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공익법인의 투명성 확보를 국정과제 중 하나로 채택하고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민노총과 한노총의 회계 공개를 이끌어 내는 등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노조의 결산공시에는 기부금 혜택 철회, 보조금 중단과 같은 기존의 정책수단이 답습됐을 뿐 투명성이 문화로 정착되는 데 필요한 제도의 도입까지는 이르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때마침 한국경제인협회(구 전경련)는 공익법인의 설립과 활동에 관한 규제를 대폭 개선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주식 출연 면세한도를 높이고 공익법인이 보유한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완화해 달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백 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의 완화는 투명성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과거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공익법인이 악용되었던 전철을 밟게 해서는 안 된다. 투명성이야말로 규제 완화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누그러뜨리는 핵심적 요소라 볼 수 있다. 기업재단의 신탁이사회 구성, 목적사업에 대한 의무 지출비율의 상향 조정에 더해 공시-감사-평가에 이르는 투명성의 전 과정이 도입된다면 기업재단을 통한 사회적 책임의 수행과 경영권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 누구나 좋다고 생각하는 한국판 발렌베리재단은 이런 절차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공익법인의 투명성 확보에는 국내 최대의 모금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동모금회의 배분기준에는 사업성에 대한 평가의 일환으로 투명성 평가가 곁들여져 있다. 그러나 사업성 평가에 앞서 사업 수행기관의 투명성 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는 기업이 인재를 채용할 때 능력을 보기에 앞서 인성을 살펴보는 것과 같다. 아울러 잘못 사용한 기부금에 대해서는 과감한 환수가 이뤄져야 한다. 올해 초 제기한 허베이협동조합에 대한 공동모금회의 환수 노력이 결실을 맺어 기부자의 뜻에 맞지 않게 쓰인 기부금은 반드시 받아낸다는 선례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최근 몇 년간 일부 시민단체들은 공익법인의 탈을 쓰고 기부금보다 보조금에 눈을 돌렸다. 현행 공익법인 공시양식은 기부금 사용에는 세부 내역을 요구하고 있지만 보조금은 이런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보조금은 정부가 감독한다지만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만큼 그 사용내역이 국민들에게 자세히 알려져야 한다. 공익법인이 쓰는 기부금과 보조금의 사용내역이 공시되려면 국세청 공시양식의 변경이 올해 세법 개정안에 반영되어야만 한다. 이는 복잡하지도 않아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즉각 실행될 수 있다. 참고로 지난해 부당한 방법으로 타간 국고보조금은 699억 원으로 전년의 약 일곱 배나 됐다. 보조금 부정수급 사례를 찾아내는 시스템을 도입한 2018년 이래 최대 규모이기도 하다.

대형 공익법인들로 구성된 한국자선단체협의회는 몇 년 전 공인회계사회와 자율적 협약을 맺고 일정 규모 이상의 공익법인은 반드시 외부회계감사를 받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가이드스타의 조사에 따르면 외부감사를 받았다고 공시한 3977개의 공익법인 중 949곳은 외부감사 보고서의 전문을 공개하지 않아 실제로 외감을 받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선언적 의미를 떠나 최소한의 법적 의무라도 지킬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독려하는 문화가 아쉽기만 하다.

투명성을 문화로 정착시키는 제도의 도입이 지연되는 가운데 지난해 11월에는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단체의 허가가 취소됐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이 위원장을 맡은 이 단체의 출범식에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까지 축전을 보낼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치인들이나 정부 인사들도 많이 참석했다. 여기에 신한금융, 하나금융, 두나무 등의 기업들이 44억 원을 기부했다.

그러나 이 단체의 2020년도 공시 기록을 보면 일반관리비 7.9억 원에 사업비 6.7억 원이 나왔다. 설립된 지 5년이 되지 않아 가이드스타의 평가도 받지 못했다. 거기다 유엔의 로고까지 무단으로 끌어다 쓴 것이 드러나 결국 해산되기에 이르렀다. 기업들이 미리 투명성을 점검했으면 절대 기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돈이라면 더 그랬을 것이다. 결국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쓰여야 할 44억 원의 소중한 기부금만 허공에 날아간 셈이 됐다.

투명성 확보는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누구나 공감하고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민간이 투명성의 대의에 따라 각자의 영역에서 실천 가능한 노력을 기울이면 올해는 투명성이 문화로 정착되는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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