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이 재평가되고 있다. 이승만의 삶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감독 김덕영)는 사료와 기록 영상, 그리고 국내외 학자, 언론인 등의 증언을 통해 그동안 ‘이승만 죽이기’를 시도한 세력들이 제기한 각종 주장이 허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외 일부 학자들이 이승만 연구를 해오긴 했지만 파급 효과가 큰 영상 매체를 통해 이승만이 긍정적으로 조명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시지감은 있지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건국의 아버지’, ‘분단의 원흉’, ‘미국의 앞잡이’ 등 엇갈린 평가를 받아온 이승만은 우리 현대사에서 아마도 가장 위대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폄훼된 인물이었다.

2013년 진보 성향의 시민방송(RTV)은 두 편의 ‘백년전쟁’을 공개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임을 내세운 ‘백년전쟁’은 이승만에 대해 “플레이보이, 하와이 깡패”라고 터무니없는 비난까지 퍼부으며 그를 매도했다. 보수 진영에선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이인호 전 주러시아 대사, 역사학자)라고 대응했다. 이에 대해 같은 영상물로 대응하는 데 11년이나 걸린 셈이다. 그러나 그 위력은 대단하다.

’건국전쟁‘의 개봉으로 6·25 때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대통령 혼자 서울을 탈출했다는 그동안의 소문은 허구임이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피란민들이 더 이상 다리로 진입하지 못하게 차단하고 다리 아래에 부교를 만들어 피란민은 그리로 우회하도록 했다. ‘건국전쟁’은 이 부교를 건너는 피란민들의 영상을 결정적 증거로 제시했다. 3년여간 이 다큐를 제작한 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70년 동안 우리는 거짓을 믿고 살아온 거예요”라고 한탄했다.

이 다큐는 4·19가 일어나고 나흘 뒤, 85세의 이승만이 부상한 학생들을 찾아가 북받치는 눈물을 삼키는 장면을 보여준다. “내가 맞아야 할 총을 귀한 아이들이 맞았다”며 울먹이는 영상은 인간 이승만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이를 보면서 눈시울을 젹셨다.

‘건국전쟁’은 70년 전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 당시 뉴욕에서 가진 ‘영웅 행진’(‘Hometown Heroes Ticker Tape Parade’) 영상도 보여준다. 맥아더 장군 등 역사에 영웅적인 공헌을 한 인사들을 초청하던 이 행사에 ‘자유의 수호자’ 이승만이 외국 원수로는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 다큐는 이승만에 맞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김구와 관련, 이른바 ‘류위완(劉馭萬) 비망록’을 소개했다. ‘류위완 비망록’은 1948년 7월 11일 당시 유엔한국위원회 중화민국(자유중국) 측 수석대표이자 서울 주재 중화민국 총영사였던 류위완(1897~1966)이 김구의 사저인 경교장을 방문해 그와 나눈 대화를 영어로 기록한 문서이다. ‘남북 지도자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구는 이 비망록에서 “지금 여기(남한)에 어떤 정부가 서고 있지만 곧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 같은 발언은 김구가 김일성의 남침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밖에도 ‘건국전쟁’은 이승만의 위업인 토지 개혁,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등을 다루고 있다. 이승만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101분 필름에 다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김 감독은 ‘건국전쟁’ 2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이승만 대통령 기념재단이 추진하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에 지난 19일 기준 6만여 명의 국민이 참여해 103억 원이 모금됐다. 건립 비용은 국민 모금 70%·정부 지원 30%로 채워질 예정이다. 뒤늦게나마 올바른 우리 현대사 교육의 장이 민관 협력으로 마련된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

선진국에서는 현대사의 영웅을 어떻게 기리고 있는가? 프랑스에서는 1974년 개항한 파리 국제공항을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샤를 드골 공항’이라고 명명했다. 미국 최대의 도시인 뉴욕의 국제공항도 존 F. 케네디 서거 한 달 후인 1963년 12월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으로 개명했다. 체코의 경우는 프라하 국제공항을 2012년 체코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극작가 출신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으로 개칭하였다. 추가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현대사의 위인을 기리고 만방에 알리는 최상의 방법이다.

이승만의 재평가 작업이 힘을 얻고 있는 이때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 국제공항을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를 기리는 ‘이승만 국제공항’으로 개칭할 것을 제안한다. 이승만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글로벌한 식견과 혜안을 지닌 선각자로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켰다. 국제 정세에 밝았던 그는 2차대전 후 동구권 제국이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보면서 한반도에서도 소련이 같은 시도를 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좌우합작 정부를 세우려던 미국을 설득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유엔의 승인을 이끌어 낸 우리 현대사 최고의 영웅이다. 미 8군사령관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주 전선을 방문하는 이승만을 ‘한국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정치가·애국자’라고 평가했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년이면 이승만 서거 60주년이 된다. 그동안 우리는 그가 놓은 초석 위에 전 세계가 인정하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이제는 ‘공칠과삼(功七過三)’과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이 그에게 보은할 차례다.

‘건국전쟁’이 내달 20일 미 국회의사당에서 상영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 건국전쟁의 영어 제목 ‘The Birth of Korea’(‘코리아의 탄생’)에 대해 필자가 한국학자인 브리검 영 대학교 명예교수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박사에게 문의하여 받은 회신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The Birth of Korea’(코리아의 탄생)라는 영어 제목은 삼국시대나 통일신라를 연상시킬 수 있다.(“…one would think we are talking about the Three Kingdoms Period or the Silla Unification or some such.”) 주인공인 이승만의 이름을 넣어 'Syngman Rhee and his Battle to Create the Republic of Korea'('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그의 투쟁')로 하는 것이 보다 명확할 것이다." 좋은 제안인 것 같다. 제목으로서 길다면 부제로 활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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