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미투는 지난 2월 한 여 검사의 폭로로 시작됐습니다. 그 이후 미투는 사회 전방위로 뻗어 나갔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유명인들 혹은 권위 있는 인물들이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사회적 충격의 진동도 컸습니다.
미투 캠페인이 있기 훨씬 전부터 유명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성 스캔들은 종종 있었습니다. 때로는 단순한 성 스캔들이 아닌 '성폭행이라고 주장'하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이 모든 관계를 '유명하지 않은 자가 유명인을 통해 이득을 얻고자 한 관계'라고 프레임화 하는데 익숙했습니다. 이 프레임은 유명인이 유명세를 이용해 성적 착취를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심보다 더 공공연하게 이야기 됐습니다.
그런데 미투 캠페인을 계기로 비로소 들리게 된 피해자의 목소리는 어땠나요. 피해자들은 그 관계 속에서 이득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완강하게 거부하지 못했던 이유는 '나를 해할 수 있는 상대의 위치' 때문이었다고 말하면서 성범죄 속 관계의 불평등함에 대한 논의가 비로소 시작됐습니다.
최근 유튜버의 폭로를 계기로 드러난 비공개 촬영회라는 사진계의 음성적 문화. 그 속에도 관계의 불평등함은 목격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를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도 심각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와 이 음성적 문화를 폭로하고자 하는 내부 고발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언론을 살펴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최근 한 유튜버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른바 '비공개 촬영회'에 대한 폭로를 했다. '비공개 촬영회'란 주로 일반 사진 동호회 회원들 사이에서의 활동인데, 모델을 섭외해 밀폐된 공간에서 촬영을 하는 모임이다. 이 촬영회에서는 주로 선정적인 사진들이 촬영됐다.
유튜버 양 씨는 자신의 동의 없이 다수의 남성으로 이뤄진 포토그래퍼들의 강압 속에 원치 않는 선정적 촬영을 해야했다고 털어놓았고, 양 씨의 폭로 이후 다른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경찰 수사로까지 이어진 이번 사건에 대해 해당 촬영이 이뤄지고 모델을 직접 섭외한 스튜디오의 실장 정 씨는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반박의 요지는 '동의 하에 이뤄진 촬영'이라는 것. 정 씨는 한 매체를 통해 양 씨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공개했다. 이 메시지 속에는 양 씨 역시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하려는 듯한 뉘앙스가 포함돼 있었다. 사회적 여론은 정 씨에 대한 비난에서 양 씨에 대한 비난으로 옮겨갔다.
'비공개 촬영회'는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성적 착취다 VS '동의' 하에 이뤄진 거래라면 문제가 없다
'비공개 촬영회' 사건을 보는 시각은 양분돼 있다. 한 쪽은 이 촬영회를 성적 착취라고 보며, 명확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행위라고 인식한다. 또 다른 한 쪽은 상호 동의 하에 벌어진 '거래' 행위이며, 양 씨가 뒤늦게 그 동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라 판단한다.
전자가 가해자는 처벌 받아야 하며 피해자는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후자는 '양측이 상호 동의 하에 이뤄진 거래라면 그게 무슨 문제인가'라고 반박하고 도리어 양 씨가 무고죄 혐의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지난 2월 사회 전반을 뒤흔든 미투 캠페인 이후,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 속에서 '관계의 불공정성'에 주목해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동안 성범죄 수사 및 판결에서 쟁점은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했느냐' 여부였는데, '관계가 불공정한 상태에서는 강한 저항이 불가능 할 수 있다'는 반박의 목소리였다. 피해자들의 이런 주장은 대다수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조직 내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가졌다.
양 씨와 정 씨 등 가해자들의 관계 역시 선정적 사진을 유출할 수 있는 관계이며 밀폐된 공간 안에서 신체적으로 위협을 가할 수도 있는 일대 다수의 관계라는 점에서 불공정 관계라고 볼 수 있는 근거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의 동의를 문제 없다고 볼 수 있을까.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심리적 두려움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허락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동의'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표면적으로는 동의 하에 이뤄진 일일지라도, '권력의 창', '힘의 차이', '지위의 차이'와 같은 관계의 본질에 주목하라고도 덧붙였다.
