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정세. 사진 제공. 프레인TPC

[미디어SR 한혜리 기자]

요즘 들어 SNS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과몰입’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지나치게 파고들거나 빠진 상태’를 뜻하는 이 말은, 유행어로서는 자신이 관심있는 장르, 또는 인물 등에 몰입한 상태로 표현된다. 부정적인 의미가 걷히고 유쾌하면서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더해진 것. 여기에 걸맞은 사람이 바로 배우 오정세다. 배역보다 더 배역 같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이번에도 역시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하 동백꽃)’으로 노규태(오정세 역)보다 더 노규태 같은 연기를 보여줬다. 인터뷰 내내 장면의 대사, 상황, 사소한 디테일까지 기억하는 그에게서 ‘과몰입’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기에, 그의 ‘과몰입’은 그야말로 ‘착한 과몰입’이자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Q. 이번 작품 스태프들이 모두 워크숍을 떠난 걸로 알아요. 오정세도 마지막 회를 함께 감상했나요?

오정세: 저 역시도 다녀왔어요. 모두가 아시다시피 눈물바다였죠.(웃음) 마지막이란 아쉬움이었는지, 슬펐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눈물을 흘린 것 같아요. 다 같이 수고했다고 안아주고, 또 동백이(공효진)가 한 명씩 안아주고. 동백이가 수고했다고 해줄 땐 정말 규태가 된 것 같더라고요. ‘동백꽃’이 그런 작품이에요.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힘들고, 짜증나다가도 대본만 보면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주변에서도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에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저도 그래요. 아마 모든 스태프가 그랬을 거예요.

Q. 시청자에게도 참 좋은 드라마로 남았어요. 시청률과 화제성이 그 증거죠. 반응을 실감했나요?

오정세: 한 번은 지하철을 타고 스케줄을 간 적이 있었어요. 7시 퇴근 시간대요. 사람이 정말 많잖아요. 그런데 옆에 계신 분들이 다 ‘동백꽃’을 보고 계신 거예요. 느낌이 되게 묘했죠. 그분들 표정을 보는데 다들 입가에 미소와 눈물을 달고 계시더라고요. 저를 못 알아보시고요. 심지어 제가 나오는 장면을 보시며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도요. (웃음)

Q. 댓글도 봤나요?

오정세: 평소 댓글을 찾아보거나 하는 편은 아닌데, 이번엔 주변에서도 많이 보여주더라고요. 클립 영상보다가 우연히 댓글을 보기도 했고요. 댓글들이 다 좋았어요. 이것도 작품이 좋은 덕이겠죠. 저는 사실 관심 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저를 둘러싸고 생일파티 노래를 불러주는 거예요.(웃음) 그 정도로 주목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는데, 이번엔 다들 편하게 봐주신 것 같아서 좋았어요.

Q. 기억나는 댓글이 있다면요?

오정세: 저도 보면서 웃음이 터진 댓글이 있는데, 자영(염혜란)이와 규태의 어리숙한 로맨스를 보면서 쓰신 것 같아요. “오정세, 국민 남동생 등극하겠네”라는 댓글이 있었어요. ‘국민 남동생’이라니… 정말 너무 감사하지만, 정말 ‘국민 남동생’이 된다면 사랑만큼이나 욕도 먹지 않을까요.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워요. (일동 폭소)

배우 오정세. 사진 제공. 프레인TPC

Q. 규태에게 자영과 로맨스를 빼놓을 수 없어요. 규태와 자영의 ‘멜빵 키스신’은 정말 압권이었죠.

오정세: 사실 원래 그 신은 키스까지 가지 않고 눈만 마주치고 끝나는 거였어요. 오마주처럼 용식(강하늘)과 동백 커플의 ‘멜빵 키스’를 따라 한 거죠. 그 장면을 너무 좋아해서 소리치면서 방송 봤거든요.(웃음)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 같아요. 실제로 볼 때 물론 입과 코가 막 부딪치는 엉망인 키스였지만, 이게 자영-규태 커플에 더 어울리지 않았나 싶어요.

