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신구대 식물원 원장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요즘 날씨 변덕이 심하지만 아침에 걸치고 나온 두꺼운 옷이 오후가 되면 좀 무겁다. 남쪽에서부터 봄꽃 소식은 이미 한참 전부터 들려오고 있다. 봄은 온 것일까? 그럼, 봄은 언제부터 오는 것일까? 겨울꽃인지 봄꽃인지 애매하게 생각되는 동백(冬柏)을 1월 중순부터 찾아다니고 있다. 제주를 시작으로 거제, 해남, 고창 등지를 다녔다. 동백나무는 겨울에 꽃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일반적으로는 꽃 피는 시기가 겨울인지 봄인지에 따라 동백(冬柏)과 춘백(春柏)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말로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도 동백나무는 꽃을 피우는 걸까.

이제 막 꽃 피우기 시작한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겨울 추위에 상처받아 잎이 아직도 약간 붉은색을 띠고 있다. 사진 전정일
이제 막 꽃 피우기 시작한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겨울 추위에 상처받아 잎이 아직도 약간 붉은색을 띠고 있다. 사진 전정일

동백으로 부르는 것이 맞을지 춘백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맞을지 결정하려면 봄이 언제부터인지를 알면 될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일반적인 계절 구분으로는 3월부터 5월까지를 봄이라고 한다. 그러나, 천문학에 따른 구분으로는 춘분점(春分點, 3월 20일경)에서 하지점(夏至點, 6월 21일경)까지를 말한다고 한다. 또, 절기에 따른 구분으로는 입춘(立春, 2월 4일경)에서 입하(立夏, 5월 5일경)까지를 말하기도 한다. 날짜를 기준으로 보면, 이렇게 복잡하고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꽃이 피는 것은 여러 환경요인 중에 온도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온도를 기준으로 계절을 구분해보면 동백인지 춘백인지를 확인할 수 있겠다. 기상학적으로는 기온 변화에 따라 계절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기상학적으로 봄은 9일 동안 일 평균기온이 5°C 이상 올라간 후, 다시 떨어지지 않을 때, 그 첫 번째 날을 봄의 시작일로 정의한다. 좀 더 자세하게 초봄(일 평균기온 5°C∼10°C, 일 최저기온 0°C 이상), 봄(일 평균기온 10°C∼15°C, 일 최저기온 5°C 이상), 늦봄(일 평균기온 15°C∼20°C, 일 최저기온 10°C 이상)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올해 들어 찾아다닌 동백나무 군락지가 위치한 지역에서 꽃이 만개하는 시기를 보면 제주 서귀포가 가장 이른 1월 하순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의 서귀포 지역 온도를 보면, 이미 일 평균기온은 5°C를 넘기고 최저기온이 0°C 이상이 되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서귀포는 이미 봄이 온 것이고 서귀포의 동백나무는 봄을 맞아 꽃을 피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면에서 보면, 사실 동백나무는 ‘춘백(春柏)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가끔 꽃 핀 동백나무에 흰 눈이 쌓인 것을 볼 수 있다 보니 겨울에 꽃이 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봄에 눈이 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앞으로는 동백나무에 꽃 핀 것을 보고 봄이 왔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물론, 보통은 매실나무가 ‘매화’를 피우거나 생강나무, 산수유, 개나리 같은 나무들이 꽃을 피우면 봄이 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여기에 동백나무 하나 더 붙여보자.

볕이 잘 드는 들판에 꽃을 피운 ‘잡초’, 큰개불알풀(부르기에 상스럽다고 해서 요즈음 ‘봄까치꽃’으로 바꿔 부르지만, 필자는 원래 부르던 이름이 더 좋다). 사진 전정일
볕이 잘 드는 들판에 꽃을 피운 ‘잡초’, 큰개불알풀(부르기에 상스럽다고 해서 요즈음 ‘봄까치꽃’으로 바꿔 부르지만, 필자는 원래 부르던 이름이 더 좋다). 사진 전정일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꽃으로 주목받는 식물들 외에 소박한 모습으로 봄을 알리는 것들도 많다. 동백이 피거나 매화가 핀 나무 아래 바닥에서 아주 작고 소박한 꽃들을 피운 소위 ‘잡초’들을 찾을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너무나 예쁜 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인이 보내준 고로쇠수액.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초봄, 짧은 기간에만 채취할 수 있다.
지인이 보내준 고로쇠수액.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초봄, 짧은 기간에만 채취할 수 있다.

또, 이즈음에는 ‘고로쇠 약수’를 맛볼 수도 있다. 건강에 좋다고 해서 고로쇠나무 줄기에서 수액을 채취해서 먹는데, 초봄 짧은 한때만 맛볼 수 있다. ‘잡초’가 꽃을 피웠다거나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이 나온다는 것은 이미 땅속에서 뿌리가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봄은 발밑 땅속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또, 아주 소박한 잡초에서부터 봄이 오는 것이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나무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도 봄을 가져오는 저 바닥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 사는 사회에서도 ‘화려한’ 정치인, 기업가, 사회 저명인사가 봄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민초(民草)들이 봄을 가져온다. 우리 민초들이 깊이 생각하고 열심히 움직여야 우리 사회에 봄이 올 것이다. <다음 글은 3월 7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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