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지난 1월에 실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규모 ‘군중 시위’가 독일에서 일어났습니다. 근래, 커지는 ‘신나치(Neo-Nazi)’를 이끄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 Alternativ für Deutschland, 이하 ‘극우대안당’)’을 규탄·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입니다.

베를린,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뮌헨 같은 대도시는 물론 작은 도시를 포함하여 약 130개 도시에서 시위군중이 시가지를 메웠다고 합니다. 그 숫자가 100만 명을 훌쩍 넘었다고 하는데 그들을 일러 “민주주의자들의 봉기”라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현상입니다. 

극우 신나치 세력인 극우대안당을 규탄하는 시민들이 베를린 독일 의사당(Bundestag) 앞 광장에 모였다.
극우 신나치 세력인 극우대안당을 규탄하는 시민들이 베를린 독일 의사당(Bundestag) 앞 광장에 모였다.

유럽 역사에서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은 늘 역사의 한 장(章)을 넘기듯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난 후 독일인에게는 전쟁에서 물리적으로 패(敗)한 것도 억울한데 ‘정신적으로 치욕스러운 역사의 굴레’에 빠지고 말았다는 사실이 더 괴롭게 다가왔습니다. 그 점이 전후 독일의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대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문호(文豪)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악성(樂聖)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을 위시해서 수많은 문화예술가를 배출하였다고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하는 문화 대국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 ‘히틀러 나치’가 이끈 ‘제3 제국(Das Dritte Reich)’에 의해 그리도 속절없이 인류사에 최악의 오명을 남기면서 민족적 망연자실증(茫然自失症)에 빠지고 맙니다. 사실 전쟁에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독일인에게는 지난 패망의 역사는 그만큼 버겁게 품에 안고 있는 ‘멍에’인 것입니다.

독일에서 지내다 보면, ‘히틀러 나치’에 전 국민이 그렇게 쉽게, 그리도 철저하게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에 ‘국민적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모국의 히틀러 지배의 역사가 너무 혐오스러운 나머지, 어린 나이에 모국을 등지고 영국으로 이주한 소설가 카타리네 폴크머(Katharine Volckmer, 1987~ )는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2021.08.06.)과의 인터뷰에서, “과거는 외과수술로 도려낼 수 없다.”고 허탈해하며 절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독일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작금의 독일 지식인들의 속내와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 카타리네 폴크머 관련 글은 바른사회운동연합(회장 신용무) 칼럼에서 언급한 바 있다. 2021. 12. 08.)

이러한 ‘히틀러 증후군’이 부정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에서 히틀러가 잘한 부분도 있다고 주장하며 세력화한 이른바 극우 모임인 극우대안당(AfD)이 2013년 창당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극우대안당을 중심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극우 추종 세력의 결집 현상이 이어집니다. 여러 지방의회에 극우대안당의 진입이 뚜렷하다 못해 우려스러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통계자료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귀하는 다음 일요일의 ‘지방의회 선거’에서 어느 정당을 택하시겠습니까?”라는 여론조사에서 극우대안당 31.3%, 기독민주당(CDU) 22.6%, 독일사회당(SPD) 10.0%, 녹색당(Grüne) 6.6%가 나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결과입니다. [슈피겔(Der Spiegel), 2024.1.27.]

독일 사회는 크게 격앙하였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자들의 봉기’라는 기치(旗幟)하에 독일 사회는 요동칩니다. 공화국을 극우대안당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백만 명이 훌쩍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것입니다. 1945년 종전 이후 처음 있는 범국민적 집단행동입니다.

독일 루르(Ruhr) 지방의 중심도시인 뒤셀도르프(Düsseldorf)의 시장 슈테판 켈러는 시위 군중이 왜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대변하듯 말합니다. “1930년대 독일 민주주의에 대한 첫 경고를 우리는 당시 저평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고자는 조롱받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나치수용소에서 살아남은 102세 마고트 프리트렌더(Margot Friedländer, 1921~ ) 여사의 ‘그때도 그렇게 시작했었다(So hat es damals auch angefangen)’라는 글은 오늘을 사는 독일인에게 보내는 경종이다.
나치수용소에서 살아남은 102세 마고트 프리트렌더(Margot Friedländer, 1921~ ) 여사의 ‘그때도 그렇게 시작했었다(So hat es damals auch angefangen)’라는 글은 오늘을 사는 독일인에게 보내는 경종이다.

켈러 시장의 일성(一聲)이 바로 이번 거국적 대규모 시위에 참여한 모든 시민의 생각을 집약하고 있으며 이는 필자의 생각과 맥을 같이합니다. 그런 시각에서 독일 사회에 건재하는 이른바 ‘좌파와 우파’, ‘우파와 좌파’의 틀을 넘어 가히 거국적 규모로 히틀러 냄새가 물씬 나는 신나치주의 극우대안당을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되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시민들은 시위에 결연히 나섰습니다.

이번 독일 시민이 전국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모습은 지난 히틀러 정권하에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 그래서 그렇게도 부끄러웠던 지난날 역사에 대한 뉘우침의 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더욱 강하게 능동적으로 표출하는 잊혔던 낱말 ‘Die Wehrhaften’이 등장하였습니다. Wehr(막다, 거부하다)와 haften(보증하다, 책임지다)의 합성명사 ‘Die Wehrhaften’이 등장하면서, 이번 군중시위의 특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능동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어 그 의미를 더합니다.

정의는 능동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슈피겔지의 표지.
정의는 능동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슈피겔지의 표지.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단어 ‘Die Wehrhaften’에서는 올바른 정의를 위해서 ‘먼 산 바라보듯 수동적이지 말자’라는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독일 시민의 놀라운 변신입니다. 그래서 역사의 무거운 의미를 적극적으로 되새기며 반성하는 독일 시민의 항거정신에 마음의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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