Q. 그 외의 애드리브가 있다면요?

오정세: 거의 95% 정도가 대본이에요. 나머지 5%는 정말로 심사숙고해서 나온 애드리브이고요. 후반부에 규태가 용의자로 찍혀서 취조실에서 조사받을 때, 자영이 앞에서 했던 대사는 원래 “아내를 사랑합니까”라는 질문에 “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가 다였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죠. 그런데 제 안에서 자꾸 한 마디가 더 나오려고 하더라고요. ‘할까, 말까?’ 하다 결국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는 대사를 추가했죠. 극 중 까멜리아 입간판에 쓰여있던 말이잖아요. 자영-규태 커플도 동백-용식 커플에 의해 성장하는 커플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말이 자꾸 떠올랐나 봐요.

Q. 자영-규태 커플 서사에 애정이 많았던 만큼, 염혜란 배우와의 호흡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오정세: 일단 염혜란 배우와는 실제로 동갑내기예요. 10년 전에 제가 관객으로 본 연극에서 처음봤었죠. 그 이후 10년 만에 작품으로 만나서인지 작품 전부터 마음이 열려있었던 것 같아요. 불편함도 없었고요. 호흡은 정말 좋았어요. 그 덕분에 규태가 ‘국민 남동생’ 소리도 들어보고요. (웃음)

Q. 자영-규태 커플도 다른 여타 커플들처럼 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해피엔딩을 맞이했죠. 이 커플의 사랑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오정세: 저도 사실 처음엔 자영이가 규태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웃음) 그러다가 마지막 회에 답이 나왔죠. “행간이 없는 사람.” 말 그대로 노규태만의 매력인 것 같아요. 노규태의 부족함, 비어있는 매력 같은 걸 표현하려 노력했죠. 어릴 적에도 유행하는 교복 핏을 입더라도 세탁소의 태그가 붙어있던지 하는 것들이요. ‘풀샷’에서 보일 듯 말듯 보이는 세탁소 태그 같은 ‘사소한 것’들이 쌓여 노규태를 완성한 것 같아요.

배우 오정세. 사진 제공. 프레인TPC

Q. 처음 노규태가 등장했을 땐 ‘비호감’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땅콩 서비스’를 요구하며 ‘갑질’을 했으니까요. 뒷부분 반전을 위한 장치였을까요.

노규태: 처음부터 설정 자체가 그랬어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대본에 늘 “선을 넘지 말자”라고 써놨어요. 호감과 비호감의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않으려고요. 근데, 작가님께서 규태는 갈등을 유발시키는 인물이지만 ‘분명 좋은 사람’이라고 하셨거든요.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이끌어올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노규태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외로워서 사람한테도, 장소에게도, 심지어 사물에도 마음을 쉽게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죠. 규태가 한 부족한 행동들을 이로 정당화할 순 없지만, 잘못한 건 혼나면서, 고쳐나가면서 부족함을 채워나갔어요. 불편하지 않은 캐릭터로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

Q. 오정세가 본 노규태는 어떤 사람이었던가요?

오정세: 투명하게 속이 드러난 사람이요. 비교해보자면 ‘오정세’는 속내가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고요.

Q. 만약 실제로 노규태란 사람이 있다면 오정세와 친해질 수 있을까요?

오정세: 아니요. (일동 웃음) 친해지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이해는 많이 했겠죠.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사람 노규태로서요. 규태란 인물을 설정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예전에 본 꼬마였어요. 슈퍼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다섯 살짜리 여자애가 껌을 훔친 적이 있어요. 그 애가 껌을 가랑이에 끼고 아주 티 나게 ‘게’ 걸음으로 나가더라고요. 혼내야겠다는 생각보다 헛웃음이 나왔죠. 규태가 딱 그 어린 애 같았어요. 나쁜 행동을 해도 수가 보이는 사람. 그런 인물이었어요.

