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신구대 식물원 원장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대학 캠퍼스는 북적이는 학생들로 활기를 띠고 있다. 새싹이 나오고 꽃이 피는 것으로도 새봄을 느끼지만, 대학에 몸담고 있다 보니 학생들이 캠퍼스를 누비는 모습에서 더 기쁘게 봄을 느끼곤 한다. 아직 한낮에도 때때로 쌀쌀함이 느껴지는 날씨임에도 학생들 덕분에 몸이 따뜻해진다.

학생들이 마음에 봄을 가져다주는 것은, 비로소 존재 이유를 다시 발견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방학 동안에도 연구와 다른 일들로 무척 바쁘다는 것으로 존재 이유를 확인하기도 하지만, 학생들과 수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존재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방학 동안에는 계절적 특성 때문에 몸과 마음이 더 무거워졌던 탓에 새봄에 학생들과 다시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무척이나 설레고 힘이 나게 한다.

학생들은 마음에 봄을 가져다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기도 한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학생 수 감소에 따라 대학이 겪고 있는 학생 모집의 어려움에 대해 뉴스에서 자주 소개하고 있다. 이미 서울과 수도권의 여러 대학에서도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는 소식이다. 정원을 채웠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의대, 치대, 약대로 대표되는 보건 계열 학과와 아주 유명한 대학의 학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학 전공에서 겪는 어려움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교수가 어쩔 수 없이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받는다.

이렇게 구성원이 상처받는 것이 대학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분야별로 순환하듯이 수많은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구조와 인구구조 변화 등 다양한 이유로 사회 전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상처가 너무 치명적이어서 세상을 등지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곤 한다.

가지를 잘라 나무 모양을 정리하고 새 가지가 나게 해 가로수가 제한된 공간에서도 잘 자라게 하는 전정 작업. 사진 전정일.
가지를 잘라 나무 모양을 정리하고 새 가지가 나게 해 가로수가 제한된 공간에서도 잘 자라게 하는 전정 작업. 사진 전정일.

식물들도 살아가는 과정에서 아주 흔하게 상처를 입는다. 사람들에게서처럼 그 상처가 아주 치명적인 경우도 많다. 도시에 사는 나무들, 그중에서도 가로수로 심긴 나무들은 더 자주 그리고 더 심하게 상처를 받곤 한다. 아마도 요즘 거리를 지나면서 가로수의 가지를 자르느라 차로 하나를 막고서 대대적인 작업을 벌이는 것을 본 적이 있으리라. 그렇게 많은 가지를 잘라냈음에도 가로수는 곧 새싹이 자라고 새 가지가 나오고 상처가 아물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중요한 봄 준비 중 하나가 이처럼 나무를 전정(剪定)하는 일이다. 집 안에서 키우는 나무도 모양을 다듬기 위해서 전정을 한다. 이때 잘라낸 가지들이 아까워서 꺾꽂이 방법으로 새 식물을 만들곤 한다.

고무나무 가지를 잘라 깨끗한 물에 넣어두자 2주 만에 잘린 면에서 뿌리가 만들어져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고무나무 가지를 잘라 깨끗한 물에 넣어두자 2주 만에 잘린 면에서 뿌리가 만들어져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올해는 고무나무의 가지가 한쪽으로만 삐죽하게 자라는 모습이 보기에 나빠, 그 가지를 잘라내고 깨끗한 물에 꽂아두었다. 2,3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면서 2주 정도가 지나니 가지의 잘린 면에서 예쁘게 뿌리가 돋아났다. 원래 나무의 잘린 부분 가까이에서도 새싹이 여러 개 자라나기 시작해서 곧 좀 더 풍성한 가지로 자라날 것이다. 잘라낸 가지와 잘린 가지 모두에 더욱 왕성하게 새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나무는 이렇게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음에도 생명이 멈추지 않고 더욱 왕성하게 새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바로 상처 치유 능력과 상처를 보호하는 과정에 있다. 먼저, 나뭇가지의 잘린 면에는 부름켜라는 부위가 있다. 이 부분은 평소 나무에 붙어 있을 때는 가지의 부피 생장, 즉 가지가 두껍게 자라게 하는 역할을 한다. 가지가 잘리면 바로 이 부름켜가 자라서 상처를 봉합할 뿐만 아니라 뿌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치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 삶을 개척하는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비밀이 아주 중요하다. 잘린 가지나 상처가 봉합되거나 잘라낸 가지의 상처에서 새 뿌리가 나올 때까지 상처가 오염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잘린 가지의 단면에 보호제를 발라준다든가 잘라낸 가지를 깨끗한 물에 담그고 2,3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는 등 최소한의 보호 과정이 있어야만 나뭇가지는 썩어 죽지 않고 새 삶을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 사람 사회도 이렇게 해야만 한다.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이라는 상처를 주고받아야만 한다면, 남겨진 사람들과 떠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최소한의 치유와 보호 과정이 있어야만 한다.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치유를, 떠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치유와 새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상처를 잘 치유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더 나아가, 상처를 잘 치유하면 오히려 새로운 삶을 더 잘 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각자가 자신을 스스로 잘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회가 함께 상처를 보호하고 치유해나갈 때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글은 3월 2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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