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이즈음이면 대학입시도 막바지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추가 합격자를 ‘퍼 올리느라’(현장에서 사용되는 은어이다.) 아직 분주하지만, 머지않아 24학번 신입생 명단이 확정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류의 이야기지만, 서울 소재 모 사립대학 영문학과는 ‘7바퀴 반을 돌았다’(최초 합격자 발표 이후 정원의 7.5배 추가 합격자 발표를 이어갔다는 의미.)는 루머가 떠돈 적 있고, 올해 SKY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합격자 다수가 의대 증원 정책과 맞물려 재수 내지 반수를 할 것이라는 예측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지금 대학의 고민은 ‘소위 우수 학생’이 모두 의대로 흡수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나머지 우수 학생’을 어떻게 유치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으니, 이 또한 우울하긴 매한가지다.

작년 이맘때 친한 후배가 뒤늦게 얻은 딸이 연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대 이외엔 생각해본 적 없기에 무척 실망한 나머지 재수를 하겠노라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결국 부모가 법학전문대학원은 서울대로 가자고 설득해서 가까스로 재수 의지를 꺾었노라 했다. 올해도 조카와 각별히 지내는 친구 딸이 특목고 출신으로 한양대 수시에 합격했는데, 아무래도 재수를 해야겠노라고 일방적으로 엄마에게 통보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SKY대에 서성한(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으로 불리는 서울 소재 명문대에 합격하고도, 기뻐하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대략 난감하다.

베이비붐 세대인 나는 일본어가 원조라는 입시지옥이라는 말을 어린 시절부터 들으며 자랐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중·고등학교 입시부터 문제 하나에 당락이 결정될 만큼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했던 시절, 언니 오빠 입시 치르며 ‘무즙 파동’도 겪었고 ‘창칼 파동’도 지나갔다. 입시지옥의 원조라는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지나는 동안 명문대 출신 후광효과의 위력이 점차 약화됨으로써, 입시지옥에서 거의 벗어났다고 한다. 한국으로 유학 온 일본학생들로부터 직접 들은 경험담이니 틀린 진단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입시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모자라 입시전쟁에 의대광풍까지 휘몰아치고 있는 우리네 현실이다.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상황에서 대학생 수가 폭증하면서, 능력주의의 옷을 입은 엘리트주의가 판을 치고, 대학 간 서열은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해지는 역설이 진행 중이다. 2013년, 사회학자 오찬호가 발표한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에는 안양대와 대진대 학생들 사이에도 수능성적에 따른 위계가 나타나는 현실을 개탄하는 내용이 나온다.

현행 입시제도하에서는 수시모집에 6개 대학, 정시 모집에 3개 대학을 지원할 수 있어 표면적으로는 수험생들에게 선택의 기회가 활짝 열려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내신 등급도 수능 성적도 나보다 아래인 친구가 나보다 좋은 대학에 합격할 경우 좌절감에 억울함이 밀려오고, ‘점수가 남아서’ 아까운 마음에 적성이나 희망 무시한 채 점수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고 보니, 대학생활이 또 다른 지옥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기야 대학 이름이 그저 이력서에 한 줄 들어가는 스펙이 된 세태 아니던가.

20대의 생애주기 특성을 연구하면서, 이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느끼는 과업(task)은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100점을 기준으로 자신의 스트레스 점수를 기록하도록 한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건 물론 남녀 공히 취업 준비로 나타났다. 한데 그다음으로 스트레스 점수가 높았던 사건은 남자에겐 대학입시요, 여자에겐 첫 직장 경험 및 대학입시로 밝혀졌다. 20대 청춘에게 대학입시가 그토록 스트레스를 주는 이유는, 좋은 대학 나와야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그나마 편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 아니겠는지.

1955년생 친정 오라버니가 광화문 대성학원에서 재수했는데 2005년생 조카 손주가 강남 대성학원에 등록했다. 50년 사이 매번 사교육을 잡겠다며 예비고사에 학력고사를 거쳐 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는 동안, 입시정책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공교육은 초라할 정도로 초토화되었건만,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재수생에 N수생을 책임지며 버텨온 학원가의 성공 노하우가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학원가는 알고 있을 것 같다. 입시지옥에서 탈출하는 길을. 다만 그 길을 절대로 가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자신들의 성공신화가 막을 내릴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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