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훈 논설위원, 연총 명예회장 
*연총=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 총연합회

이석훈 논설위원
이석훈 논설위원

드디어 10년 넘게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기관(이하 출연연)을 옥죄어왔던 족쇄가 풀렸다! 정부는 지난 1월 31일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2024년도 공공기관 지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출연연 25개 모두가 공공기관에서 지정 해제됐다. 과학기술계 연구기관이 공공기관이라는 행정 규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공운법(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은 정부의 투자, 출자 또는 재정 지원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을 관리하기 위한 법률로, 2007년 제정돼 2008년부터 시행됐다. 공공기관 경영의 합리성과 투명성 제고를 목적으로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의 정원 및 총인건비를 관리하고, 생산성 및 효율성 강화를 위한 기능 조정 등 혁신 지침을 주기적으로 계획하고 감독한다.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구분되는데, 2008년 출연연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지정됐다. 출연연은 연구기관이라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강원랜드 등 수익 사업을 하는 다른 기관과 함께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기에 성격이 전혀 다른 기관들과 일률적으로 총인건비, 정원, 채용, 평가 기준 등에서 관련 규정을 적용받았다. 심지어 고객이 정부임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고객만족도 결과가 기관 평가에 반영되기도 했다.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공공연구기관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공운법과 이에 따른 지침은 출연연의 자율적 연구환경을 해치는 주요인으로 작용했고, 선도적인 연구개발의 필수인 창의성과 도전성 발현을 막는 주범으로 지적되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25개 출연연 전체 인력과 예산이 과학 선도 국가의 1개 연구소 규모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으로 연구환경은 악화일로에 놓여있다. 세계적인 연구개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외 석학 초빙은 물론이고, 신규 사업 추진에 필요한 인력 확보도 적시에 이루어지기 어렵다. 실제 2020년대 들어 증원 요구 대비 10% 내외인 50여 명의 인력만 반영되어 기관당 2명 내외의 인력만 확보할 수 있었다. 더구나 자율성에 한계를 느낀 인재들이 대학이나 기업으로 이직하는 등 국내외 우수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도 반복되었다.

연구 현장에서는 공운법이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연구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음을 인식, 그동안 꾸준히 개선을 요구해 왔다. 법이 적용된 3년 차인 2010년에 벌써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건의하는 보고서가 나오기 시작했고, 과학기술계 단체들도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지속적으로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결과적으로 2018년 공운법 개정을 통해 기타 공공기관 중 ‘연구개발 목적기관’으로 세분화하여 지정하기에 이르렀지만, 구체적인 세부 시행령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유명무실해졌고, 공운법과 지침은 계속 적용되었다. 다만 지난해 블라인드 채용과 고객만족도 조사 규제가 풀려 다소 행정적인 업무량이 감소된 성과도 있었다.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와 더불어 정부는 과학기술 선점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혁신적·도전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관리 체계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폭넓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석학 등 우수 인재를 적극 유치하고 빠른 기술 변화에 대응해 인력과 예산을 핵심 기능 위주로 보다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이번 조치로 총액 인건비 한도, 정원 관리 등 우수 인재 확보의 걸림돌이 사라지게 되어, 연구기관으로서 자율성을 갖고 창의적으로 기관을 운영할 수 있는 장치는 만들어졌다고 본다. 최소한 한 해 먼저 공공기관서 해제된 4대 과학기술원의 관리를 위해 과기정통부가 배포한 ‘과학기술원 관리 기준안’에 따르면 해외 석학을 교수나 연구원으로 초빙할 수 있는 ‘초빙 임용제도’와 연구책임자의 추천으로 박사후연구원이나 연수연구원을 뽑을 수 있는 ‘추천 임용제도’를 도입할 수 있게 됐다. 분명 출연연의 선진 연구환경이 진일보한 셈이다.

