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논설위원, 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논설위원
허찬국 논설위원

총선을 코앞에 두고 사과값이 비싸다고 온 나라가 난리다. 소비자(유권자)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직결된 문제라 과일과 채소류 가격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뜨거운 것인데 조만간 해결책이 나올 분위기이다.

하지만 왠지 믿음이 안 가는 것은 필자만이 아니리라. 특히 이번 겨울 감귤과 채소류 수확이 한창인 제주에서 보고 들은 것을 감안하면 여건이 녹록지 않다. 장비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재배 과정과 달리 수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농산물 가격에 노무비 상승의 영향이 크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과 같은 일견 농산품 가격과 관련이 적어 보이는 변수들이 장바구니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과일·채소는 공산품과 달리 수확기(생산 시점)를 조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짧은 수확기가 도래하면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이번 겨울 제주도에서 여러 날 있으며 감귤 수확을 위해 사람을 쓰는 이, 또 일을 나가는 이 등 지인을 통해 관련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수확이 한창인 감귤, 밭작물 수확 현장에서는 일손이 달려 중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큰일 난다고 이구동성이다. 일하는 내국인은 거의 60, 70대 여자들이고 젊은 사람은 성별 불문 중국인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여자는 일당이 10만 원 수준이고 남자는 15만 원 정도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등 남자 일꾼의 노동 강도가 높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경우 일당 중 약 10%는 소개인 수수료라고 했다.

대파 가격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되던 때쯤 대파 수확 일을 가던 친지의 작업 경험이 흥미로웠다. 먼저 올 2월 이후 대파 가격을 보자. (그림)의 세로 축은 한국농수산식품공사(www.kamis.or.kr)가 제공하는 상품(上品) 대파 1kg의 일별(日別) 가격을 보여준다. 가로축은 날짜이다. 까만색 ‘2024년’ 선은 올해, 주황색 선 ‘평년’은 지난 5년 당일의 평균값을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올해 대파가 과거에 같은 기간에 비해 상당히 비싼 점이다(약 2000원 정도). 두 번째, 가격의 변동 폭이 상당히 크다. 올 2월 초 kg당 가격이 5000원에 육박한 후 최근에는 3000원 아래로 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고, 지난 몇 년간에 비해서도 변동 폭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전국 평균 대파 1kg 가격(2월 1일~3월 20일 중도매가격, 등급:상품, 단위 원)

2023년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의 평균 값. 중도매가격은 중도매인 상회에서 소상인 및 실수요자에게 판매하는 가격. 평년은 5년간(금년 제외) 해당일 최고값과 최소값을 제외한 3년 평균값.
2023년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의 평균 값. 중도매가격은 중도매인 상회에서 소상인 및 실수요자에게 판매하는 가격. 평년은 5년간(금년 제외) 해당일 최고값과 최소값을 제외한 3년 평균값.

그림의 가격 추이와 대파 일을 했던 지인의 경험을 결부시켜 보면 가격 추세에 재배농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내국인 작업반과 중국인 일꾼들을 고용해 수확과 포장을 시작한 지 며칠 만에, 주인이 시세가 맞지 않다고 작업을 중단하더라는 것이다. 이때가 3월 9일쯤인데 그림에서 보듯이 3월 들어 가격이 하락했다. 이후에 주인은 지인이 속한 내국인 작업반은 부르지 않고 중국인 일꾼들만 써서 수확을 마무리했다 한다.

품삯 지급 방식의 차이로 인해 중국인 일꾼들이 더 생산적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나이 많은 내국인 작업반은 사전 합의된 정액 일당을 받은 것에 비해 중국인 일꾼들은 작업량에 따라 품삯을 받았다. 지인은 젊은 중국 일꾼들이 점심시간도 거르며 작업을 하더라고 혀를 찼다. 그러니 같은 시간에 내국인 일꾼들보다 더 많은 양의 대파를 처리했을 것이다. 즉, 생산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대파 가격이 떨어지자 대파 작업장 주인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처리량 대비 임금이 싼 중국인 노동자만 사용한 것이다. 거두절미하면 수익을 내기 위해선 싼 외국인 인력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1월의 제주발전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도내 농업 고용 노동자 26.4만 명 가운데 28%가량(7.3만 명)이 외국인이다. 이 중 1개월 미만 체류자가 많은데, 비자가 없어도 30일간 체류가 가능한 제주도의 무사증 입국제도가 이런 추세를 설명한다. 관광이 아니라 일할 목적으로 들어오는 중국인 등 외국인이 많다는 말이다. 앞서 본 대파 작업 일꾼들도 중국의 건설업 부진으로 일자리 사정이 나빠지자 돈을 벌기 위해 제주도로 와 일하는 사람들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인력 수요가 꾸준한 것을 감안하면 중간에서 일꾼들을 체계적으로 건사하는 브로커들도 있을 것이다.

외국인 노동을 양성화하기 위해 작년 말부터 5개월 동안 지역에 체류하며 일할 수 있는 외국인 공공형 계절근로자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지자체와 지역 농협이 베트남에서 선발해온 수백 명의 인력을 농가에 공급하는 제도다. 이들은 최저임금(시간당 9520원)을 받는데, 그중 20%는 숙식비로 공제된다. 농가의 긍정적 반응에 제주도가 베트남 계절근로자들이 귀국할 때 40만 원씩 항공료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앞으로 이 제도가 확대되며 허가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크게 늘면 현재의 농촌 중국인 단기 노동자들을 일정 부분 대체할지 모른다. 하지만 농업분야의 인력 수요, 특히 수확 철에 급증하는 수요에 모자랄 것 같다.

한국은행의 정책금리뿐만 아니라 통화정책과는 거리가 먼 외국인 노동자 수급, 최저임금 등과 같은 요인도 장바구니 물가를 포함한 소비자물가 증가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론적으로 경제적 현상이 복잡한 톱니바퀴가 작동해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현실이 복잡함을 새삼 느낀다. 그러니 한 줄짜리 답을 약속하는 정치인들에게서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여야가 비슷할 것이나, 지난 정부 때 집값 잡기와 불평등 해소의 정책 수단의 일환으로 통계를 조작했다고 의심받는 야당도 정치권 ‘민생 챙기기’의 신뢰가 낮은 것에 책임이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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