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대한항공 규탄 집회에 모인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과 일반 시민. 구혜정 기자

4일 저녁 7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대한항공 규탄 집회에는 대한항공과 계열사의 전현직 직원과 일반 시민 4백 여 명이 참여했다.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집회 참가자는 계단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사측으로부터의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저항을 상징하는 영화 ‘브이포 밴데타’의 가면을 착용하고 참석했다. 주최측은 집회가 끝난 후에도 바로 가면을 벗지 말라고 당부했다.

집회에 참석한 대한항공 현직 기장은 미디어SR에 "착용한 가면은 '웃고있지만 뒤에서는 울고있는 대한항공의 모습'을 상징한다"며 "가면을 벗고도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부인 이명희, 그리고 세 자녀의 이름을 각각 부르며 "퇴진하라"고 외쳤다.

집회 사회를 맡은 박창진 전 사무장. 구혜정 기자

이날 시위의 사회는 일명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박창진 전 사무장의 사회를 주도로 자유 발언으로 이뤄졌다.

대한항공의 한 직원은 “나 같은 관리자들은 이 자리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 (본인 또한) '조패밀리'(조 씨일가)의 갑질의 가장 큰 방조자 였다”며 "이제는 용기를 낸 직원들과 사내에서, 그리고 밖에서 함께 개혁을 외치겠다"고 말했다. 부산의 직원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그는 “회사에서 저를 찾는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지만 ‘스스로에게 당당하자’”고 외쳤다. 그리고 그는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나는 부산 항공우주사업본부 소속 김건우!”라고 소리쳤다.

대한항공의 한 승무원은 “대한항공의 갑질 횡포는 객실 승무원부터, 기장, 경비원에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지금은 갑질 횡포가 수면위로 드러나 잠시 유보되었지만, 이를 끝까지 멈춰야 한다”고 외쳤다.

이어 이들은 “세습경영을 끝내라! 조가는 경영일가에서 물러나라! 벌받아라”라는 말을 삼창했다.

'조씨 일가를 수사해달라'는 팻말을 든 대한항공 직원. 구혜정 기자

대한항공 현직 직원인 남편과 함께 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은 “남편이 과거 입사년도에 대한항공의 불합리한 문화를 바꿔보겠다고 애썼지만 딸이 태어나던 해 해고됐었다”며 “다시 복직하고 회사를 다녔지만 딸이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대한항공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며 분노를 표했다. 이어 “직원들의 살만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용기를 냈을 때 이분들의 옆을 따뜻하게 지켜달라”고 이야기했다.

집회가 시작한 지 한 시간여가 지나자, 박창진 사무장은 마스크를 벗고 집회에 모인 이들과 함께 “자랑스런 대한항공, 사랑한다 대한항공”이라는 구호를 계속해서 외쳤다.

영화 브이포 벤데타의 가면을 착용한 대한항공 승무원들. 영화는 감시당하는 미래의 사회의 어두운 비전을 배경으로 한다. 구혜정 기자

한편, 대한항공 직원들은 회사와 집회에서마저 감시 당하고 있다며 분노를 토로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대한항공 현직 승무원은 미디어SR 취재진에 “사측 감시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며 “집회 중 한 사측 직원이 카메라를 든 사람에게 ‘이 XX 시위하는 것 같으니 따라가보라 한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오늘 집회에 노무관리팀과 운항관리팀 직원들이 사진 찍으러 온 것을 여러 번 봤다”며 “회사에 ‘엑스맨’이라는 내부 감시제도도 있는데 집회에 감시자가 안 오겠냐”고 얘기했다.

또 다른 대한항공 현직 조종사는 미디어SR에 “사내에서의 감시 또한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측이 노조 집행부를 진급시키는 구조”라며 “진급을 위해 노조 집행부를 노리는 사람이 많고,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는 구조여서 사내에서 변화가 일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일은 대한항공 직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날 박창진 사무장과 집회 참가자들은 “끝까지 지켜봐 주십시오,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집회를 마쳤다. 집회가 끝난 후에도 시민들은 용기를 낸 대한항공 직원들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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