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당시 민주항쟁에 참여한 넥타이부대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87, 97, 17
지난 주말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기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시골인데다 시험 칠 때 학교라서 58, 59년생 주축인 78년 졸업생들이지요. 졸업 후 처음 보는 동기생들까지 어울려 등산도 하고 트래킹, 운동도 하면서 정말 많이 낄낄거리고 사진도 찍고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일찍부터 사업에 나선 친구들 말고는 다니던 직장 은퇴하고 대부분들 제2인생을 시작합니다.

동기라 해도 잘사는 놈, 어려운 친구 다양했고 화제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 건강 얘기 당연하고 지난 온 세월, 남은 시간에 대한 걱정 역시 예상 가능한 화제였습니다. 사흘 밤낮을 의미보다는 재미를 찾자며 지낸 시간들이어서 객쩍은 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치여행이란 제 칼럼과 연관 지으려다 보니 87, 97, 2017이란 숫자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대학졸업,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생활 시작한 것이 대략 85년 전후. 직장 생활 막 적응하고 부서내 후배 서너명 들어와 지낼 때쯤 87년 6.10 민주항쟁의 넥타이부대였습니다. 직선제를 중심으로 사회전반적인 민주화를 시작한 87체제이니 돌아보면 우리 현대사의 큰 획이지요.

97년 외환위기가 몰고 온 변화는 87년과 비교되는 또 다른 의미입니다. 세계화란 이름으로 자본주의 논리가 몰아쳐 내로라하던 기업들 줄줄이 파산하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친구가 한둘 아니었습니다. 돌반지 팔던 기억 생생하고 얼마 안가 ‘부자 되세요’란 광고와 새해인사가 상징하듯 국가 전체적으로 돈벌이가 가장 큰 가치였습니다. 그렇게 20년을 살아온 것입니다.

#지난 20년
그동안 정치적으로는 진보 10년, 보수 10년의 세월이었습니다. 다양한 평가와 해석, 이견들이 없을 수 없으나 경제적 측면에서 하나 둘 정리하다 보면 공감대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경제는 많이 커졌습니다(국내총생산 524조원(1998년)--> 1730조원(2017년)). 대외적 위상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세계 10위 언저리 국가란 말이 이제 자연스럽고 세계 1등 상품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한꺼풀 들춘 속살입니다. 분명 다들 나아졌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남편 혼자 직장생활하면 전업주부인 아내와 아들 딸 웬만히 생활했으나, 지금은 맞벌이 아니면 살수 없으며 자식 둘셋은 아예 엄두도 못 냅니다. 일자리 잡지 못한 아들 딸을 보면 미안하기까지 합니다. 빛이 밝은 만큼 그늘이 짙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더 어렵게 된 사회는 세계 최저 출산율에 최고 자살률로 상징됩니다. 경제가 나아졌다고 하나 돈을 잘 번 소수의 얘기입니다. 돈을 가진 일부는 더 많이 벌고, 일을 많이 한 다수는 전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일을 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못하는 지경이니 그동안 이룬 경제발전은 돈 번 소수만의 발전이라는 말이 크게 틀렸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가진 층의 책임
쏠림현상은 비단 돈뿐 아닙니다. 명예든 권력이든 하나같이 맞물려 ‘그들만의 리그’가 돼 버렸습니다. 사회적 책임, 사회적 가치란 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지난 20년이 몰고 온 이같은 양극화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위 가진 사람이 소외된 계층에 대해 책임있게 나서지 않는 한 시장경제가 지탱할 수 없고 자본주의 자체가 위협받습니다.

이는 물론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주요국에서 사회 각 분야의 양극화와 자원배분의 불평등 구조는 더욱 고착화됐습니다. 평등대상을 놓고 기회와 결과로 갈라지듯, 불평등 구조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이념적으로 다를 수 있습니다. 얼굴이 다른 만큼 재능 등 타고난 능력의 차이에서 초래된 불가피한 결과라는 보수적 해석과 정치적 산물로 불합리한 체제가 몰고 왔다는 주장은 서로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등 구조에 대한 처방만큼은 이견의 폭이 크지 않다고 믿습니다. 더구나 지난 40여년 압축성장 과정에서 초래된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자는 우리의 경우 이념적 거리는 의미가 없습니다. 사회적 가치가 진보만의 전유물일 수 없고 보수라고 사회적 책임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돈보다는 사람이고, 개인보다는 커뮤니티를 우선해야 모두 사는 길이란 인식에서 하나입니다. 87체제가 민주체제의 제도화라면 촛불과 함께 잉태된 2017년은 ‘17체제’란 이름으로 사회가치에 대한 새로운 틀로의 출발이어야 합니다.

진보 보수가 지나치게 극단으로 달리고 있는 정치 현실에서 오히려 많은 국민들은 사회적 가치구현을 통한 경제적 접점을 기대합니다. 공공기관에 대한 사회가치 구현 주문은 이같은 사회적 기대를 반영합니다. 정부의 정책의지를 실현하는 작업이 불가피한 우선순위이겠으나 이 기회에 체계적이고도 실효성있는 사회가치 구현작업에 나서야 합니다. 전국적으로 갖춰진 조직의 힘이 전국민적인 기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돼서 공공기관이 국민들과 좀더 가까이 자리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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