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곽도원(왼쪽)과 정봉주. 곽도원은 소속사를 통해 자신이 이윤택의 피해자들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정봉주는 28일 성추행 혐의로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일로 인해 미투 운동이 훼손되지 않기를 한 명의 여자로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바랄 뿐입니다."

"미투 운동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미투 운동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모든 종류의 성폭력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최선을 다해 이를 지원할 것입니다."

배우 곽도원의 소속사 대표 임사라 씨와 정봉주 전 민주통합당 의원이 한 말이다. 두 사람은 모두 지난 두 달간 한반도를 들끓게 만든, 이른바 미투(#Me Too) 운동과 관련된 인물들이다. 미투 운동은 '나도 당했다'라며 그동안 침묵해왔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 운동이다. 한국에서는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시작으로, 법조계, 의료계, 학계,문화계 등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그 가운데, 임사라는 최근 연극연출가 이윤택의 성폭력 혐의와 관련된 피해자들이 소속 배우 곽도원을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임 씨는 피해자들 중 일부가 곽도원을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이후 이윤택 고소인(피해자) 변호인단에 협박 당사자들의 명단과 녹취파일, 문자내역을 전달했다고 밝혔으며 미투 운동이 이를 통해 훼손되지 않기를 한 명의 여자로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나 문제가 된 사안은 곽도원이 이윤택의 피해자들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주장이 아니라, 임 씨가 이들을 '꽃뱀'으로 몰았다는 점에 있다.

변호사 출신의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그는 글 속에서 "그(변호사) 시절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든 건 업무량이 아닌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들이었다. 회의감이 들었다"라고 적어 이윤택 사건의 피해자들 역시도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들'로 읽힐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 어떤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오로지 변호사 시절 목소리와 말투만 들어도 꽃뱀 임을 알아 맞출 수 있게 된 '촉'이 또 왔다는 것이 그가 제시한 이유였다. 아직 조사 중인 이윤택 성폭력 사건을 두고 변호사 출신인 그가 나서 피해 당사자들을 꽃뱀 프레임 안으로 내몰았다.

정봉주의 경우는 미투 가해 당사자로 몰린 상황이다. 정 전 의원은 인터넷 언론사 프레시안을 통해 자신의 성희롱 의혹이 보도되자 이를 전면 부인하며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줄곧 피해자가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한 렉싱턴 호텔에 사건 당일 가지 않았고 따라서 성희롱도 없었다는 논리로 부인해오다가 28일 오전 SBS에서 보도한 렉싱턴 호텔 1층 카페에서의 카드 사용 내역이 밝혀진 이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내 불찰이라 생각한다"는 반쪽자리 해명을 내놓았다.

이처럼 미투 운동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피해자들을 꽃뱀으로 내몬 임사라 씨도, 미투 운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자신이 과거 저지른 성추행에 대해서는 기억을 할 수 없다는 정봉주 의원. 모두 미투 운동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는 당사자가 돼버렸다.

미투 운동은 성희롱 성폭력 사건을 떠나, 성적 착취가 권력자들의 소위 '갑질'의 형태로 만연해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다수의 성희롱 피해자들은 사회 전반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을 이번 기회를 통해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성범죄를 다루는 법 역시도 인식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기준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구권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모든 성적 행위는 강간이다'라는 정의와 달리, '사람을 폭행이나 협박 등으로 강제해 성관계를 함'으로 정의가 된 한국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은,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폭행이나 협박을 당했다는 것과 자신이 항거불능상태였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가해자의 가해 사실 역시 증명할 수 없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하는 구조다. 가해자에게 유리한 법의 테두리 탓에 피해자들은 증거가 없으면 피해 사실을 알려도 무고죄로 고소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법의 취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변호사가 '꽃뱀'을 말하는 것은 직업 윤리에도 어긋나 보인다. 이를 의식한 듯, 임사라 씨는 자신의 SNS에서 꽃뱀과 촉에 관련된 문구는 삭제한 상태다.

정봉주 사건의 피해자는 27일 기자회견에서 "고작 입술을 스친 것으로 정 전 의원의 인생을 망치려고 하냐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살인죄나 교통사고는 가해자 부주의를 말하는데 성범죄에서에서는 가해자의 나쁜 의도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가 과연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나를 불러냈는지에 대해 집중해달라. 결과적으로 그는 가벼운 성추행을 했다. 이에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28일 보도자료와 함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철회를 선언하며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내용을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가 줄곧 주장한 사과는 없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미디어SR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태도다. 또 정 전 의원 측은 피해자에 아직 따로 연락을 취해오지는 않았다. 우리 역시도 그의 SNS나 신문 기사를 통해 입장을 접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미투를 지지한다는 이들이 도리어 미투 운동의 본질을 적극 훼손하고 있는 모습. 그것 역시도 어쩌면, 가해자에 유리하게 짜여진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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