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혜화에는 6만 명의 여성이 모였고, 광화문에는 20여 개의 여성시민단체들이 모였다. 각각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과 ‘낙태죄 폐지’라는 다른 목적으로 모였지만, 형사사법부의 변화를 외치는 것은 같았다.

7일 서울시 혜화역 인근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와 '낙태죄 폐지' 집회. 사진 김시아 기자

“나는 포르노가 아니다”, 붉은 시위

7일 오후 3시, 혜화역은 붉은 옷을 입은 여성들에 발을 디딜 틈도 없었다. 이들은 ‘불편한 용기’가주최한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 근절과 촬영·유포·소비자의 처벌을 촉구하는 ‘블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혜화를 찾았다. 5월 21일의 1차 시위, 6월 9일의 2차 시위에 이은 세 번째 집회다. 6만 명이 운집하는 등 여성인권 및 성차별 관련 시위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참여자들은 최근 벌어진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을 두고 경찰이 이례적으로 빠른 조사에 나서고 여성 가해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한 것을 편파 수사로 보고 있다. 이에 관해 “여성이 피해자일 때도 동일하게 수사하고 처벌하라”며 형사사법체계의 변화를 촉구했다.

약 6만 명 정도가 운집한 혜화역 시위. 사진 김시아 기자

1·2차 시위 때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가 가능했던 이번 시위에는 초등학생부터 나이가 지긋한 70대 할머니까지 모여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사법 불평등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역대 남성 불법촬영 범죄자의 80% 가량이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아왔고, 기소율은 31%였던 점들을 지적하며 형사사법부의 개혁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집회 장소 근처 흡연 구역에 휘발유가 뿌려져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는 등 안전에 관한 불안이 고조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미디어SR에 “1차 집회 때 염산 테러 예고 게시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등 시위대가 불안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시위의 대비를 이전보다 강화했다”고 밝혔다. 흡연구역 휘발유 투척에 관해서는 “발견한 시위 참가자들이 일단 물을 뿌려 희석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검은 시위

7일 서울시 서대문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집회. 사진 김시아 기자

같은 날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는 여성시민단체들이 모여 선택적 임신 중절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여성·시민·장애인·인권단체가 모여 지난해 만든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7일 오후 5시부터 3시간 동안 광화문 일대를 행진했다. 2000명 가량이 모인 이번 집회는 역대 최대 규모의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다.

이들은 “낙태죄는 위헌”이라 외치며 “여성의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주최 측은 “낙태죄가 여성이 평등한 사람으로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권리를 제한하고,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며 성차별 사회 구조를 강화해왔다"고 집회 취지를 밝혔다.

집회에 참여한 한 여성은 미디어SR에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기 위해 광화문에 나왔다”며 “낙태죄는 위헌임이 분명하고, 사법부는 이를 인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능국회는 여혐범죄 동조자다’, ‘낙태죄는 위헌이다’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진 피켓을 든 혜화역 시위대. 사진 김시아 기자

7일 거리로 나선 여성들은 성평등을 위해 입법·사법·행정부가 변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권력 주체가 바뀌어야 실질적인 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1·2차 혜화역 시위 약 일주일 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대책을 내놓았지만, 여성들은 이번 대책 역시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성범죄 관련 법안이 마련되지 않았고, 현재 국회서 계류 중인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의 통과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또한, 혜화 시위대는 ‘편파 수사’에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지탄하며 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이 3일 국무회의에서 "편파수사라는 말은 맞지 않다"고 선을 긋고, 여성들의 시위 등이 남녀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표현한 것에 대한 불만이다. 이들은 “자칭 페미니스트 대통령 문재인은 지금 당장 제대로 응답하라”고 외쳤다.

이어, 여성경찰의 성비를 대폭 늘릴 것, 여성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의 임명, 고위관직 여성검사 임명, 문무일 현 검찰총장의 사퇴 등을 요구하며 남성 중심적 권력이 변화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법부의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을 지적한 낙태죄 폐지 집회 참가자들. 사진 김시아 기자

‘낙태죄는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광화문 시위대 또한 사법부의 개혁을 촉구하며 법무부의 사과를 요구했다.

법무부는 최근 낙태죄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남성 중심적인 변론요지서를 제출해 곤욕을 겪은 바 있다.

법무부는 "통상 임신은 남녀 성교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강간 등의 사유를 제외한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라며 "이에 따른 임신을 가리켜 원하지 않은 임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낙태죄는 합헌이라 주장했다.

또한, 임신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변화"라고 서술하는 등 임신을 통한 여성의 신체적 변화는 물론 임신 후 경력단절 등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보였다.

낙태죄 폐지 집회에 참가자 A씨는 미디어SR에 “여성의 건강권, 생명권, 평등권, 행복추구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법무부의 변론요지서를 보며, 우리나라 사법부의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낮은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며 “사법부의 개혁 없이는 여성은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