Q. 노규태의 의상도 묘하게 촌스러운 게 ‘참 노규태답다’고 생각했어요. 본인의 연출이었나요?

오정세: 확실히 다른 작품보다는 의상에 신경을 썼어요. 하이웨이스트 바지도 제작했고요. 멋진 옷이라도 규태가 입으면 과하거나 촌스럽게 느껴지면 좋겠다 싶었어요. 실내복 같은 경우도 최대한 자유롭게요. 사실 제 옷장에 있는 실내복을 펼쳐놓고 보니, 정말 콘셉트가 없더라고요. (웃음) 제가 입는 게 딱 규태같았어요. 하하. 하루는 리허설 때 감독님이 제가 입은 점퍼를 보시고는, “의상은 픽스(확정)인가요?” 하시더라고요. 그냥 제 옷인데 말이에요. 결국 제 옷으로 촬영했어요. 하하. 이런 식으로 명품 셔츠를 입어도 실밥이 나와있고, 흰 바지를 입어도 컬러 속옷을 입는 부조합으로 규태의 허술함과 편안함을 표현하려고 했죠.

Q. 그런 허점이 있는 규태가 ‘까불이’로 의심될 때도 있었어요.

오정세: 일단 전 아니라고 알고 들어왔어요. 작가님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으니까요. 까불이의 존재는 중반부터 알긴 했는데 그때도 확신은 없었어요. 흥식이(이규성)인지, 흥식이 아버지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제3의 인물인지 혼란스러웠죠. 저희도 시청자처럼 ‘어떻게 풀릴까?’ 궁금해하면서 찍었어요. 근데 규태는 소장님(전배수) 말처럼 고라니를 치고 구안와사가 올 정도로 간이 작았잖아요. 그때부터 아니라고 생각했죠. (웃음) 만약 규태가 까불이라면 썩 좋은 결말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유쾌하지 않은 찝찝함이 남아 있는 느낌이었겠죠.

Q. 노규태에게 땅콩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정세: 규태의 찌질함, 외로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부족한 면, 이 모든 걸 표현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아니었을까요.

배우 오정세. 사진 제공. 프레인TPC

Q. 노규태는 물론 ‘동백꽃’의 모든 신과 등장인물들은 설정이 매우 촘촘한 느낌이에요. 그렇기에 임상춘 작가님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는 거겠죠. 작가님은 어떤 분인가요?

오정세: 음, 키가 180센티미터정도 되시고요, 수염이 엄청 기세요. 장난이에요. 저도 두 번밖에 못 뵈어서 잘 몰라요. (일동 폭소) 사실 작가님께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길 원하시는 것 같아서 저도 그 마음을 존중하고 지켜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Q. 다른 배우들도 그렇고, 오정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가 작가님에 대한 믿음이 강한 것 같아요.

오정세: 처음에 이 작품을 왜 구상하셨는지에 대해 물어봤어요. 작가님이 어느 작은 소도시에서 창문 하나 덜렁 있는 술집 속 한 여자를 생각하셨대요. 보통은 그 안에 있음으로써 그 여자의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 거란 편견이 있잖아요. 작가님은 그 안에 있던 여자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을 듣자마자 이해와 동시에 작품의 기본적인 틀이 세워진 것 같아요. ‘그 안에서 규태는 뭘 해야 하지?’라고 고민했고요. 규태 자체도 선한 사람이라고 얘기해주셨기 때문에 불편한 정서를 가진 규태를 디테일로 바꿔보려 노력했어요. 그런 노력이 한 끗 차이긴 해도 크게 보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물론 바탕은 완벽한 디테일의 대본이었지만요.

Q.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요?

