시 섬유업에 종사했던 전남방직 김용주 회장과 친분을 맺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성그룹이 학교법인 해성학원을 운영하고 현재 단 회장이 직접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김무성의 부친도 용문학원을 설립한 사학 재벌이었다. 

한때 해성산업이 김무성 테마주로 편입됐었는데, 당시 해성산업이 주가 조작 사건에 휘말렸을 때도 김무성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해성산업은 2011년 11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주가조작에 연루된 바 있다. 외관상 아무런 이유없이 주가가 2년간 거의 4배나 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해성산업은 소액주주로 구성된 주식투자모임 전-현 대표가 해성산업이라는 코스닥 시장 상장사의 주가를 중동고등학교 동창회와 경기도 파주의 한 대형교회 등과 모의해 약 5년간 지속해서 조작해 왔다는 의혹이 일자 검찰 조사를 받게 된다.

중동고등학교는 김무성이 졸업한 학교로 측근이 주가 조작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당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2014년 7월 중순 시가총액이 8500억원이었던 해성산업은 같은 해 9월 12일 2800억원으로 시총이 폭락했다.

이에 한국거래소 등이 작전세력의 주가조작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모니터링을 강화했었다. 

단재완 회장과 김무성의원이 중동고 동문이라는 점 때문에 해성산업을 비롯해 이른바 김무성 테마주를 움직인 세력들로 중동고 동문들이 지목되기도 했다. 

월드비전

전세계 가장 취약한 아동, 가정, 지역사회의 빈곤과 불평등을 위한 글로벌 NGO(비정부기구).

해성그룹은 지난 2016년부터 4년간 매해 월드비전을 통해 나눔활동을 펼쳐왔다.

단재완 회장은 사비를 보태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나눔에 앞장섰는데 2016년부터 현재까지 후원 금액이 약 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단재완 회장에게는 월드비전의 고액 후원자 모임인 밥피어스아너클럽 회원 자격이 주어져 있다. 

올해 1월에는 월드비전 사옥에서 아프리카 식수위생사업 후원금 전달에 함인숙 해성그룹 이사를 비롯해 한국제지, 계양전기, 해성디에스, 한국팩키지, 해성산업 등 5개 계열사의 임원과 관계자들이 참석할 만큼 열의를 보였다. 

월드비전의 목표는 모든 사람, 특히 어린이들이 잘살 수 있도록 일하는 것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구호재단이다. 

한솔제지

한국제지의 경쟁사. 

한솔제지는 고급 포장재로 분류되는 백판지 시장을 두고서 현재 시장에서 치고 올라오는 한국제지와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제지가 백판지 업계 3위인 세하 인수에 사실상 성공하면서 한솔제지가 공장을 증설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솔제지는 백판지를 생산하는 대전공장에 323억원을 들여 설비 증설에 나선 상태다. 

한국제지는 그동안 유인물이나 잡지용 종이 등 인쇄용지 사업만을 영위해왔다.

이번에 세하를 인수함으로써 백판지 시장에 새로운 구도개편의 신호탄을 쐈다. 

기존 백판지 시장 1위는 한솔제지였다. 2위인 깨끗한나라, 3위 세하, 4위 신풍제지가 경쟁을 펼치는 구도였다.

하지만 한국제지가 결과적으로 세하를 가져가면서, 백판지 시장에서 철수한 신풍제지의 점유율까지 확보하면 시장에서 한솔제지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솔제지의 경우 1965년 새한제지로 시작했다. 교과서 용지를 만들기 위해 세워진 새한제지를 1965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인수했다. 

새한제지는 전주제지로 이름을 바꾸고 신문용지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1974년에는 시장점유율이 30%에 달했다.

이후 전주제지는 이병철 회장의 네 명의 딸 중 첫째 딸인 이인희 씨에게 상속되면서 삼성가에서 독립해 한솔그룹이 된다.

 한솔은 신문용지가 아닌 백상지와 백판지 시장에 진출해 제지업계에서 순식간에 시장 상위권까지 치고 올라가게 된다. 

무림그룹

현재 한솔그룹과 국내 제지업체의 양대 산맥.

하지만 그룹의 비중이 제지업 중에서도 인쇄용지에 치우쳐져 있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상황이다.

한솔그룹과 제지업계 '빅2'로 각종 제지 제작에서 우수한 품질을 자랑해왔다.

무림그룹에서 제지업을 영위하는 업체는 무림SP, 무림페이퍼, 무림P&P다. 이들 매출은 2019년을 기준으로 5년 전과 비교해 모두 감소한 상태다.

이는 디지털화 돼가는 세상 속에서 인쇄용지 시장 자체의 성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청구제지라는 회사를 무림 창업주인 이무일 회장이 1956년에 인수해 1959년부터 흰색 종이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무림그룹의 전신이다.

무림제지라는 이름으로 백상지를 꾸준히 생산해왔다. 마침내 1980년 창업주의 아들인 이동욱 회장이 32세에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전국구 제지 회사로 도약했다. 

한국제지는 1958년에 만들어졌는데 백상지 시장에서는 당시 3번째로 큰 회사였다.

하지만 이 처럼 무림제지가 파죽지세로 세력을 키우자 시장점유율 1위였던 한국제지가 1980년대에는 2위로 한 발 뒤로 물러서야만 했던 아픈 기억도 갖고 있다.

무림은 과자 상자나 화장품 상자와 같이 제품 포장에 사용되는 백판지 시장에도 진출했다.

현재도 무림은 인쇄용지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업체다. 무림P&P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펄프 생산이 가능한 동해펄프를 인수해 펄프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무림은 이도균 대표이사 사장을 선임하면서 펄프를 통한 환경친화적 미래 소재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박세아 기자 seeall@medias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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