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대한극장과 한국의 집, 남산골 한옥마을이 있는 서울 중구 필동은 많은 분들이 동네 이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남산에서 경복궁 쪽으로 볼 때 그 왼편에 있는 동네가 주자동이었음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다. 주자동(鑄字洞)이라는 이름은 이름 그대로 예전 조선 시대에 이곳에 주자소(鑄字所)라는 관아가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주자소는 조선 시대에 활자를 만들던 관아였는데, 1403년(태종 3) 왕명에 의하여 주자소를 설치하고 승정원(承政院)에 소속시켰다가 1405년(태종 5)에 이곳 주자동에 주자소가 설치되었고, 그 뒤 역대 왕들에 의해 자리가 옮겨졌다가 정조 때 다시 설치되어 1796년(정조 20)에 구리로 큰 활자 19만 자와 작은 활자 14만 자를 만들어 서적을 인쇄하고 보급했다. 주자동 서쪽편은 책을 만들고 관리하는 교서관(校書館)이 있던 교서관동이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도성도(都城圖)에 당시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필동과 주자동, 교서관동이 있는 남산자락 북편의 동네는 글을 쓰는 사람들, 활자를 만들고 그것을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우리나라 인쇄문화, 전적(典籍)문화의 요람이었던 셈이다.

서울도성도. 서울대 규장각 소장
서울도성도. 서울대 규장각 소장

이 일대는 조선 시대에는 서울을 구획한 36방(坊) 가운데 훈도방(薰陶坊)에 속했었다. 훈도(薰陶)라는 말은 덕으로 사람을 교화한다는 뜻이니 개국 초기에 덕으로 백성이 교화되기를 바란 데서 방 이름이 유래하였다. 1621년(광해군 13)에 이 동네에 살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권희(權憘, 1547∼1624)가 영의정 박승종(朴承宗, 1562~1623)에게 ‘비록 서울의 외지고 작은 마을이지만 효자·충신·열부·명현이 연이어 배출된 유래 깊은 곳임을 후손에게 전해줄 것’을 건의하여 동의를 얻은 후《훈도방주자동지(薰陶坊鑄字洞志)》를 만들었다.

여기에 따르면 이 동네에는 기묘·을사사화 때 충절이 높았던 인물들이 많았고, 효자 5명, 절부(節婦) 3명이 살았음을 소개하고 있는데 특별히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조석문(曺錫文), 세조 때 좌의정을 지낸 권람(權擥), 중종 때의 명신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퇴계 이황의 형인 온계(溫溪) 이해(李瀣), 문성공 안유(安裕)의 6대손인 안종약(安從約), 안호(安瑚),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李山海), 영의정으로 추서된 권협(權浹) 등이 모두 이 일대에 살았음을 전해주고 있다. 남산골에서 을지로로 이어지는 동네는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역사일 뿐 아니라 많은 명현 효자들이 덕을 세운 동네였음을 이로써 알 수 있다.

​지금도 충무로와 을지로 일대엔 영세 인쇄업체 5000여 곳이 밀집돼 있다. 조선조 초기로부터 600여 년의 역사가 담긴 동네이다. 이 을지로 인쇄거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인쇄인들이 지난달에 궐기대회를 하고 중구청 앞에서부터 충무로를 거쳐 서울시청 앞으로 1시간가량 행진했다. 서울시는 ‘서울 녹지생태 도심 재창조’를 하기 위해 인쇄거리를 품고 있는 세운지구를 초고층 주거·업무 시설, 문화시설·공원 등으로 재개발을 추진 중인데 인쇄인들은 이 사업으로 영세인쇄업이 다 문을 닫아야 할 운명이라며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에 인쇄거리 보전 방안을 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월 21일 중구청 일대에서 열린 인쇄인 궐기대회. 사진 제공 서울시인쇄협동조합.
2월 21일 중구청 일대에서 열린 인쇄인 궐기대회. 사진 제공 서울시인쇄협동조합.