오정세: 되게 많아요! 셀 수 없을 정도로. 하하. 마지막쯤에 자영이와 대구찜을 먹는 신에서 규태가 사레가 들려요. 그 지문이 뭐였냐면, ‘죽어도 무방할 정도의 사레가 들리다’였어요. 또, 향미(손담비)가 규태에게 “오늘부터 1일이야?”라고 할 때, 규태가 어색한 웃음을 짓는 신이 있었어요. 이걸 작가님이 대본에서 ‘ㅎㅎ하ㅎ히’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글에서도 ‘당황’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이 밖에도 문자 오타 같은 건 정말 다 대본에 있었던 거고요, ‘까멜리아의 치부책’도 그 안에 세세한 내용이 다 쓰여있었어요. 정말 대본 보면 놀라울 정도였죠.

Q. 드라마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본을 줄줄 외우고 있는 느낌이에요.

오정세: 다 기억하고 있어요. 대본이 너무 좋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애드리브 아니야?”라고 했던 것들이 거의 모두 대본에 있었으니까요. 규태가 동백이한테 “빙수 먹고 가!”라고 소리치는 신이 있었어요. 처음엔 제가 “빙수나 먹고 가!”라면서 ‘나’라는 한 글자를 추가했었거든요? 근데 느낌이 완전 다른 거예요. 결국 대본대로 갔죠. 규태가 고마움을 표현하는 정서인데, 자칫하면 ‘건물주 갑질’로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디테일까지 살려주셨어요.

Q. 배우로서 이런 촘촘한 대본이 나은가요, 아니면 좀 더 여유로운 대본이 나은가요? 오정세는 어떤 쪽이 편한가요?

오정세: 이렇게 완벽한 대본이 불편하지만 좋아요. 훨씬 요. 디테일함이 기분을 좋게 했거든요. 물론 그다음부턴 저와의 싸움이긴 했죠. ‘좋은 것’을 구현해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근데 또 생각해보면 ‘동백꽃’은 그다지 대본에 갇혀있진 않았어요. 제겐 5%나 자유가 주어졌잖아요. 완벽한 대본에 조금의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에 좋은 드라마가 완성되지 않았나 싶어요.

Q. 디테일을 완성하는 데에 배우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죠. 정말 명품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어요.

오정세: 그렇죠. 특히 향미 역을 맡은 (손)담비가 많이 고생했어요. 초반 촬영하면서 저는 향미랑 담비랑 교집합이 많다고 생각하며 안심이 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시청자분들께서는 완성된 것만 보시지만, 사실 규태도 제 안에서 어려움을 겪고 탄생한 캐릭터고, 심지어 대배우 고두심 선배님도 내면의 고민을 통해 캐릭터를 구현해내셨잖아요. 향미가 쉽지 않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안 지치고 건강하게 고민을 이겨내 준 담비에게 박수쳐주고 싶을 정도예요.

Q. 배우들의 시너지를 기대하거나 연기적으로 ‘선의의 경쟁’이 이뤄지진 않았나요?

오정세: 물론 다들 좋은 배우들이긴 하지만, 이번 작품은 ‘글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아요. 대본이 너무 좋아서 ‘내가 이걸 구현할 수 있을까, 없을까?’라는 고민이요. 가령, 첫 회에 용식(강하늘)이가 규태 지갑을 뺏어가는 신이 있었어요. 원래 대본에는 용식의 지문으로 ‘이를 앙다물고 주먹을 불끈 쥐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근데 저는 이 지문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규태 대사로 지문을 대사화시켰죠. “이를 앙다물고 주먹을 꽉 쥐었네? 어? 한 대 치시게?” 이런 식으로 글을 구현해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배우 오정세. 사진 제공. 프레인TPC

