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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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세상 어느 NGO가 활동내역을 낱낱이 공개하느냐.” 거기다 한술 더 떴다. “기업들에게는 왜 (회계 투명성을) 요구하지 않는 건지 너무 가혹하다.” 시민단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가 기부금 사용내역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얘기였다.

당시 관련 법령에 따르면 자산 100억 원 이상 공익법인은 회계 내역에 대해 외부감사를 받게 되어 있었다. 정의연은 자산이 법 기준에 미치지 않아 외부감사 대상에서 벗어났을 뿐이지 “어떤 단체도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라고 해서는 안 됐다. 그때도 앞서가는 시민단체들은 법령과 상관없이 모은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상세하고 성실하게 공개해왔다. 굿네이버스, 어린이재단 등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대형단체로 커 왔다. 기업을 걸고 넘어간 것도 무리였다. 기업의 투명성을 옥죄는 관계 법령이 어디 하나둘뿐인가?

정의연의 항변대로 ‘세상’으로 범위를 넓혀보자. 미국 국세청(IRS)은 기부금 액수, 지출내역, 대표이사 보수 등을 낱낱이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을 받든 개인 기부금을 받든 투명한 회계는 면세 혜택을 받는 모든 공익법인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여기에 채리티내비게이터, 가이드스타 같은 시민단체 평가기관도 많다. 이들은 시민단체의 건전성, 책무성을 평가해 기부자들에게 끊임없이 투명성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2023년도 공익법인 평가결과를 보면 우리 시민사회가 그렇게 시끄러웠던 정의연의 충격을 발전적이고 전향적으로 수용해 왔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전체 1만1521개의 공익법인 중 외부회계감사를 받은 법인은 3976개로 34.5%에 불과하다. 셋 중 둘은 외부감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태가 불거질 당시 정의연은 20억 원에 달하는 토지건물에 금융자산 20억 원, 매년 기부금 20억 원, 정부 보조금도 매년 5억 원씩 받고 있었다. 웬만한 시민단체는 엄두도 못 낼 규모였다. 이런 단체가 영세하기 때문에 공시 누락 등 회계를 투명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 법인이 아닌 개인 계좌로 후원금을 받은 것은 영세해서가 아니라 영악해서였다고 본다.

정의연 사태는 기업 기부금으로도 불똥이 튀었다. 현대중공업은 2012년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자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10억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마포에 쉼터를 건립하겠다는 정의연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정의연은 이 돈으로 시세보다 3배 높게 마포가 아닌 경기도 안성에 건물을 매입했다. 사전에 승인을 받았다지만 안성 쉼터는 공동모금회의 사업평가 결과로는 가장 낮은 F등급을 받았다. 시설 활용도가 떨어지고 서류와 영수증이 미비됐다는 이유였다. 공동모금회는 이에 따라 2년간 지정 기부를 받지 못하도록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의연의 감독기관인 외교부나 기재부는 정의연을 지정기부금 단체로 재지정했다. 모금회의 F평가가 외교부나 기재부에 통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의연은 그 후로도 버젓이 기부금을 모으고 세금을 감면받고 위안부 할머니들도 모르는 곳에 돈을 써 왔다.

개인기부자들은 본성적으로 따뜻한 반면 치밀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법인기부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모금단체의 투명성을 따져야 한다. 기부금 지출의 기준을 세우고 이사회의 통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

차제에 공익법인의 투명성 리포트를 제도화할 것을 제안한다. 기업의 신용평가보고서와 같이 외부감사의 이행, 사업비용의 구조, 사회적 가치의 창출 등을 점검해 보조금과 기부금의 산정, 지출에 필수적 사항으로 삽입되도록 하자. 이것이 문화로 정착된다면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도 업그레이드될 것이고 공익법인의 순기능도 최대한 발현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타락한 정의연을 보고 시민단체가 돈과 요직의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많은 시민단체 출신들이 여야를 기웃거리다 공천을 받았다. 정의연에 정부 예산이 19억 원이나 흘러간 것을 보고 쓰임새를 알 수 있게 공시양식을 고치자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개정안은 잠을 자고 있다. 의도했든 안 했든 우리 사회는 정의연의 부활을 방조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의연의 윤미향 이사장(2018~2020)은 “수많은 할머니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국회에 간다”라고 했다. 그녀가 꾼 꿈은 국민들에게는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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