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신구대 식물원 원장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식물원을 걷다가 어느새 불쑥 자라난 튤립의 새싹을 만나고서는 봄이 완전히 옆에 와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아침저녁으로는 여전히 쌀쌀함이 느껴지지만, 튤립이 봄이 왔음을 느끼고 새싹을 냈듯이 내 몸도 어느새 좀 더 편안하고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1년 내내 거의 매일 잠깐씩이라도 식물원을 걷다 보니 어쩌면 계절의 변화를 식물과 똑같은 입장으로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튤립 외에도 많은 식물이 새싹을 내밀었다. 일부 식물은 벌써 꽃을 피웠을 뿐만 아니라 꽃이 이미 다 져버린 식물들도 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봄을 느낄 수 있는 절기는 바로 춘분(春分, 올해는 3월 20일)이다. 춘분날부터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날은 태양이 적도 바로 위를 비추기 때문에, 음(陰)과 양(陽)이 반반이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을 뿐만 아니라 추위와 더위도 같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중간인 춘분에는 태양도 1년 중 가장 높이 뜨는 날과 가장 낮게 뜨는 날의 정확히 중간 높이로 뜬다. 태양과 지평선 사이의 각도를 ‘태양고도’라고 하며 하루 중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의 태양고도를 ‘남중고도(南中高度)’라고 하는데, 연중 남중고도는 하지(夏至) 때 가장 높은 76도, 동지(冬至) 때 가장 낮은 29도가 된다. 춘분 때는 이 둘의 정확히 중간인 52.5도가 된다. 그러니, 춘분은 중도(中道)를 지키는 날이기도 하겠다.

춘분날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고 밤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니 실질적으로 겨울과 봄의 경계가 되기도 한다. 입춘(立春)이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봄의 시작은 춘분부터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비로소 자연이 활기를 되찾고 새로운 생명이 움트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즈음의 봄볕은 생명을 되살리는 기적을 보여준다. 땅속 깊숙이 잠들어 있던 생명의 씨앗들을 깨우고, 싹을 틔우며 대지의 색을 바꾸어 자연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식물만 그럴까. 사람에게도 봄볕은 생명력을 되찾아주는 아주 고마운 존재이다. 봄볕은 사람들 몸에 활력을 주어 마음에도 새로운 희망을 심어준다. 식물이 생명력을 되찾고 자연이 새로운 생명을 품기 시작하는 춘분의 순간은 우리에게도 무한한 기회와 가능성을 약속하는 것 같다.

춘분(春分)날 식물원에서 힘차게 새싹을 내민 튤립. 태양을 경배하며 자라나 곧, 식물원의 정원을 화려한 꽃으로 장식해줄 것이다.
춘분(春分)날 식물원에서 힘차게 새싹을 내민 튤립. 태양을 경배하며 자라나 곧, 식물원의 정원을 화려한 꽃으로 장식해줄 것이다.

춘분에 봄볕이 사람의 생명도 되살린다는 직접적 증거로 비타민 D의 합성을 제시할 수 있겠다. 사람의 피부가 햇볕에 노출되면 피부는 자연스럽게 비타민 D를 합성하는데, 이 비타민 D는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여러 생리작용을 조절하며 뼈를 구성하는 중요한 성분이기도 한 칼슘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비타민 D는 필수적이며, 면역 기능 등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 구루병, 골연화증, 골다공증 등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에는 추위로 야외활동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낮도 짧고 태양고도도 낮아 일조량이 적어 몸에서 비타민 D의 합성이 부족한 반면, 따뜻한 봄이 되어 야외활동 시간이 길어지고 일조량이 늘어남에 따라 비타민 D를 충분히 합성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면역체계가 강화되고 뼈와 근육의 건강도 강화되어 강인한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수많은 생명을 되살리는 봄볕이 강해지는 춘분을 기념하는 전통이 세계적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문화를 이루고 있다. 춘분과 관련한 전 세계의 문화를 살펴보면, 먼저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풍습 중 하나로 봄 들나물을 캐 먹는 것이 있다. 춘분에는 아직 아주 많은 식물이 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쑥, 냉이, 달래 등 일찍 새싹을 내는 식물들은 겨우내 부족했던 비타민과 각종 미네랄을 보충해주는 중요한 식재료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일부 지방에서는 춘분이 되면 사람들은 봄나물을 따서 생선과 함께 끓이는 ‘봄탕’을 먹는다고 한다. 이 봄탕은 간과 장에 쌓인 노폐물을 씻어내는 효과가 있으며, 봄탕을 먹음으로써 온 가족이 안전하고 건강하길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도 한다. 또, 지방에 따라서는 연날리기를 하기도 하는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참여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춘분을 공휴일로 지정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날 일본인들은 꽃놀이(오하나미·お花見)를 가거나 성묘를 하는 풍습이 있다. 특히 이 시기에 일본 각처에서는 벚꽃축제가 열려 사람들은 벚꽃이 만발하는 곳으로 나들이를 떠나서 친구나 가족과 함께 꽃놀이를 즐긴다.

이란을 비롯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은 춘분을 새해의 시작으로 여길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란, 튀르키예 등 페르시아 영향권에 있는 국가에서는 ‘새롭다’는 뜻의 ‘노’와 ‘날’이라는 뜻의 ‘루즈’를 합쳐 설날을 ‘노루즈(nouruz)’라고 하는데, 설날이자 춘분을 의미하는 이날을 기념하여 이들 국가에서는 특별한 축제를 연다고 한다. 그 밖에도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 춘분을 기념하는 문화가 있다.

이처럼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춘분을 맞아 다양한 전통과 의식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기원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문화가 있다. 이는 모두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됨과 봄날의 햇볕을 감사하게 여기는 일일 것이다. 춘분이 지나는 지금 새봄의 햇볕을 감사한 마음으로 되도록 많이 쬐자. 식물원도 가보자. 우울증도 사라지고 체력도 좋아질 것이다. 그것이 정원치유이자 자연치유다. 태양을 경배하는 식물들처럼 이 봄날 우리도 태양을 경배해보자.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줄 것이다. <다음 글은 4월 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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