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슬아 논설위원, 작가·컨텐츠 기획자

송하슬아 논설위원
송하슬아 논설위원

요즘 스마트폰 속 반려동물(개와 고양이) 콘텐츠에 빠져 살고 있다. 화면으로 접하는 보드라운 털의 형체(개와 고양이 둘 다)가 산책하고 간식 먹는 짤막한 영상으로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똥 치우고 사료를 사주는 뒷바라지 한 번 없이도 매일같이 보는 화면 속 그들에게 애정을 느낀다. 동영상 알고리즘은 동물 애호가인 나의 특성을 파악하여 다른 강아지와 고양이 영상들도 끊임없이 보여주며 화면 속에 계속 머무르게 한다. 사실 즐겨 보는 반려견과 반려묘는 각각 10만 명, 36만 명의 팬을 거느리고 있다. 나처럼 남의 집 개나 고양이를 예뻐라 하는 사람들 덕분에 광고 협찬이 줄을 잇는다. 이제는 귀여운 동물들이 스스로 밥값 하는 시대다.

​영화 ‘her’의 포스터.​
​영화 ‘her’의 포스터.​

사람들이 가상의 반려동물에 애정을 쏟는 게 2013년에 개봉한 영화 ‘her’의 장면과 다를 바 없다. 10년 전에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로부터 정확한 위로를 받고 깊은 감정을 교류하는 테오도르를 향해 이질적이고 난해하다는 관객들의 평이 주를 이뤘다. 어떻게 가상의 실체(인공지능)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귀여운 반려동물 형상을 보고 미소 짓는 나처럼 2024년에는 꽤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SF장르의 책, 소설에서 보던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다. 정부는 2019년 제3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2023년까지 성장 가능성이 높은 4대 유망 서비스 분야(돌봄·웨어러블·의료·물류)를 중심으로 집중 개발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 앤 마켓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반려로봇 시장의 규모는 15조 원으로, 2030년까지 해마다 25.7% 성장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인공지능이 제안하는 반려동물 콘텐츠에 시간을 쏟는 이가 있고, 반려동물 역할의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사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돌봄 공백 영역에서는 고령층 돌봄용 ‘효돌이, 효순이’부터 아이 교육용 ‘다솜 K‘까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인공지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쯤 되니 인간을 충실히 따를 귀여운 AI로봇의 대중화는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AI가 귀여움을 무기 삼아 우리 생활에 스며들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테드 창 소설집 '숨'의 표지.
테드 창 소설집 '숨'의 표지.

SF소설집 ‘숨’에 실린 단편소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막연했던 그 상상을 현실적인 고민으로 이끈다. 주요 인물 애나와 데릭은 가상 애완동물인 디지언트를 창조한 개발 직업군이다. 애나는 디지언트를 어린 자녀 대하듯 키운다. 반면, 데릭은 고양이, 개, 디지언트들은 모두 사람이 돌봐야 하는 것들의 대용품(기술적 도구)이라고 생각해 사회성 훈련을 시킨다. 또 다른 인물인 사업가 피어슨은 디지언트를 초인적인 지성을 갖춘 제품일 뿐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디지언트가 사용자와 경험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명령 없이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다운’ 상태로 변하면서 소설은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결국, 가상 애완동물 디지언트의 노화와 죽음(기능 저하, 사용 중단)이라는 현실에 직면한다. 사실상 디지언트는 전원 스위치를 끄면 그만이다. 동물 안락사에 수반되는 윤리적 고찰은 필요 없을 뿐더러 그들은 스스로가 버려졌다고 느끼지 않아 깔끔하게 처분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버려도 되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가상 애완동물이 귀여워서 많은 사용자들이 디지언트를 구입하고 전원을 켜지만, 점차 부담감을 떠안게 된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프로그래밍되지 않아 외부와 상호작용의 어려움을 사용자가 수습해줘야 할 책임감이 따른다. 자녀 양육과 로봇과의 공존이 크게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되면서 전원이 꺼진 채로 방치된 디지언트들로 인해 인공지능 가상 애완동물 사업은 존폐에 내몰리게 된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AI가 우리 집에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공지능이 인간하고 행동과 사고가 점점 비슷해진다면 하나의 주체적인 인격체로 존중해야 할까? 아니면 기능적 편리함을 제공하는 수단의 객체로 보는 게 맞을까?

섣불리 답을 내릴 순 없어도 인간이 부여하는 인공지능의 역할이 연인이든, 반려동물이든, 혹은 조력자이든 의식을 가진 기계들을 존중하는 관계로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다가올 미래가 긍정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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