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의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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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한서 기자
  • 승인 2019.01.2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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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minz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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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의리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1952년 2월 7일 충남 천안에서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서울 경기고등학교에 다니던중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국 멘로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드폴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버지인 김종희 창업주가 사망하고 김승연 회장은 29살의 이른 나이로 한화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 가운데 선친에게 경영권을 물려받은 10대 그룹 현직 총수 중 '최연소 총수' 타이틀을 가졌다. 김 회장은 이후 한화그룹의 규모를 빠르게 키웠다.

한화는 인수합병을 활발히 하며 그룹을 확대해 왔다. 한화는 ‘화학’과 항공기 엔진 제작사업을 포함한 ‘방산’을 핵심 산업으로 삼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01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화학(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과 방산(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계열사를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태양광사업도 뚝심 있게 밀어붙여 성과를 거두고 있다. 

김 회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글로벌사업 확대, 인재 확보, 준법경영 등 3가지를 2019년 한화그룹의 경영방향으로 제시했다. 글로벌사업 확대를 위해 베트남을 전진기지로 삼고 인재 확보를 위해 과감하게 외부 핵심인력을 영입하자는 내용 등을 담았다.

김 회장은 준법경영과 관련해서는 “한화의 모든 기업활동은 신의에 바탕을 둔 정도경영이어야 한다”며 2018년 출범한 컴플라이언스위원회 활동을 더욱 강화할 것도 지시했다.

또 김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단언컨대 앞으로 10년은 우리가 겪어온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혁명적 변화의 시기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그 10년이 한화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지금 이순간을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희 

김승연 회장의 아버지. 한화그룹 창업주다. 디어나마이트 킴이라는 별명을 소유하고 있다.

1922년생의 충청남도 천안출신인 김종희 창업주는 1937년에 서울에 있던 경기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한화의 시작은 지난 1952년 김종희 창업주가 '한국화약'이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설립 6년 뒤, 다이너마이트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다이너마이트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다이너마이트 킴이라는 별명도 당시에 얻었다. 이후 회사는 산업용 다이너마이트 생산에 매진해 1960~70년대 경부고속도로 등 도로 공사부터 각종 부두, 광산 공사 현장에 화약을 공급하며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1977년 호남선 이리역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나며 위기를 맞았다. 당시 이리역 구내에 대기하고 있던 1605호 화물열차에서 30톤의 고성능 폭탄이 폭발한 사고가 있었는데,열차에는 한국화약에서 제조된 다이너마이트 상자 914개(22톤), 초산암모니아 상자 200개(5톤), 초안 폭약 상자 100개(2톤), 뇌관상자 36개(1톤) 등 모두 1,250상자 30톤분이 실려 있었다. 이 폭발 사고로 집계된 인명피해는 사망자 59명, 중상자 185명, 경상자 1,158명 등으로 총 1,402명에 달했다. 김종희 창업주는 사고 이후 즉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사재를 헌납해 피해 복구와 이재민들을 위해 사용했다.

김종희 창업주의 생애는 한화그룹의 뿌리인 한국화약주식회사 역사와 대한민국의 화약사를 함께 보여준다. 김종희 회장은 회사 성장 과정에서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화약 폭발사고 등 여러 위기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포기하는 대신 정면 돌파로 답을 찾았다. 그의 노력은 한화그룹을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우고 나라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종희 창업주는 우리나라 간식 산업에도 큰 획을 그었다. 그는 1973년에 거듭된 적자로 위기에 몰린 빙그레의 전신인 대일유업을 인수한 후 1974년에 국내 최초로 생우유를 넣은 고급 아이스크림 '투게더'와 단지 모양의 '바나나맛 우유'를 선보였다. 대일유업이 출시한 제품들은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는데, 1981년에는 요플레를 출시하며 발효유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가며 한화그룹의 사이즈를 키워가던 김종희 창업주는 1981년 7월에 과로와 병환이 겹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의 차남이자 김승연 회장의 동생이다. 김구 선생의 손녀와 결혼했다.

