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리(KOSRI) 윤경빈 객원 연구원] 성인 한 명이 하루에 섭취하는 약은 몇 가지나 될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약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미 운동부족과 과음, 만성피로가 겹쳐진 현대인들에게는 만성적인 질환이 되어버린 고혈압과 수시로 저린 손과 발을 위한 혈액순환제는 물론, 비타민이나 철분과 같은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매일 복용하는 일상적인 영양제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만일 두통이 잦다면 진통제는 매일 한 두 개씩일 것이고, 요즘 같이 수시로 변하는 날씨에 감기라도 걸리면 해열제와, 소염제, 진통제까지. 이렇게 우리는 수 많은 약들에 의존해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우리나라 사람들이 1인당 외래진료를 받은 평균 횟수는 16.0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의 6.8회 보다 두배 이상 많았다는 결과가 있다. 그럼 우리가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있는 약을 만들기까지 어떠한 과정이 있었을까?

인류 최초의 진통제는 버드나무 껍질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천연 진통제인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은 아스피린의 원료인 ‘살리신’으로 구성되어있다. 버드나무 껍질에는 열을 내리고 세균의 번식을 막는 효능이 있지만 맛이 너무 쓰고, 먹으면 속이 쓰린 경우가 많아 쉽게 복용하기가 힘든 약이었다. 화학 발달과 신기술로 아스피린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해열진통제가 탄생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실제로 아스피린은 해열제라는 기존의 효능은 물론이고 적은 용량을 꾸준히 복용한다면 심장질환 및 혈관질환을 예방한다고해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널리 다양한 질환에 쓰이는 약이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와 같은 특정 지역에만 발생하는 질병인 수면병(아프리카가주발생지역으로체체파리에물려감염되는질병. 수면증상이 있어 수면병으로 불린다) 같은 경우, 치료약의 수요가 적은데다 수요가 있어도 돈많은 사람이나 살 수 있는 형편이다. 분명히 필요한 치료제임에도 많은 제약회사들은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개발이나 생산을 하지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 이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어떻게 약을 얻을 수 있을까?

복제약(Generic Drug 또는 Copy Drug) 시장으로 유명한 인도. 그 영향력이 오죽했으면 인도는 ‘개발도상국을 위한 약국’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복제된 약은 정품과 유사한 성분과 효과를 지녔지만 가격은 많게는 정품의 십 분의 일 정도의 저렴한 수준이다. 이러한 복제 의약품들은 ‘국경없는 의사회’와 같은 국제적인 비정부기구들을 비롯한 여러 구호단체들과 제 3세계 국가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구호나 의료지원 활동지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되면서 돈이 없어 치료약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골칫거리였던 많은 질병들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이런 움직임에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

수년전 스위스의 다국적제약회사인 노바티스는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특허권을 주장하며 인도정부를 상대로 “우리가 특허권을 가진 글리벡의 복제품생산을 하지 말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인도법원은 노바티스의 소송에 대해 “약의 구조나 효능의 아주 적은 변화만으로 특허권을 20년씩이나 연장시키는 사태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국제 구호 단체들은 법원의 결정을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지난 1995년 세계무역기구 체제 이후 회원국들이 의약품에도 특허권을 가질 수 있게됐지만,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면 정부가 강제실시권을 발효해 기관이나 회사를 통해 비슷한 성분을 지닌 복제약을 대량으로 수입한다거나, 아니면 직접 복제약을 생산토록하는 규정을 마련해두었다.

복제약 시장에 대한 다국적제약회사들의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4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HIV/AIDS 치료제인 ‘푸제온’의 경우 다국적 제약회사인 로슈는 연구와 개발비에 들였던 자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책정한 약품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는 이유로 공급을 거부했다. 로슈가 처음 제시한 약품가격을 보면 환자들은 연간 3200만원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약품단가인상 협상과 관련된 로슈와 보건복지부의 줄다리기는 지속됐고,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협상을 벌이고 있는 로슈의 행태를 보다 못한 많은 비영리기구들이 세계적인 연대와 서명운동을 벌이자 2009년 푸제온을 다시 공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정적 접근 프로그램(Compassionate Access Programme)’이라며 선심쓰듯 이름붙인 푸제온 무상공급은 오히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다국적 제약회사를 향한 분노를 키웠다.

약품 가격 인상때마다 매번 나오는 연구개발비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약품개발은 제약회사 보다 대학 연구소나 병원부속 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제약회사들은 이들을 눈여겨보다 돈이 된다 싶으면 약품의 특허권을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윤리냐 기업정신이냐의 갈림길에 놓인 많은 다국적 제약회사들. 약이 없어, 그리고 그 약을 살만한 돈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전 세계 많은 환자들을 고려했을 때 윤리적, 사회적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많은 성찰과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참조:
1. The Body Hunter: How the Drug Industry Tests Its Products on the World’s Poorest Patients/ Sonia Shah
2. The Truth about the Drug Companies: How they deceive us and What to do about it/Marcia Angell
3. [세계의 인권보고서] 특허 및 강제실시권: 최근의 몇몇 경험/ 인권오름
4. [그대 건강권은 안녕한가7]사회적 소수자의 의약품접근권: 초국적 제약회사는 어떻게 ‘희귀’와 ‘난치’를 상품화 했나/인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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