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대학로에서 열린 '불법촬영 성편파 수사 규탄 시위'. 사진. 김시아 기자

2018년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은 남녀 성대결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대학로에서 '불법촬영 성편파 수사 규탄 시위'가 열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1만 여명의 여성들이 참석했다. 이날의 시위는 여성 관련 의제로 열린 집회 중 최대 규모 집회로 기록됐다.

이날 여성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의 남성 모델의 누드 사진이 불법 촬영 및 유출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수사 결과, 여성이 피의자로 특정됐으며 현재 증거 인멸 우려 등의 이유로 피의자는 구속된 상태다. 이와 관련, 여성들이 '차별적 수사'를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여성이 피해자였던 숱한 '몰카' 사건들의 경우,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처벌도 느슨했으며 수사 과정에서의 2차 가해들도 많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시위에 앞서서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불공정한 수사 관행을 없애달라는 취지의 청원이 올라와 30만명을 훌쩍 넘는 수의 동의를 얻어내기도 했다.

반면, 시위 당일 대학로에서는 이 시위에 반대하는 집회 역시 열렸다. 반대 집회 측 주장은 "여성들이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에 분노한다"였다. 반대 집회는 이날 시위와 비교했을 때 소규모로 이뤄졌지만, 온라인에서의 여론은 여성과 남성의 성대결 구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몇몇 유명 연예인과 관련된 논란이다.

가수 수지는 최근 유튜버 양예원 씨가 폭로한 과거 한 스튜디오의 비공개 촬영회에서 겪은 성폭력 경험과 관련된 청와대 청원에 참여했다는 내용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게재했다. 수지의 영향력으로 청와대 청원은 10만명의 동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수지는 이를 해명하는 내용의 장문의 글을 또 다시 게재했다. 수지는 글 속에서 "그 분이 여자여서가 아니다.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끼어들었다. 휴머니즘에 대한 나의 섣부른 끼어듦이었다"라고 전했다.

수지가 청와대 청원 참여 사실을 알리고 해명을 하는 사이, 청와대 청원에는 '수지의 사형을 청원한다'는 과격한 내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가수 설현은 수지가 올린 양예원과 관련된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설현이 소셜 미디어에서 페미니즘에 반하는 유명인으로 간주되는 일부 연예인의 계정을 언팔로우 했다는 네티즌들의 주장까지 제기됐다. 여성들이 많은 사이트에서는 설현을 응원하고, 남성들이 많은 사이트에서는 "설현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일었다.

수지와 설현에 앞서서는 가수 손나은이 인스타그램에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가 적힌 핸드폰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논란에 휩싸여 사진을 삭제한 바 있으며, 아이린 역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일부 팬들 사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유명인들이 이른바 '여성'에 대한 논란에 본인의 생각을 표하거나 혹은 표한 것으로 비춰지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뜨거운 감자가 돼 찬반양론을 이끌어내는 현상은 '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논란이 남녀 성대결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다.  

이와 관련, 정사강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 연구소 연구위원은 21일 미디어SR에 "요즘 페미니즘 논란이 성대결 구도로 가는 양상들이 많이 보인다.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온라인 등 성별화 된 공간에서 담론이 일다보니 그런 양상으로 이어지게 됐다. 또 언론에서 자극적 언어들을 사용하며 여성 대 담성, 남성 대 여성의 구도로 몰고가는 경향 탓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정 연구위원은 이 같은 현상이 국내에서만 유독 벌어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해외와 비교해 통계를 내 본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등, 청년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부분들이 있고 이 것이 성대결로 표출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또 한국은 (성차별과 관련) 사회적 담론이 숙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일부 현상들만 보고 공격하는 양상도 있다"며 "외국의 경우에는 유명 남성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면서 여성 및 사회적 약자와 연대해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에 적극적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유명인들이 페미니스트라고 본인을 정체화 하지 않아도 조금만 관련된 모습이 발견되면 공격을 받게 된다"고 전했다.

현 상황이 건강한 담론으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어떤 전환이 필요할까. 정 연구위원은 "한국은 성차별이 공고화 된 사회인만큼, 이 문제가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단순한 성대결 구도로 누군가를 공격해서 해결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라며 "성평등이 이뤄져야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이롭다는 인식 역시도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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