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 논설위원, (주)터치포굿 대표

박미현 논설위원
박미현 논설위원

환경교육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드라마가 KBS ‘프로듀사’다. 극중 슈퍼스타인 신디(아이유)가 개인 사정으로 피디 집에 신세를 지면서 분리배출을 맡아서 하게 되는 장면이다. 직접 쓰레기통을 열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깍쟁이 같은 이미지이지만 지적하려고 다가온 부녀회장이 감탄할 정도로 완벽한 규칙 숙지는 물론 미리 분리, 세척, 구멍 뚫기까지 해온 모습이었다.

부녀회장이 퀴즈처럼 쏘아내는 헷갈리는 품목에 대한 문답도 척척이어서 공익광고처럼 보이는 장면이 완성되었다. 지나치게 공익적이어서 어색한 면이 있었지만 극중 주인공이 배려 없고, 남의 의견은 무시하는 싸가지없는 캐릭터인 것과 달리, 내면은 바르고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준 명장면이다. 

 드라마 ‘프로듀사’ 속 쓰레기 분리배출 장면.
 드라마 ‘프로듀사’ 속 쓰레기 분리배출 장면.

하지만 2015년에 방영된 드라마가 아직까지도 쓰일 정도로 그 외 TV 속 세상은 반환경적 행동투성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쉬는 시간에는 모두의 손에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가 들려 있다. 회사가 배경인 드라마에서 플라스틱 생수병에 담긴 물을 플라스틱 컵에 따라 마시는 장면을 보면, 대부분 책상에 자기 머그컵이 놓인 내 세상이 이상한 것인가, 저 텔레비전 속 세상이 이상한 것인가 혼란스럽다.

음료 캔과 비닐, 치킨 뼈를 한 봉투에 쓸어 담고 나면 양념이 덕지덕지 묻은 캔을 다시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데, 분리배출하기만 하면 재활용이 높은 자원인 캔이 일반 쓰레기와 섞여서 버려질 가능성이 높은 행동을 방송에서 보여주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관찰예능이 늘어난 시대에 매일 가는 집 앞 슈퍼라고 소개하면서도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장면은 보기가 어렵다. 길을 걷다가 충동적으로 들어간 가게라면 어쩔 수 없이 비닐봉투를 사용할 수밖에 없구나 하고 이해해보겠으나 촬영을 위해 미리 약속까지 하고 방문하는 것일 텐데 장바구니가 없다는 건 매일매일 비닐봉투를 사용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심지어 비닐봉투는 무상으로 제공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도 오히려 방송이라는 이유로 비닐 봉투를 서비스로 받은 것 같아 쓴웃음이 난다.

탄소중립 정책을 소개하는 방송에서 일부 출연진이 개인 컵 할인제도를 몰랐다면서, 자신이 직접 커피를 사러 가는 경우가 적다 보니 스태프들에게 꼭 얘기해야겠다고 대화하는 것을 보며 ‘일반인의 세상과는 다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어떤 배우는 매니저가 출근길에 미리 커피를 사 오는데 매일 일회용 컵이 생기는 게 싫어서 차에 개인 컵을 여러 개씩 두고 바꿔가며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 말을 들은 배우들이 그런 방법이 있구나라며 무릎을 치는 걸 보며 ‘역시 의지가 없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이 의무화되고 완전히 자리 잡기 전, 뒷자리에서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촬영한 영상 때문에 공개사과를 한 사람들이 늘어난 후 제도가 정착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흡연 장면을 보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TV에서 흡연 장면은 반드시 모자이크를 한다. 누가 쓰레기를 마구 버린다고 따라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진 않겠지만, 유명한 드라마에서 아침 바쁜 출근길에도 꼭 빼놓지 않는 하얀 일회용 종이컵이 마치 세련된 도회적 감성을 갖춘 뉴요커의 상징처럼 비친 이후 출근길에 커피를 든 사람이 많아졌다는 건, 쓰레기 문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증거다.

봐서 기쁘지도 않고, 모범이 되지도 않는 TV 속 일회용품들도 모자이크를 하면 어떨까? 시청자에게 ‘역시 일회용컵 사용은 문제가 있구나’, ‘개인 생활에서도 줄여야겠구나’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명확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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