포토그래퍼와 모델의 관계는 대부분 수평적이지 않다
양 씨의 경우를 제외하고, 통상적인 모델과 포토그래퍼의 관계 역시도 항상 수평적이지는 않다는 목소리가 있다. 패션계 한 관계자는 "패션 업계에서도 포토그래퍼의 영향력은 크다. 찍혀야 하는 입장인 모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모델에게 포토그래퍼는 자신의 커리어를 좌지우지 하는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라며 "다만, 모델이 영향력이 있거나 유명하다면 관계는 다르게 설정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모델에게 포토그래퍼들은 자신의 작업을 완성해주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사진계의 한 관계자 역시 "돈을 들여 프로필 사진을 촬영할 형편이 되지 않는 무명 모델의 경우, 사진 촬영 아르바이트를 통해 본인의 프로필 사진을 작업하려고도 한다. 또 이런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본인의 포트폴리오가 되기에 단순한 아르바이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잘 찍히는 것이 중요한 입장에서는 포토그래퍼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양 씨 폭로 이후, 비공개 촬영회 속의 음성적 문화를 폭로하고자 나선 박재현 사진가 역시 "모델이 잘 나가는 유명인일 경우에는 갑이 될 수도 있지만 보통은 촬영을 주관하는 사진가의 힘이 더 센 편이다. 상대적으로 여성 모델이 더 불리한 위치인 것은 맞다"라며 "비공개 촬영회의 경우, (모델을 모집하는 측에서) 모델의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를 불문율인 것처럼 '이 단계를 거쳐야 네가 유명해질 수 있고 얼굴을 알릴 수 있다'라고 말한다"라고 전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불공정한 관계를 기반으로 한 성 착취의 문화가 비공개 촬영회라는 이름으로 사진계 깊숙한 내부에 은둔해 있었다는 점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선정적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성착취인가
선정성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성착취, 성폭력에 해당하느냐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런 불공정한 관계에서 기반된 '비공개 촬영회'의 분위기 속에서 숱한 성폭력 상황들이 발생했다는 내부의 진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양 씨 역시 단순히 선정적인 사진을 촬영 당한 것을 넘어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이 행해졌다고 폭로했다. 또 미디어SR이 입수한 피해자의 진술을 비롯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화 음성 파일 등에서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단순히 선정적 사진을 찍는 것 이상의 행위들을 요구하고 있었고, 피해자들은 이를 불편해하고 불쾌해했다.
게다가 촬영 이상의 행위는 동의와 계약을 기반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기에 이는 명확한 성착취, 성폭력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무고하다면 질문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씨가 무고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청와대의 담을 넘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무고죄 특별법을 제정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미투 운동이 일부에 의해 변질되어 있다' '미투를 그저 돈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나 무죄한 사람을 매장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하며, 무고죄를 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청원자는 이 무고죄 특별법을 '양예원 법'으로 명명했다. 양 씨가 돈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나 무고한 사람을 매장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번 폭로를 했다는 전제를 깔아놓은 것이다.
이 청원은 31일 기준 16만명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렇다면 이제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겠다.
불공정한 관계 속에서 촬영이 강행 됐을 확률이 높은데다 선정적 사진이 유출된 상태에서의 양 씨의 폭로가, 양 씨를 계기로 드러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돈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일까, 아니면 무고한 사람을 매장시키기 위한 수단일까. 불공정한 관계 속에서 선정적 사진을 촬영하도록 유도하고 때로는 그 이상의 행위를 요구했으며 그 사진을 유포한 이들은 무고할까.
[비공개 촬영회는 무고한가①] 명백한 성착취 VS 상호 동의 속 거래
[비공개 촬영회는 무고한가②] 피해자 "거부? 촬영장 안에선 그 어떤 것도 '흉기'"
[비공개 촬영회는 무고한가③] 내부고발자 "핵심은 사진계 내 성폭력'"
[비공개 촬영회는 무고한가④] 권력형 성폭력의 또 다른 이름
[비공개 촬영회는 무고한가⑤] 언론이 성범죄를 보도하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