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요즘 대규모 쇼핑센터는 규모가 아주 크다. 안에는 여러 개의 길이 있어 마치 시가지 내 상점가로와 비슷하고 중간에는 큰 광장도 있어 도시의 중심지를 거니는 것 같다. 건물 내는 여러 개 층을 터서 어느 층에 있어도 쉽게 다른 층이 보이고 연결되게 해 놓았다. 어떤 쇼핑센터는 중심부에 여러 층을 모두 비워 매우 높은 공간을 만들어 마치 큰 성당의 중앙 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곳에 뜬금없이 아주 높고 큰 도서관을 들여 많은 사람들의 놀라움과 신기함을 자아낸다. 방문객이 넘치기 일쑤이다. 최근에는 또 다른 곳에 그런 도서관이 개관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마 구경을 가면서도 도서관을 상행위의 무대로 사용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이런 격식 파괴가 사람들에게 도서관이라는 것이 어디 조용한 구석에 틀어박혀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생활 가까이 있을 필요도 있는 것임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 어쨌건 장마당 한가운데 중심 용도로 책과 도서관을 놓은 것은 기상천외하기도 하지만 도시인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스웨덴 스톡홀름시 공립도서관의 중앙 홀(1928 건립) . 원형의 높은 서가와 천창으로 유럽에서 근대 도서관 건축의 모델로 칭송받고 있다. 건축가; Gunnar Asplund(1885~1940), 사진: 김기호, 2008년
스웨덴 스톡홀름시 공립도서관의 중앙 홀(1928 건립) . 원형의 높은 서가와 천창으로 유럽에서 근대 도서관 건축의 모델로 칭송받고 있다. 건축가; Gunnar Asplund(1885~1940), 사진: 김기호, 2008년

요새 동네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도서관이 인기다. 대체로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주거지 가운데 위치하는 실속생활형이고 다른 하나는 근린공원에 연접해 자리하는 힐링여가형이다. 모두 주거지 생활권에서 슬세권(슬리퍼 신고 드나들 만한 근린권)에 위치함은 물론 이제 인기가 더 오르면 아마도 도세권(도서관 중심 생활권)을 형성할지도 모른다.

주민 누구에나 열려 있어 책을 안 보더라도 편한 의자에 앉아 졸거나 멍해도 좋으니 맘 편히 가서 시간 보내기에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도서관하면 느껴지던 딱딱함과 엄숙함이 거의 없어 마치 동네 가게 앞 평상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다만 다른 이용자를 배려해 그저 상식적인 예절만 지키면 된다. 어린이를 위한 코너도 제법 풍부하고 만화도 있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같이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같이 어린이집부터 계속 죽어라고 공부만 시켜대는 나라에서 동네 도서관이 인기 있다니 ‘아직도 공부에 안 질렸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한편 ‘자율적인 공부가 역시 힘이 세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서울 같은 경우 어디서나 걸어서 10분 이내에 생활밀착형 도서관을 건립한다니 기대가 크다(서울시 도서관 발전 종합계획 2012∼2030년).

서울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마을(도로 왼쪽 좌우 노란 건물 포함, 2015년 개관). 외관이 주변 다세대주택 건물과 비슷하여 온전히 동네 가로의 한 부분인 듯 친근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원래 있던 주택건물들을 포함하여 새로운 건축과 용도로 거듭난 도서관이다. 건축가; 최재원(플로건축사 사무소), 사진; 김기호, 2024년
서울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마을(도로 왼쪽 좌우 노란 건물 포함, 2015년 개관). 외관이 주변 다세대주택 건물과 비슷하여 온전히 동네 가로의 한 부분인 듯 친근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원래 있던 주택건물들을 포함하여 새로운 건축과 용도로 거듭난 도서관이다. 건축가; 최재원(플로건축사 사무소), 사진; 김기호, 2024년
구산동도서관마을 메인 홀. 원래 있던 주거의 발코니(정면 벽돌벽)가 그대로 도서관 내부의 벽과 창이 되는 등 디자인과 공간 이용이 매우 독특한 도서관이 되었다. 사진; 김기호, 2024년
구산동도서관마을 메인 홀. 원래 있던 주거의 발코니(정면 벽돌벽)가 그대로 도서관 내부의 벽과 창이 되는 등 디자인과 공간 이용이 매우 독특한 도서관이 되었다. 사진; 김기호, 2024년

