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이 화두인 2018년입니다. 올해 들어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당 근무 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점점 더 많은 기업에서 '삶의 질 향상' 즉 워라밸에 대한 직원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돼버렸죠.

미디어SR이 많은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기업이 무엇보다 가장 귀 기울여 경청하고 섬세하게 신경써야 할 부분이 곧 조직 내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라는 부분입니다. 조직 내 직원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에 미디어SR은 우리 사회의 워라밸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뗀 사회 초년생들과 기성 세대들 간의 워라밸을 바라보는 인식 차이를 점검해보았고, 그 사이 낀 세대인 중간관리자급들의 워라밸에 대한 인식도 더듬어 보았습니다.

조직 내 워라밸 문화가 견고하게 자리잡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조직 속 현실적인 목소리들도 실었습니다.

또 북미 지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워라밸 문화에 대해서도 현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사회적 책임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전문 경제신문, 미디어SR은 조직 바깥 뿐 아니라 조직 내에서 지켜져야할 가치와 책임에 관해서 꾸준히 독자들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제공 : Nurse Gail

"워라밸? 일하다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한다."
"한 달에 4일 쉰다. 일요일만 쉬는데, 일요일도 못쉴 때가 허다하다."

현재 서울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권 모 씨(26)와 김진수 전국택시산업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내외운수 노조위원장은 `워라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난달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운송서비스업, 보건업 특례업종으로 지정돼,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특례업종 종사자들은 모두 장시간 근무에 시달린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에게 워라밸은 무엇일까?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한다는 권 간호사와 김 기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평소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가?

권 간호사: 보통 하루에 10시간 정도 일한다. 엄청 빨리 일이 끝나는 날은 8~9시간 정도. 원래 기본은 8시간인데, 앞뒤로 인수인계를 하다 보면 10시간이 된다. 병원 일이라는 게 연속적으로 해야 하다 보니, 기본 출근 시간보다 30분~1시간 일찍 와서 인수를 하고 퇴근 시간 이후에는 똑같이 인계작업을 해야 한다. 물론 따로 수당을 받지는 않는다. 

김 기사: 보통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 일한다. 왜 이렇게 길게 일하냐고?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 다른 기사들도 다 마찬가지다. 

Q. 가장 길게 일한 시간은 몇 시간인가?

권 간호사: 14시간까지 일해봤다. 갑자기 응급환자가 들어오거나 하는 등의 사건이 생기면 오버타임이 된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이것은 일로 쳐주지 않아 별도로 수당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김 기사: 14시간까지도 해봤다. 아유, 정말 힘들다. 

Q. 휴일은 제대로 주어지는가? 

권 간호사: 한 달에 보통 8일이 주어진다. 사람이 적은 병원에서는 5~6일만 주는 경우도 많다. 8일을 준다고 하더라도 8일 온전히 주어지는 게 아니다. 밤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는 나이트 근무를 하고 나서 받는 휴일은 휴일이라고 하기 어렵다. 퇴근하고 난 8시부터 휴일이니 24시간 휴식이 주어지는 게 아니고 16시간만이 휴식이기 때문이다. 오전 8시에 퇴근하고, 자고 일어나서 조금 있다 보면 다시 출근해야 한다. 그게 반복된다. 

김 기사: 법적으로 보장되는 휴일은 4일밖에 안 된다. 일요일만 쉬는데, 일요일도 못쉴 때가 허다하다. 빨간 날은 대기업이나 공무원 얘기지 택시기사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근로라고 할 수도 없고 노동이라고 할 수도 없고.

Q. 본인 삶에 워라밸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권 간호사: 글쎄. 그다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근무 시간이 줄어야 되지 않을까. 

김 기사: 일과 삶의 균형은 나쁘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도 120~130만 원보단 더 버는데.  

Q. 해당 직종이 워라밸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권 간호사: 결국에는 인력 충원이 답이다. 아니면 3교대를 개선하던가. 나이트만 전문으로 하는 간호사들이 있는데,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근무 시간이 일정해지니 비교적 워라밸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이트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의 워라밸은 좋지 않아 오랫동안 일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김 기사: 회사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기사가 회사에 내는 사납금을 줄여야 하는데, 이걸 줄이면 회사의 수지타산이 안 맞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부에서 손을 대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택시근로자는 방치되다시피 왔다. 아시안 게임 때 택시들 많이 내보내서 포화상태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렇게 된 것 아닌가. 누가 책임지는 사람이 있는가?

또, 근로기준법 근로시간 단축은 법 자체의 취지는 좋은데, 택시를 제외해놨으면 대책을 세워줘야 하는데 대책 없이 빼놔버리니 문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워라밸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권 간호사: 개인적으로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상근직이다. 남들 출근할 때 출근해서 남들 퇴근할 때 퇴근하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부럽다. 3교대를 하다 보면 라이프사이클이 무너져서 힘들다. 

김 기사: 일반 직장인처럼 40시간 일하고 주일마다 쉬면 얼마나 좋겠나. 근데 그렇게 일해야지 먹고 살 수 있다. 한 달 급여로 책정된 게 120~130만 원밖에 안 되는데. 거기서 보험료를 빼면 백만 원 밖에 안 된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 

Q. 본인 삶에 있어서 워라밸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권 간호사: 생존. 생존이라고 생각한다. 살려고 일하는데 일하다가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하다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한다. 퇴사하고 싶다. 

김 기사: 어불성설. 10년 이상 택시기사 한다고 부장이나 과장이 되는 것도 아니고, 월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삶이 어떠냐, 질이 어떠냐 이런 걸 따지기는 어불성설이다. 하루하루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삶이 윤택해져야 손님에게도 더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지 않겠나? 내가 먼저 먹고살아야 하는데. 

[2018 워라밸 현장점검①] 청년층과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워라밸, 어떻게 다를까?
[2018 워라밸 현장점검②] 중간 관리자, 워라밸을 바라보는 이중적 시선
[2018 워라밸 현장점검③]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하는데... 워라밸은 '남 얘기'인 특례업종 종사자
[2018 워라밸 현장점검④] 정부와 개인이 워라밸을 바라보는 간극
[2018 워라밸 현장점검⑤] 세계 속 워라밸 천국은 어딜까? 북미 vs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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