그러나 출연연의 공공기관 해제가 실질적인 연구 성과 확대로 이어지려면 재원 확보 방안과 자율적인 연구환경 마련을 위한 정부의 관리 방안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과학기술계가 십수 년간 요청했던 공공기관 지정 해제가 결실을 이뤘으나 제대로 된 준비 없이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공공기관 지정 해제 후 1년이 지난 4대 과학기술원의 경우 인건비·인력 운영에 대해 자율성은 마련됐으나, 이를 위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규제 개선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더구나 올해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전년도에 비해 약 15% 감소했고, 출연연의 주요 사업 출연금은 기관별로 20~30%씩 감소한 상황에서 당장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2024년 추경예산 및 2025년 예산 복원을 촉구하는 상황과 맞물려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연구 현장의 사기를 되살리려는 정책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하나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지연되고 있는 출연연 기관장 늑장 인선 관행이다. 기관장 임기종료 후 1년이 지나서 후임 원장이 선임되는가 하면, 이미 기관장의 임기가 종료되고 길게는 7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미선임된 기관이 3곳이고, 4월까지 7개 기관장의 임기가 종료되어 관련 규정에 따라 후임 원장 선임 절차가 벌써 진행되어야 하나 아직 깜깜이다. 총선과 맞물려 후임 선임 절차가 더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있고 보면 출연연의 리더십 공백이 심히 우려스럽다.

규정에 따르면 임기가 종료되어도 후임 기관장이 선임되기까지 현 기관장이 역할을 수행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미래가 없는 기관장으로서 단순한 행정적인 절차만 수행할 뿐 기관의 사업체계 마련, 인사, 예산 수립 등을 주도적으로 수행하지 않아 기관의 발전이 정체되는 나아가 뒷걸음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더구나 감액된 예산을 보완해야 하는 사업체계 마련, 삭감된 예산 회복 방안 마련 등 시급한 일들이 쌓여 있지만 손 놓고 있는 실정이어서 십수 년 노력의 결과가 물거품이 될까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점차 만성화돼가고 있는 출연연 기관장 늑장 인선 관행 개선이 시급하다.

이번 출연연 공공기관 지정 해제 과정을 보면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이후 급물살을 탔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한 출연연 원장이 출연연을 공공기관에서 제외해 줄 것을 건의했고, 대통령이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대통령이 의장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사전에 준비된 자료를 기반으로 추인하는 절차만 진행하는 형식적 회의였지 현장에서 건의하고 토의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고 알려져 있다. 회의 현장에서의 건의 및 토의를 수용하는 자문회의는 바람직한 소통 문화로 매우 긍정적이지만, 그동안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불합리성에 대한 수많은 현장의 목소리를 도외시하다가 대통령의 주문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으니 출연연 관리 방안이 졸속으로 만들어질까 염려되는 것은 기우(杞憂)일까? 기획재정부로부터 출연연의 관리를 이관받게 되는 과기정통부는 연구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연구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출연연 관리·육성 시행령을 마련하여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 자율적 연구환경 조성에 힘써 주길 기대한다.

한편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가 출연연을 통폐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갑작스러운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가 과기정통부 차원에서 통폐합 추진 의도로 출연연을 법률적으로 구속받는 공공기관에서 제외한 사전 조치라는 의구심에서 출발한 의견이다.

현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출연연을 국가기술연구센터(NTC, National Technology Center)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NTC는 12개 국가전략기술처럼 국가적 임무 달성이 필요한 분야의 출연연 연구조직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출연연의 벽을 허물고 예산과 인력, 장비를 공동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정부는 앞으로 NTC를 위주로 출연금과 인건비, 인력 등을 지원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출연연을 NTC 중심 체제로 전환하여 국가전략기술 등 국가 임무의 전진기지로 육성하겠다는 취지의 융합·협력 연구를 위한 소프트웨적인 통합 체계로 이해되지만, 때마침 출연연 통폐합을 주장했던 분이 과학기술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었기에 출연연의 하드웨어적 통합을 위한 전초작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과학기술단체들은 국가 과학기술 분야 컨트롤타워 역할을 전담할 과학기술수석실 설치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지난 1월 25일 초대 과학기술수석비서관(이하 과기수석)이 임명되었다. 초대 과기수석은 연구자, 연구행정 종사자, 과학도 등 관계단체와 합심해 우리나라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를 선도형·강대국형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하기에 기대가 크다. 그러나 신임 과기수석은 2017년 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의 세미나에서 연구관리기관의 통폐합을 주제로 발표한 적이 있어 출연연 통폐합 추진 악몽을 되살리는 것이다.

출연연 중심의 국가기술연구센터 추진, 국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과기수석 임명, 출연연의 숙원이었던 공공기관 지정 해제 등 연이은 정책들이 오비이락(烏飛梨落)이 아니길 바란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 했다. 오이밭에서 신발 끈 고쳐 매지 말고, 자두나무(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시국이다. 정부는 어렵게 마련된 기회에 국가과학기술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불필요한 논쟁을 하루빨리 종식시키고, 과학기술계 모든 이들이 협력하여 한국 과학기술 생태계를 선도형·강대국형으로 혁신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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