대표적인 실속생활형 도서관은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의 염원과 열정으로 도서관 건설이 추진되었다. 그 후 구청과 함께 서울시 참여예산에 지원하여 지어진 도서관이다. 덕분에 주민들의 요구사항들이 잘 정리된 설계공모 지침서가 만들어졌고 건축가의 진지한 아이디어가 더해져 기존의 다세대 주택 5채를 통합하고 신축을 더하여 50여 개의 방이 있는 독특한 도서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주민들은 도서관에 대하여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로 마을의 커뮤니티 거점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서관 운영도 주민이 중심인 은평구도서관마을운영협동조합이 하고 있다. 주민이 주도하고 관청이 지원하며 전문가(건축가 등)가 진심을 다해 작업한 매우 훌륭한 사례다.

구산동도서관마을 독서실. 예전 주택의 방을 살려 구획된 공간이다. 큰 도서관의 개인 열람 학습공간(carrel) 같은 역할도 가능할 것이다. 사진; 김기호, 2024년
구산동도서관마을 독서실. 예전 주택의 방을 살려 구획된 공간이다. 큰 도서관의 개인 열람 학습공간(carrel) 같은 역할도 가능할 것이다. 사진; 김기호, 2024년

힐링여가형은 토지비용 부담을 줄이려 근린공원과 주변에 건설되는 경우가 많다. 대체적으로 주변 공원과 하나가 되는 개념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서관에서 외부로의 조망 등 내외관계와 외부에 독서나 휴게 공간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계획되었다. 동네에 가까이 있기에 꼭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산책길의 쉼터로도 큰 사랑을 받게 된다.

어느 도서관은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지역커뮤니티의 중심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동네 공공도서관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방문자들을 위한 독서 관련 강연이나

구립양재도서관(2019년 개관). 외부로 돌출한 부분들처럼 내부에도 다양한 형태의 독서와 공부를 위한 방들이 외부를 향하게 구획되어 자유로운 독서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건축가; 김용미(금성건축), 사진; 김기호, 2024년.
구립양재도서관(2019년 개관). 외부로 돌출한 부분들처럼 내부에도 다양한 형태의 독서와 공부를 위한 방들이 외부를 향하게 구획되어 자유로운 독서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건축가; 김용미(금성건축), 사진; 김기호, 2024년.

동아리 등이 있고 나아가 작은 전시나 공연 등 문화행사도 펼쳐진다. 특히나 공원 주변 도서관에서는 야외 행사나 카페 등도 연계해 제공되어서 도서관이 책을 친구 삼아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제 동네 도서관이 마을의 중심이 되어 바쁘고 정신없는 생활 속에 길 잃지 않고 중심을 잘 잡게 해주는 공간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매일 등산 가서 육체 근력 키워봐야 치매 한방이면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현실을 보니 정신 근력을 단련하는 도서관 이용이 ‘고령화사회를 두렵지 않게 하는 보루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구립양재도서관. 창쪽의 경관을 즐기며 책을 읽거나 내부 쪽으로는 계단에 자유롭게 앉아 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사진; 김기호, 2024년
구립양재도서관. 창쪽의 경관을 즐기며 책을 읽거나 내부 쪽으로는 계단에 자유롭게 앉아 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사진; 김기호, 2024년
구립양재도서관 야외 독서마당. 도서관 앞쪽 양재천변 산책로 숲에 자리 잡은 독서와 힐링의 공간. 사진; 김기호, 2024년
구립양재도서관 야외 독서마당. 도서관 앞쪽 양재천변 산책로 숲에 자리 잡은 독서와 힐링의 공간. 사진; 김기호,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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