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서정진의 네트워크
셀트리온 서정진의 네트워크
  • 박세아 기자
  • 승인 2020.02.07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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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디자인 기자
김민영 디자인 기자

[미디어SR 박세아 기자]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셀트리온 회장.

시가총액 3위의 바이오기업을 일군 기업가다.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근성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에, '셀트리온'과 같은 글로벌 기업을 일굴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나이다.

지난달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웨스턴 세인트프란시스호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기자간담회에서 "오늘이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다"며 직접 은퇴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서 회장은 1957년 10월 23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태어났다. 서 회장은 서울 구파발 기자촌에서 연탄 가게를 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전기에 입사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생산성본부로 자리를 옮겨 대우그룹 컨설팅을 하다 김우중 회장의 눈에 띄어 대우자동차 기획 재무 고문으로 임명된 사실은 업계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대우차 출신 동료 6명과 셀트리온의 전신 기업인 넥솔바이오텍을 창업했다. 대우자동차에서 34살의 나이에 최연소 임원으로 발탁됐지만,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실업자가 된 후였다.

이후 바이오산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노력한 결과, 서 회장은 벡스젠과 기술제휴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2002년 마침내 셀트리온을 설립했다.

하지만 벡스젠이 개발하던 에이즈 백신 기술의 임상이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채까지 손을 댔을 정도로 힘든 시기도 거쳤다. 이후 2004년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쿼브의 바이오의약품 원료를 생산대행(CMO)하면서 성장을 시작했다. 2007년 셀트리온은 635억원의 매출을 올리게 되는 기업으로 우뚝섰다.

마침내 2009년 자회사 셀트리온제약을 설립해 대표이사를 맡게 되면서 글로벌 제약회사들의 이목까지 끌기에 이른다. 셀트리온은 2016년 바이오벤처 기업을 대표해 처음으로 대기업집단에 포함됐다. 이 때 셀트리온의 보유 주식 가치는 5조 9000억원을 기록했다. 

 

손병두

호암재단 전 이사장. 1941년생으로 경복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서 회장에게 있어 손병두 전 이사장은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더불어 뜻깊은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한 서 회장은 삼성그룹 비서실에 합류하면서 서강대학교 총장을 지낸 손 전 이사장을 만나게 된다. 손 전 이사장은 제일제당 기획이사에서 한국생산성본부 상무이사로 자리를 옮길 때 삼성전기에서 근무하던 서정진을 스카우트했다.

손 전 이사장은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이사, 제일제당 이사, 코피온 총재, 제12대 서강대학교 총장,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KBS 이사장,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특히 손 전 이사장은 5.16 유신 미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서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유신 시대가 더 좋았다는 내용이 담긴 박정희 추도사를 낭독했었다.

 

김우중

"시대를 앞서간 기업인이었는데 큰 어른이 떠나셔서 참으로 안타깝다" 지난해 12월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두고 서 회장이 한 말이다.

김 전 회장은 1936년 대구에서 출생해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까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일하다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하고 1973년 영진토건을 인수했다. 이후 대우개발로 간판을 바꿔 달고 대우실업과 합쳐  '대우'를 출범시킨 인물이다.

서 회장과 김 전 회장의 인연은 각별하다. 김 전 회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서 회장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전직 대우맨 출신이었던 서 회장은 30대에 대우그룹 임원으로 몸담았었다. 대우그룹 임원으로 몸담기까지 일화도 유명하다. 한국 생산성본 부에서 대우자동차 컨설팅을 맡았던 서 회장을 보고 김 전 회장이 자신과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하면서 대우맨이 됐기 때문이다. 그때 서 회장의 나이가 34세 불과했다.

대우그룹이 해체되며 졸지에 실직자가 됐다. 하지만 덕택에 대우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창업을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서 회장이 기억으로 김 전 회장은 눈이 내리는 날 새벽에도 현장을 자주 찾을 정도로 굉장히 부지런했다고 전한다.

김 전 회장이 IMF 위기를 버티지 못하면서 대우그룹은 해체된다. 대우그룹은 1998년 창업 30여 년 만에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 7000억원에 이르는 재계 2위에 올랐지만 1998년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253억원을 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말년에는 베트남 등을 오가며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 프로그램에 힘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박경옥

셀트리온복지재단 이사장. 서 회장의 부인이다. 서 회장과는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셀트리온복지재단은 셀트리온그룹이 사회공헌 차원을 위해 지난 2006년 7월 설립했다.

인천광역시와 충북 등 2개 지역 중심으로 복지사업을 전개한다. 인천은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소재지며 충북에 셀트리온제약의 본사가 있다. 서 회장의 출생지가 충북 청주시다.

