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피해자 과반이 경찰 신고 안 해...
WHO, 행동통제나 화가 나 문을 세게 닫는 것도 모두 폭력으로 정의
피해자 입장에서의 폭력 정의 필요

제공: 픽사베이

최근 서울 소재 모 여자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안전이별 했다’는 글이 빈번히 올라온다. 이들이 말하는 안전이별이란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 후 해코지당하지 않는 것이다. 해당 커뮤니티에는 ‘안전이별 하는 법’, ‘남친(남자 친구) 화 덜 나게 헤어지는 법’ 등 안전이별을 위한 비법도 공유되고 있었다. 여대생들이 ‘안전이별’ 걱정을 해야 했던 이유는 ‘데이트폭력’ 생각보다 빈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서울에서 1년 이상 거주한 여성(20~60세) 2000명을 대상으로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1770명(88.5%)이 ‘데이트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는 데이트폭력 피해 유형을 △신체적 폭력 △성적 폭력 △행동통제 △언어·정서·경제적 폭력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신체적 폭력은 '팔목이나 몸을 힘껏 움켜잡음'이 35%로 가장 많았고, '심하게 때리거나 목을 조름'이 14.3%, '상대의 폭행으로 인해 병원 진료'가 13.9%, '칼 등의 흉기로 상해'가 11.6% 등이었다.

성적 폭력은 '원하지 않았는데 몸을 만짐'이 44.2%, '나의 의사에 상관없이 가슴, 엉덩이 또는 성기를 만짐'이 41.2%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했다. '성관계를 하기 위해 완력이나 흉기를 사용함'(14.7%), '내가 원치 않는 성관계 동영상이나 나체사진을 찍음'(13.8%) 등도 있었다.

'행동통제 사례'로는 '누구와 있었는지 항상 확인했다'가 62.4%(중복응답)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옷차림 간섭 및 제한'이 56.8%였다.

언어·정서·경제적 폭력 중에서는 '화가 나서 발을 세게 구르거나 문을 세게 닫음'이 42.5%,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너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가 42.2%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한편, 폭력 피해를 당했음에도 과반 이상(69.5%)이 경찰에 신고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우가 가장 많았지만, 이 역시 9.1%밖에 안 됐다. 신고하지 않고 넘어간 이유에 관해서는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21.6%),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15.9%)라고 응답했다.

올바른 연애 방법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최 모 군(24)은 “팔목을 움켜잡거나 여자친구가 누구와 있었는지, 누구와 놀지 통제하는 것도 데이트폭력에 포함될 줄은 몰랐다”며 “누군가 알려줬더라면 저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강희영 연구위원은 “이번 조사의 일부 항목들이 ‘폭력은 아니지 않냐’는 항의 문의도 많이 받는다”면서 “해당 항목들은 모두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규정한 가족, 부부,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유형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어 “인권 감수성이나 폭력에 관한 감수성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위와 같은 폭력의 정의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가해자의 입장이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폭력을 정의하고, 행동 방식을 고찰해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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