김종희 한화 창업주가 1981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김승연, 김호연 두 아들의 지분 분할을 두고 명확한 유언을 남기지 않아 분가 과정에서 1992년 분쟁이 터졌다. 이 과정에서 1982년 대일유업에서 빙그레로 사명을 바꾼 빙그레는 한화그룹으로부터 아예 계열분리가 됐다. 이때 김호연 회장은 이를 상속받고 빙그레의 최대주주가 됐다.

김호연 회장은 당시 주요 계열사 경영에서 밀려난 데 반발해 형인 김승연 회장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김호연 회장은 형이 본인과 의논하지 않고 임의로 상속재산을 처분했다며 유산의 40%를 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승연 회장은 “1981년 당사자 간의 합의 등 민법상의 합법 절차를 밟아 상속재산이 분배됐고 10년 시효가 끝나 상속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승연 회장과 김호연 회장은 분쟁 이후 1995년 할머니 장례식 때 만나 재산분할에 합의하고 소송도 모두 취하했다.

두 사람은 같은 해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도 직접적으로 화해했다. 당시 김호연 회장은 “한때 (재산권 분쟁) 일로 서먹해졌지만 형과의 갈등은 모두 해소됐다”라며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형제 모임을 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한편, 빙그레 신임 회장이 되던 당시에 김호연 회장은 지나친 사업 다각화로 부실기업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았던 빙그레를 일으켜야 했다. 김호연 회장이 취임하던 해인 1992년 빙그레의 부채비율은 4000%가 넘었다. 

회사 형편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메로나'가 출시됐다. 지금까지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메로나(아이스크림)는 처음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메로나는 출시 첫해에만 2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메로나는 물론 바나나맛 우유, 투게더 등 효자 상품들 덕분에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한 빙그레는 지난해 매출 8500억원이 넘으며, 영업이익 350억원에 달하는 기업이 됐다. 

김호연 회장은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둘째 아들인 김신 씨의 딸 김미 씨와 결혼했다. 대학시절부터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다. 형인 김승연 회장이 1982년 결혼을 하자 다음해에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러한 인연으로 김호연 회장은 1993년 사재 112억원으로 김구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빙그레는 김구재단과 함께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 사업 외에도 후손 지원 사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한화이글스

대전시를 연고지로 하는 국내 프로야구 KBO의 프로야구단이다. 김승연 회장이 구단주로 있다. 홈구장은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이며, 마스코트는 독수리이다. 

대전을 연고지로 1986년 3월 8일 빙그레 이글스란 이름으로 창단됐다. 김승연 회장은 이때부터 지금까지 구단주를 유지하고 있다. 거듭된 부진과 우승실패, 부상악령에 1993년 구단이름을 그룹명과 같이 현재의 명칭인 한화이글스로 변경했다. 팀명 변경과 함께 유니폼은 종전의 주황색에서 빨간색으로 교체했고 로고도 전부 변경했다.

구단주인 김승연 회장은 야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팬들의 피드백을 곧장 듣고는 한다. 김 회장은 1999년 한화이글스가 첫 우승을 했을 때 선수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첫 우승을 할 때 유승안 한화이글스 감독의 부인이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하자 수술비를 지원하고 직접 문병을 가기도 했으며 유 감독 아들인 유원상 선수를 한화이글스에 입단하도록 하기도 했다. 또, 한화 이글스의 프런트가 FA인 이범호를 놓치는 일을 포함하여 여러 측면에서 팬들에게 원성을 사자 2011년 5월 구단 프런트를 전면 교체하고 야구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팬들에게 약속했다.

