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택배기사의 하루 

택배기사의 A씨의 하루는 아침 6시부터 시작한다. 씻고 출근 준비를 마치면 집배장으로 향한다. 집배장에서 일을 시작하면 7시. 오늘 배송해야 할 물품들이 집배장에 오기를 기다린다. 허브터미널에서 물품을 담은 트럭 여러대가 집배장으로 온다. 쏟아지는 물품들. 자동 물품 분류기가 자신의 배송 지역에 맞는 물품을 분류할 때까지 기다린다. 트럭이 한꺼번에 오지 않아, 오늘치 물품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물품 분류 작업을 마치면 오후 1시. 

이제 물품을 트럭에 싣고 배송을 시작한다. 직접 고객의 집 앞까지 찾아가 배송 물품을 전달하는 그 택배 배송 말이다. 트럭을 몰고 관할 구역에 가 일일이 고객에게 배달한다. 아파트는 그래도 괜찮지만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는 힘들다. 특히, 생수병이나 쌀포대가 배달 물품으로 있을 때는 일일이 등에 짐을 지고 올라가야 한다. 한 번 올라갔다 오기만 해도 허리가 뻐근하다. 파스는 달고 산다. 

밥 먹을 시간도 없다. 하루 200~300개에 달하는 물품을 배송하려면 시간을 아껴야 한다. 택배비 2500원 중 택배기사에게 돌아가는 돈은 약 800원대. 하루종일 온 동네를 뛰어다니다 보면 오후 9시가 훌쩍 넘는다. 피곤과 땀에 쩔은 상태로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잠에 빠진다. 내일도, 출근이다. 

사실상 노동자지만 그는 '사장님'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리는 그들이지만 법적으로 택배기사의 근로시간을 규제할 방법은 없다. 대부분의 택배기사는 택배업체의 직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택배기사들은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 택배업체의 하청업체인 대리점과 계약한다. 대리점과도 고용관계가 아니다.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계약한다. 이른바, 형식상 개인사업자이지만 임금노동자 성격을 지닌 특수고용노동자다. 

근로자가 아니니 주 52시간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택배기사들은 하루 12시간 넘는 과로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를 보호해줄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없다. 직원이 아닌 '사장님'이다 보니 택배 트럭, 기름값은 물론 유니폼까지 자비로 구매해야 한다. 얼마 전 쿠팡이 "일반 택배기사와 달리 쿠팡이 직접 고용하는 쿠팡의 직원, 쿠팡맨을 1000명 채용할 예정이다. 유류비, 회사 트럭, 4대 보험을 제공한다"고 자랑스레 발표한 것도, 이런 계약구조에서 택배기사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 택배기사는 "지금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직접고용은 아주 먼 얘기"라고 말했다. 

공짜 노동?

얼마 전 택배업계에 큰 이슈가 있었다. 전국택배연대노조 소속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이 물품 분류 작업은 '공짜 노동'이라며 파업하고 개선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배송과 관련 없는 물품 분류 작업을 택배기사가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우체국 택배의 경우는 집배장에 물품이 정리돼 있어 별도로 분류 작업을 할 필요 없다. 바로 배송을 시작하면 된다. 그러나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가 직접 물품 분류 작업을 해야 했다. CJ대한통운은 "물품 분류 작업도 수수료에 포함돼 있다"고 말할 뿐이었다. 

집배점에서 일일이 물품 분류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휠소터가 도입되기 전이다. 제공: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첨예한 갈등을 벌이다 지난 7월 19일 김종훈 민중당 국회의원(울산 동구)의 중재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이후 CJ대한통운은 자동 분류 작업 기계 '휠 소터' 설치를 확대해 물품 분류 작업 시간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택배기사들은 여전히 12시간이 넘는 노동 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김진일 택배노조 정책국장은 미디어SR에 "휠 소터가 자동으로 물품을 분류해준다고 해도, 집배점에 오는 간선차가 오는 시간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배송 물품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변함없다"며 "CJ대한통운은 물품 분류 작업을 기다리는 동안 배송을 다녀오라고 하는데, 오전에 이미 다녀온 지역의 물품이 또 있으면 다시 다녀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배송 시간도 두 배, 기름 값도 두 배가 나온다"고 말했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라는 것이다. 근로시간은 여전히 12시간이 넘는다. 김 국장은 "우체국 택배처럼 분류작업 인원을 별도로 투입하거나, 간선차를 보다 빨리 오게 하는 등 보다 효율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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