서 회장 주변 사람들은 박 이사장을 서 회장 성공의 최고 조력자로 꼽는다. 2015년에 1년에 두 번 있는 부서별 미팅에서 임직원의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듣고 해결에 나섰다는 일화도 있다. 박 이사장은 서 회장이 실업자가 됐을 때 종잣돈 5000만원을 선뜻 건네기도 하는 배포를 지녔다. 또 아무리 늦게 귀가해도 회사 일과 관련해서는 큰 불만을 드러낸 일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서 회장의 고단함과 열정에 공감했다는 뉘앙스로 애기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박 이사장은 남편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며 "남편이 술에 취해 집에 온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며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 월급을 한 번도 밀리지 않게 했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서 회장이 친분이 있다고 직접 언급한 인물이다. 김 회장은 릴레이 환경운동 캠페인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에서 자신 다음으로 서 회장과 김흥국 하림그룹 회장을 지목하기도 할 만큼 친분이 두텁다. 김 회장은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중소건설사에서 잠시 일하다 호반을 설립했다. 서 회장과 마찬가지로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호반건설의 모태인 현대파이낸스를 설립해 금융업을 시작했다. IMF 금융위기 때 다른 건설사들이 내다 판 땅을 싼값에 사들인 뒤 주택 분양사업을 펼치며 전국구 건설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현대파이낸스, 신화개발주식회사와 호반건설산업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다 2006년 호반건설이 된다.

최근에는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둔 금호산업 인수전에 참여해 큰 주목을 받았고, 대우건설 인수전에도 참여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대우건설이 해외건설에서 부실한 성과를 낸 점이 드러나자 인수를 포기한 적이 있다.

대우건설 인수에 대한 집중도가 컸다고 알려진다. 브랜드 인지도가 대형 건설사에 비해 낮기 때문에 대우건설의 '푸르지오'와 같은 브랜드를 활용해 호반건설의 낮은 인지도를 상쇄시키려는 목적과 해외 시장 진출의 용이함 때문이었다는 분석이다.

김 회장은 일감몰아주기 비난도 받아왔다. 호반건설이 계열사인 호반을 키우기 위해 최근 수년 동안 내부거래 비중을 늘려왔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박남춘

현 인천시장이다. 서 회장과는 제물포고등학교 21회 동기에 막역한 친구 사이로 알려졌다. 서 회장이 셀트리온 비전 선포식을 본사가 아닌 인천시청에서 진행하면서 박 인천시장과의 관계가 부각됐다. 

박 시장이 시장 취임한 이후에는 혹여라도 인천시로부터 셀트리온이 특혜를 받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오해를 살까 봐 시청 반문을 자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셀트리온이 지난해 5월 제안한 비전 2030을 접하고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인천시가 준비해오던 바이오 하드웨어 조성계획, 바이오 일자리 창출방안, 투자유치 프로그램 등이 셀트리온을 만나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큰 그림으로 완성됐다"고 전한 바 있다.

셀트리온의 비전 2030 내용에는 바이오의약품 사업 25조원, 케미컬의약품 사업 5조원, 글로벌 헬스케어 10조원 등의 투자계획이 포함됐다. 

서회장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거점을 둔 그룹의 바이오의약품 사업에 성장기반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직접 고용 1만 명과 간접고용 10만 명에 달하는 일자리가 대부분 인천에서 발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박 시장은 서 회장과 더불어 박양우 문체부 장관과도 21회 동기 사이다. 제물포고 21회 졸업생들은 최근에도 주기적으로 정기 모임을 갖고 우애를 다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검찰

글로벌 제약회사들의 이목뿐만 아니라 검찰에서도 서정진을 눈여겨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3년 주가조작혐의를 받으면서부터다.

서 회장은 직전 기자회견에서 "셀트리온은 브리스톨마이어스쿼브와 맺은 생산대행사업을 종료하고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주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의도적으로 주가를 끌어내리려는 공매도 세력이 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셀트리온 주식의 공매도 횟수가 15회에 불과해  서 회장이 다른 이유로 지분을 매각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이후 증권선물위원회가 서정진을 포함한 셀트리온의 일부 경영진을 주가 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약 7개월간 조사를 거친 뒤 2014년 5월 일부 무혐의 및 약식기소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최근 서 회장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이때도 '진실은 통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검찰 조사 답변을 위한 변호사들의 사전 교육도 암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검찰은 "서 회장이 2012년 5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지주회사와 계열사, 우리사주조합, 주주동호회 등의 계좌를 동원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움직였다"면서도 시세차익을 노리지 않았고 공매도 세력에 대한 회사 차원의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어 이같은 처분을 내렸다.

박세아 기자 seeall@medias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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