2010년대 들어 성적이 좋지 못하고 2014시즌 한화이글스가 또 꼴등에 그치자 팬들의 요구대로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는 데 직접 나선 일화 역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16년 들어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 감독의 독단적인 구단 장악, 혹사와  FA 영입 선수들의 잇다른 먹튀 등으로 논란을 빚으며 팀이 나락에 빠지자 프런트를 무시한 권력 남용, 당장의 성적에 눈이 멀어 팀의 미래를 내다버린 선택 등으로 나쁜 의미로 재평가를 받으며 김승연 회장은 구단에 깊게 개입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결국 2017년 김성근 감독은 퇴진한다. 이후 구단의 사령탑은 한용덕 감독이 맡게 됐으며, 한 감독은 오랜 부진에 시달렸던 한화 이글스를 2018년 가을야구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때 김승연 회장은 11년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한 구단을 축하해주기 위해 직접 경기장을 찾아 직관했다. 김 회장은 11년을 기다려 준 이글스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장미꽃 선물을 준비했다. 이날 관중 1만3000명에게 제공한 장미꽃 선물 총 비용은 약 4000만원이다. 모두 김 회장의 사비를 썼다.

열정, 의리

김승연 회장은 젊은 나이에 그룹의 총수에 올라 열정으로 경영에 나섰으며, 의리를 중시해 '의리경영'을 늘 강조해 왔다.  

부친인 김종희 창업주의 이른 타계로 29살의 젊은 나이로 김승연 회장은 회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젊음의 패기로 열정적이었던 김 회장은 '젊어서 안돼'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젊기에 가능하다'는 마음으로 거침없이 한화그룹을 만들어갔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꺼리던 수많은 기업들이 줄도산 당하거나 계열사들을 제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헐값에 팔 때, 김 회장은 과감하고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상황을 극복했다. 이후에도 새로운 인수합병, 신규 투자 등 적극적으로 그룹을 확장시켰다.

김승연 회장은 소문난 의리파다. 김 회장은 한화그룹이 IMF 위기를 극복할 즈음, 한화 직원들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찾도록 지시하여 돕고, 퇴직 후 자녀의 투병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전직 임원에게 위로금을 전달한 바 있다. 그룹 임직원 가운데 심장병을 앓고 있는 자녀가 19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들 전원에게 수술비 전액을 지원해 준 적도 있다. 

서울프라자호텔 리모델링으로 3개월 동안 문을 닫게 되자 모든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준 일화와 한화에너지를 현대정유에 매각할 때 100% 고용승계를 약속받은 일 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배임 혐의 이후 2014년 경영에 복귀해 한화건설 이라크 공사현장을 방문할 때 직원들이 회를 먹고 싶어 한다고 하자 광어회 600인분을 비행기로 공수해가기도 했다.

또, 천안함 사태가 벌어진 이듬해인 2011년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을 한화그룹 계열사에 우선 채용한다고 밝혀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김 회장은 희생 장병 유가족에게 편지로 "지난날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이 우리 조국을 지켜주었듯, 앞으로 한화에서 제가 여러분의 든든한 가족이 돼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실제 유가족 가운데 19명이 한화그룹에 입사했다.

세 아들

김승연 회장에게는 세 아들이 있다. 첫째 아들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둘째 한화생명 김동원 상무, 셋째인 승마선수 출신인 김동선 씨다. 

장남인 김동관 전무는 잡음없이 착실히 경영 전반에 나선 반면, 둘째와 셋째는 사회적 물의를 여러번 일으켰다. 둘째인 김동원 상무는 유명한 보복폭행 사건 뿐만 아니라, 뺑소니와 대마초까지 피운바 있다. 보복폭행 사건은 다음 키워드에 소개하겠다. 우선, 김 상무는 2011년 뺑소니 사고로 이틀 뒤 조사를 받고 벌금 700만원 판결을 받았다. 당시 김 상무는 교통사고를 내고 구호조치없이 도망갔다. 이후 2014년 김 상무는 또 한번 논란의 중심이 됐는데, 그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경기도 오산 주한 미군기지 군인이 군사 우편으로 밀반입한 대마초 944g 가운데 일부를 지인으로부터 건네 받아 4차례 피운 혐의가 있다. 이 혐의로 김 상무는 2014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셋째 아들인 김동선 씨 역시 물의를 여러번 일으켰다. 김 씨는 2017년 1월5일 새벽 술집에서 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김동선 씨는 이날 새벽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모 주점에서 술에 취한 채 난동을 부리고 종업원을 폭행했다. 

