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 간의 재대결이 거의 확정되면서 후자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트럼프 리스크(Trump Risk)’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한국과 나토(NATO)의 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示唆)함에 따라 미국 대선 결과에 초미의 관심사가 쏠리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적 행보를 계속했지만, 미국 유권자 중 약 40% 이상의 지지를 계속 확보하는 가운데 공화당을 “트럼프의 당”으로 만들어 버렸다. 과연 누가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지, 또 무엇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가를 이해해야 미국 대선을 제대로 전망해 볼 수 있다.

   백인 노동자·시골 유권자들의 ‘이유 있는’ 갈채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핵심세력이다. 이들은 주로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거주하고 있는데, 자동차 산업의 성지와 같은 디트로이트가 있는 미시간을 비롯해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이다. 중산층 생활을 하던 많은 백인 노동자들이 1990년대부터 일자리를 잃으면서 하층민으로 추락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고,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킨 후, 이들 국가의 값싼 제품에 밀려서 미국 공장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게 되자, 이들은 2000년 대선부터 민주당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세력인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킨 결과,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당선시키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당시 트럼프와 힐러리 후보에 대한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율이 각각 67%와 28%여서 양자 간의 격차가 39%포인트나 됐다. 이들은 중국 상품에 고액 관세 부과, NAFTA 재협상 등을 약속하는 트럼프 후보에게 희망을 걸었다. 이들은 자유무역이나 세계화, 이민을 반대하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 쌓기와 미국 우선주의를 지지한다.

또 하나의 트럼프 지지 세력은 시골 유권자들이다. 트럼프 후보는 2016년 대선에서 인구가 100만 명 이상인 대도시 지역에서 약 40%의 지지를 얻은 반면, 인구가 2500명 이하인 시골에서 그의 득표율은 70%에 육박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를 보면, 가장 북쪽 내륙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 모독(Modoc) 카운티나 래슨(Lassen) 카운티에서는 트럼프 후보가 70% 넘는 표를 얻었다. 반면,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가 있으며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앨러미다(Alameda) 카운티에서 트럼프 후보를 찍은 유권자는 14.5%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투표 행태는 도시와 시골 간의 사회경제적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도시는 교육 수준이나 소득이 높아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있으나, 시골은 교육수준이나 소득이 낮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기보다 기존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빈곤율도 시골이 도시보다 더 높다. 이들 시골 유권자도 백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세계화나 이민에 반대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의 노선을 강력히 지지한다. 이처럼 백인 노동자와 시골 유권자들이 트럼프가 내세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지지하는 양대 세력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이질적이지만 자유무역과 세계화 반대, 반 이민, 반 엘리트, 반 기득권 성향 등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요인과 함께 이들이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하는 배경에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주류 정치에 분노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주 정부나 연방 정부로부터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자나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이 노력한 바에 비해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 사실에 상관없이 이들은 자신들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신념 때문에 이민자와 소수인종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치엘리트들이 시골 사람이나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노동자들의 입장을 전혀 존중해 주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을 그저 “생각 없는 인종주의자”로 치부한다며 분노한다.

특히 도시 엘리트들이 교육 수준, 소득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과 결혼하고 모여 살면서 결과적으로 ‘엘리트 버블’ 속에 갇혀 있다고 믿는다, 그 결과 주류 정치인들이 도시의 중상류층이나 이민자들, 그리고 소수 인종이나 성소수자(LGBT) 등을 옹호하고, 평범한 미국인들이 겪는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제를 파악하거나 해결책을 강구할 생각이 없다고 본다.

그런데 트럼프는 백인 노동자들과 시골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극하거나 달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의 연설이 매우 재미있고, 알기 쉽고, 자신들의 언어로 얘기하기 때문에 무척 좋아한다. 트럼프가 토크 쇼(talk show)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유세장의 청중을 완전히 매료시키는 것이다. 다른 정치인들이 어려운 용어로 정책이나 공약을 얘기할 때 트럼프가 다른 정치인의 성대모사까지 하면서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것에서 오히려 친근감을 느낀다. 시골 사람들이 자동차로 수백km를 운전해서 트럼프 유세장에 모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트럼프의 인종주의적 발언이나 성차별적 발언에 오히려 속 시원해한다. 그의 연설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류 언론의 비판에 오히려 반발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를 비판하거나 배신하는 언론이나 정치인들을 서슴지 않고 공격한다. 예컨대 반 트럼프 노선에 앞장선 리즈 체니(Elizabeth Lynne Cheney) 하원의원이 트럼프 지지자들 때문에 와이오밍 주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패배하고 공화당에서 축출되었다. 백인 노동자들과 시골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다. 작년에 트럼프가 기소되자. 정치적 박해라고 주장하면서 선거자금 기부를 독려하자, 그를 보호하기 위해 지지자들이 엄청난 후원금을 보냈다. 이들은 트럼프와 정치적 일체감을 느끼면서 트럼프를 신(神)처럼 받들어 모신다.

    ‘트럼프 리스크’ 크지만 미 대선결과는 미지수

지난 1월 시작된 대선 후보 당내 경선에서 트럼프는 주로 백인 노동자와 시골 유권자들로 구성된 열성 지지자들 덕택에 쉽게 승리하고 있지만, 11월의 본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물리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4년 전 대선에서 트럼프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당시 창궐하는 코로나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패배했다. 이것은 트럼프 열성 지지자만으로 본선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편 8년 전에는 트럼프 후보가 전국 득표수에서는 힐러리 후보에게 200만 표 이상 적었지만 선거인단 수를 많이 확보하여 승리하였다. 이것은 미국 대선제도가 각 주에서 1표라도 많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독식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러스트 벨트의 경합주(swing state)에 많이 거주하고 있어 트럼프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2월 초 실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7개 경합주(위스콘신,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네바다, 애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트럼프와 바이든이 각각 48%와 42%의 지지를 얻어서 트럼프가 오차 범위 밖인 6%나 앞서고 있다.

그렇지만 본선은 아직 8개월 이상 남아 있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많은 나라들이 트럼프의 당선에 대비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트럼프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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