서울시와 중구청이 추진하는 세운지구 재정비촉진계획안에 따르면 인쇄소가 밀집된 서울 ‘을지로 인쇄골목’ 일대, 즉 중구 충무로 3·4·5가와 을지로 3·4가, 오장동 일대를 ‘중구 인쇄 특정개발진흥지구’로 만드는 계획을 2017년에 공표하고 흩어져 있던 인쇄소들이 새 건물에 입주해 협업을 할 수 있는 공동공간인 '인쇄스마트앵커'를 건립함으로써, 공동구매·공동 수주·협업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나아가 공동작업에 대한 지원까지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두 달 전에 새로운 정비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스마트 앵커시설에 대한 계획을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당초에는 현 중구청사 부지에 연면적 약 8만㎡, 지하 6층~지상 29층 규모로 서울메이커스파크(SMP)를 세워 거기를 도심산업 지원·육성 및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앵커시설로 사용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조정된 계획에서 인쇄업체를 위한 지식산업센터 건립이 빠졌고, 여기에 세우는 신규 공공임대시설도 인쇄인들의 수요(800호 이상)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220여 호에 불과해 이대로라면 인쇄 관련 업체들이 한곳에 있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이정하 씨가 그린 인쇄거리.
 (사)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이정하 씨가 그린 인쇄거리.

서울의 종묘 앞에서부터 남북으로 내려와 남산자락까지 이어지는 세운상가 일대는 서울 개발 초기에 만들어진 후 40년이 경과하면서 건물이 낙후되고 집들이 밀집해 소방도로도 없는 등 정비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또 인쇄거리라고는 하지만 이 일대가 한옥 등 관광의 대상이 될 만한 건물들이 아니라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낮은 건물들이어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새롭게 현대식으로 단장하자는 것은 이해가 된다.

다만 인쇄업은 의류봉제나 주얼리, 수제화 등 도시제조업과 마찬가지로 공정별 전문화 및 상호 협력, 집중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쇄업계는 세운지구에 공원과 녹지를 조성하면서 신성상가와 진양상가 지하 2, 3층을 인쇄단지로 개발해 소상공인의 안정적인 사업장으로 인쇄업체에 공공임대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인데 핵심적인 시설들이 부족하거나 빠졌다는 것이다.

서울 중구 인쇄특정개발진흥지구. 자료 제공 서울시인쇄협동조합
서울 중구 인쇄특정개발진흥지구. 자료 제공 서울시인쇄협동조합

급속히 현대화하는 도시생태계에서 기존 산업이나 흔적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모든 도시들의 공통 고민이 아닐 수 없지만 우리 서울은 왜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지식 혹은 정보가 모여지고 유통되는 시설들이 다 없어져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과 아쉬움이 다시 생긴다. 고서점이나 골동가게만 해도 그렇다. 중국 베이징에는 류리창(琉璃廠)이 있고 일본 도쿄에는 간다(神田)가 있다. 서울에서는 종로 일대의 피맛골이 사라졌고 청계천 일대의 옛 책방들이 밀려나 흩어졌다. 인사동 일대의 전통거리도 어느 틈에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고 있고 경복궁 서쪽의 서촌 일대도 새로운 건물들로 인해 기존 역사가 다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도시 재개발이라는 것이 항상 시간과 돈의 문제가 개입하게 되어 있어 우리들의 기대대로 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왜 우리만 그런 흔적들이 사라져야 하는가 하는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모든 재개발은 추진하는 주체의 의식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과거를 살려 미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례를 외국에서 많이 보게 된다. 인쇄계도 서적출판을 통한 정보유통이 급격히 온라인유통으로 바뀌면서 생태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인쇄산업은 ‘기획디자인-프리프레스-인쇄-후가공’ 등 공정별로 분업화된 사업장들이 근거리에서 협업해야 하는데 지금 계획대로라면 인쇄거리가 없어지고 단지가 나뉘어 사실상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을지로를 자주 이용하는 디자이너들은 인쇄산업이 망하면 디자이너도 같이 망한다며 인쇄산업이 활발한 을지로를 보존하려 하지 않고 무리하게 재개발을 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을지로 인쇄골목. 사진 이동식
을지로 인쇄골목. 사진 이동식

서울의 인쇄인들은 인쇄문화산업 최대 집적지인 중구의 5000여 인쇄업체와 문화산업이 협업하는 충무로 일대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 서울메이커스파크(SMP)는 반드시 건립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낙후된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업체들이 이 일대를 떠나지 않고 모여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서울의 600년 된 인쇄출판문화의 유산과 흔적을 지켜주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인쇄인들만의 바람이 아니다. 이 공간이 없어지면 이 동네에 살며 덕을 세운 선인들의 역사도 사라질 것이다. 종로통 피맛골의 사례에서 보듯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어 전통적인 거리가 없어지고 난 뒤에는 아쉬워해야 소용이 없다. 인쇄거리를 어떻게든 살리고 남기자고 하는 것은 남산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보며 역사문화도시 서울을 꿈꾸는, 그 속에서 역사와 문화의 공기를 마시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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