Q. 오정세란 배우는 같은 장르여도 매 역할을 새롭게 보여주는 능력이 있는 듯해요. 보통 캐릭터 분석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오정세: 주로 대사 옆, 밑에 있는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대사 암기는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하고요. 그 밖의 디테일함은 제가 꾸밀 수 있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규태는 금시계를 찰까? 아니야, 나서는 것을 좋아하니 국가에서 준 시계를 쓰겠지’하면서 경찰서에서 주는 시계를 찼고요. 허리띠도 다섯 칸 중에 하나는 안 채워지는 허술함 같은 디테일에서 캐릭터의 정서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또, 규태 표 허술함의 출발은 모두 ‘외로움’이라고 생각했죠. 왠지 규태의 방 한 켠에는 ‘외로움’을 주제로 한 책이 있을 것 같았고요. 제작팀에게 따로 부탁해서 책을 구해달라고도 했어요. 비록 화면에서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런 디테일로 노규태를 표현했어요.

Q. 오정세가 출연한 작품이나 캐릭터들은 많은 이들의 인생작, 인생 캐릭터로 남아왔어요. 정작 오정세의 인생작, 인생캐릭터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오정세: 음, 뭐 하나를 꼽기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다 좋았던 작품이었으니까요. 순위를 매기진 못하겠지만, ‘동백꽃’은 제 안에서 상위권에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작품을 찍으면서 스태프들, 심지어 캐릭터들에게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제가 위로받아서 신기한 작품이기도 했어요.

Q. 그만큼 좋은 작품이었다는 뜻이네요.

오정세: 작가님이 또 불러주신다면, 엔딩크레딧의 맨 마지막 인물이라도 하고 싶어요. 이런 거 있잖아요. 옹산 마을 47번째 사람, 은행 대기 46번의 인물 같은 거요. 정말 자랑하고 싶을 정도예요. 제 성향이 자랑하는 편은 아닌데, “나 이런 스태프들이랑, 이런 배우들이랑 작업했다!”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예요. 사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기 참 쉽지 않아요. 가까운 시일 내에 섣불리 만나기 어려운 캐릭터죠. 좋은 작품, 좋은 사람은 느닷없이 오기 마련이죠. “오늘 좋은 사람들만 만났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해도 안 반가운 사람들도 만나고, 어려운 사람들도 만나는 게 인생이니까요. 기대만큼 되지 않는 게 삶이잖아요. 기대만 하다 보면 스스로도 지치고 부담이 쌓이는 거죠. 그런데도 좋은 작품,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아서 좋아요.

Q. 바로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죠. 노규태의 폭발적인 인기가 또 다른 부담이 되진 않나요.

오정세: 새 작품 ‘스토브리그’는 야구의 뒷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예요. 이번에 저는 돈이 안 되는 팀을 없애려는 구단주 역할을 맡았죠. 규태와는 또 달라요. 그래서 그런지 부담이나 전작의 캐릭터를 뛰어넘어야 한다기 보다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뿐이에요.

Q. ‘동백꽃’에서 “가장 보통의 영웅”, “소소한 영웅”이라는 말이 나왔어요. 미처 돌아보지 못한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말하는 거겠죠. 오정세에게 ‘가장 보통의 영웅’은 누구인가요?

오정세: 이번 드라마 안에서 찾아보자면, 솔직히 모두가 다 ‘보통의 영웅’인 것 같아요. ‘동백꽃’ 드라마의 교훈이 ‘작은 선의가 뭉쳐서 기적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딱 우리 스태프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저를 비롯해 배우들은 보여지기 때문에 이렇게 감사하게 인터뷰도 하고 얘기를 하게 되지만, 드라마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은 정말 많거든요. 예를 들어 조명 감독님도 높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막내처럼 솔선수범 보이시면서 직접 움직이시기도 했고, 제작, 연출 팀 스태프들도 고민에 빠지다가 새 대본만 보면 저절로 웃음을 지으시더라고요. 그런 작은 행동, 손길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고 떠올리면 울컥하기도 해요. ‘동백꽃’은 그야말로 작은 영웅들이 모였던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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