김승연 회장은 김동선 씨의 폭행사건에 자숙할 것을 김동선 씨에게 전했다. 김동선 씨는 2017년 3월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김동선 씨는 같은 해 다시 한번 아버지를 실망시켰다. 김 씨는 2017년 9월 서울 종로구 한 술집에서 대형로펌의 신입 변호사 모임에 참석해 변호사들에게 폭언과 함께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구설수에 올랐다. 김 씨는 법률회사 김앤장의 신입 변호사들 친목 모임에 지인의 초대로 참석했다. 술에 취한 김 씨는 변호사들에게  "너희 아버지는 뭐 하시냐", "나를 주주님이라 불러라"는 등 막말을 하고 만취한 자신을 부축하는 변호사의 뺨을 때리고 한 여성 변호사의 머리채를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동선 씨는 사건 이후 입장문을 내고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 할 제가 물의를 일으켜 면목이 없다”며 “우선 피해자분들께 엎드려 사죄드리고 용서를 빈다”고 밝혔다. 김승연 회장 역시 입장문을 통해 “자식키우는 것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다”며 “아버지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무엇보다도 피해자분들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로부터 폭행을 당한 변호사들이 김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김씨의 변호사 폭행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각종 논란

김승연 회장 역시 둘째, 셋째 아들 못지 않게 각종 논란거리를 불러일으킨 경험이 있다. 우선, 과거 사회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으로 한화그룹의 '보복폭행' 사건이다. 김 회장의 둘째 아들인 김동원 상무는 지난 2007년 3월 서울 청담동 가라오케에서 북창동 S클럽 종업원 일행과 시비가 붙어 다쳤다. 이에 아버지인 김 회장은 자신의 경호원과 사택 경비용역업체 직원 등 다수의 인력을 동원해 현장으로 갔고, 자신의 아들과 싸운 S클럽 종업원 4명을 차에 태워 청계산으로 끌고가 쇠파이프 등을 사용하며 직접 폭행했다. 이 사건으로 김 회장 총수일가를 비롯해 한화그룹은 사회적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김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으로 감형돼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김 회장은 당시 재판정에서 노골적인 답변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법정에 선 김 회장은 주점과 청계산에서 보복 폭행을 가했다는 공소 사실은 대부분 인정했다. 김 회장은 '피해자를 어떻게 때렸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오른팔을 직접 휘둘러 보이며 '복싱하듯 얼굴을 몇 차례 때렸다'고 답했다. 청계산에서는 '직접 때리다 지쳐 경호원들에게 더 때리라'고 했으며, 아들에게는 '빚진 만큼 갚아 주라'며 아들이 직접 폭행을 하게 했다고 말했다. 

김승연 회장은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도 있다. 김 회장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위장계열사의 부채를 갚기 위해 한화 계열사들로부터 3500억원을 가져다 쓴 혐의로 2011년 1월 불구속 기소됐다. 금융감독원이 2010년에 한화그룹의 비자금 의심 차명계좌 5개와 관련해 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하며 조사가 시작됐었다.

이후 김 회장은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1억 원을 받았다. 계열사에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그러나 4개월 만에 건강상 이유로 구속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2013년 4월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으로 감형됐다. 상고심에서 2심을 파기환송했고 2014년 2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고 풀려났다. 이때 판결을 두고 재벌 총수를 봐주던 예전의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공식이 되살아났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 외에도 김 회장은 계열사 주식을 자식들에게 저가로 넘겼다는 편법상속 논란, 외환관리법 위반 논란이 일은적도 있다. 편법상속 논란은 7년간의 법정다툼 끝에 위법하지 않다고 2017년에 판결됐으며, 외환관리법 위반은 불법 외화 유출이 인정되어 1993년에 구속됐었다. 그 후 법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 김 회장이 징역을 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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