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배우 이선균이 세상을 떠난 지 석 달이 되어간다.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작년 12월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배우자와 어린 두 아들이 받은 충격과 고통, 그리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삶의 무게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자살유가족은 사회적 낙인과 비난, 치욕의 꼬리표를 달고 죄책감, 무기력, 우울, 절망감으로 괴로워한다. 자살 장면을 목격하거나 시신을 발견한 사람 또는 부패한 시신의 냄새를 맡은 사람들은 불안, 공황 발작, 무호흡증, 가슴 통증, 악몽 같은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삶이 망가진다.

충격과 저항, 혼란 단계에서 겪는 분노 또한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의사나 친구, 동료 등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어떤 조치도 안 했던, 또는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행동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퍼붓는 분노, 유가족을 버리고 떠난 사람에 대한 분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간 신에 대한 분노까지….

분노의 대상을 처벌하고 복수하기 위해서, 죄책감 때문에, 이 영원한 지옥에서 도망가기 위해서, 더러는 세상을 떠난 사람과 다시 만나거나 새로 태어나고 싶어서 자살을 감행하는 유가족도 있다. 유가족에게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자살 생각을 확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데 비판하지 않고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유가족의 자살 충동은 오히려 낮아진다. 자살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며 그런 생각을 꼭 없애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1주기나 생일, 기념일이 돌아오는 시기에는 자살 고위험군이라 할 수 있는 유가족을 홀로 두지 말고 세심한 관심을 두고 지켜보아야 한다.

자살유가족을 돕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 옆에 있어 주는 것이다. 그들을 절대 혼자 고립되게 해서는 안 된다. 어설픈 위로나 충고로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 또한 피해야 한다.

“잊어버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울지 마. 이미 일어난 일, 운다고 바뀌어?”, “시간이 가면 다 치유돼, 세월이 약이야.”, “네가 강해져야지.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자꾸 그러면 더 힘들어져”, “환경을 바꿔 봐. 기억나게 하는 것 빨리 버리고”, “바쁘게 살다 보면 슬픔도 다 사라져”, “신앙이 깊으면 슬퍼할 필요도 없어. 기도 더 많이 해” 등등이 대표적인 예다. 틀린 말도 아니고 더러는 맞는 말도 있지만 사람은 저마다 슬퍼하는 방식이 다 달라서 위로하는 말에도 상처받는다.

감정이 언어로 표현되면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 아무 데서도,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얘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충분히 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슬픔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고인과의 관계나 상황, 성격, 종교 등에 따라 다 다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어떤 기준에 맞추려 하지 말고 각자의 방식과 속도에 따라 표현하면서 다른 사람의 방식도 존중해 주면 되는 것이다. 원하는 만큼 이야기하고 울고 싶은 만큼 편하게 울 수 있도록 해 주자. 죽은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우는 것은 애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어떤 상실은 당연시하면서 자살만 유독 금기시하면 슬픔이 지연되어 마음의 병이 커진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 방황하는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살 사실이나 죽었다는 사실까지 숨기는 유가족이 있는데 가능하면 비밀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비밀을 유지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고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중, 삼중의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연령에 따라 죽음을 이해하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자녀의 나이나 발달 단계에 맞게 설명해 줘야 한다. 아무리 어려도 가족의 행동이나 반응, 분위기를 보면 무언가를 감지하게 된다. 무조건 금기시하거나 마냥 어리다고 덮어버리지 말고 아이들도 애도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좋다. 죽음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알아보고 그런 상황을 잘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바람직한 태도이다.

유가족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지만 말고 식사 준비나 청소, 쓰레기 버리기나 빨래, 장보기 등 일상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알아서 챙겨 주는, 작은 친절을 잊지 말자. 그리고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주자. 도움을 요청할 만큼 의지와 용기가 생겨났다는 것은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는 반가운 단서이다.

자신을 위해 휴식을 취하면서 즐거움을 느껴도 좋고 웃어도 좋고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도 허용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자. 그런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버리거나 배신하고 모욕하는 일이 아니다.

장례식을 생략하거나 약식으로 치르는 유가족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떠난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미로서의 장례식은 필요하다. 장례식은 유가족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정리하면서 치유되는 중요한 과정이며 고인을 기억하는 조문객들을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같은 처지에 있는 유가족들과의 자조 모임도 큰 힘이 된다. 다른 데서 하기 어려운 얘기와 정보를 나누며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물건을 서둘러 없애버리려고 하는 유가족이 있다. 하지만 완전히 없애는 것보다 당분간 안 보이는 곳에 두는 게 좋다. 감정적인 처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 처분해도 늦지 않다. 지인과의 만남도 서둘러 단절하거나 무리하게 피하지 말고 연결의 끈을 유지하는 것이 고립을 예방하는 길이다.

자살에 대한 교육은 치유 과정의 핵심이다. 자살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숨 막힐 듯한 고통으로부터 절실하게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 자살의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면 유가족은 그때부터 치유를 위한 한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다. 일반인들도 유가족을 좀 더 효과적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돕는 방법을, 교육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가족끼리도 서로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누구보다 큰 힘이 되는 게 가족이지만 더 큰 상처를 주는 사람도 가족인 경우가 적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조금씩 아물긴 하지만 세월이 지난다고 상처가 완전히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상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이 잘 견디고 있다고 느끼면서 일상생활로 돌아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경고 신호도 없이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고통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온갖 오명과 편견과 손가락질 속에서 신음하는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돌아보자.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지만, 유가족이 떠난 사람에 대한 추억을 고이 간직하면서 에너지를 자기 삶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보자.

이선균 씨의 아내와 자녀들이 위기를 넘기고 활짝 웃는, 행복한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이선균 씨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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