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신구대 식물원 원장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얼마 전 ‘노량: 죽음의 바다’라는 제목의 영화를 관람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 해전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애(生涯) 마지막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 홍보를 접한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이 영화는 꼭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나 존경하는 분이기에 저절로 마음이 반응한 것 같다. 평소 영화관에 거의 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짬을 내어 영화관을 찾아 관람하였다.

영화 속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보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얼마 전 찾아다녔던 특별한 동백나무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우리 식물원에서는 온실에 동백나무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전시하고자 하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오래된 동백나무와 보존이 잘된 동백나무 숲을 조사하기로 하였다.

그중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이 이순신 장군의 신위(神位)를 모신 경상남도 통영(統營)에 있는 충렬사(忠烈祠)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장군의 모습이 나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에 영화를 보는 동안 충렬사에서 자라고 있는 오래된 동백나무가 떠올랐다. 

통영 충렬사의 400년 된 동백나무. 경상남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통영 충렬사의 400년 된 동백나무. 경상남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앞에서도 얘기한 대로 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신위를 모시는 곳으로, 1606년 선조의 명에 의해 건립됐으며 삼도수군통제영이 관리하던 사당이다. 1973년 사적 제236호로 지정된 충렬사는 보물, 유형문화재 등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중요한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들 지정 문화재와 함께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는 나무도 여러 종류가 자라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는 게 경상남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동백나무이다.

이 ‘충렬사 동백나무’는 나이를 400년 이상으로 추정할 정도로 아주 오래된 나무이다. 나이가 많다 보니 세월의 풍파에 겉모습은 많이 망가져 있다.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은 육체적으로는 다소 노쇠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그 기상(氣像)은 주위의 어떤 장군들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다. 장군의 모습처럼 충렬사 동백나무도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일부 가지가 부러지고 죽기도 하여 노쇠한 모습이지만, 그 푸르른 기상만은 잃지 않고 여전히 조금씩 생장하며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과 주변의 시기와 왕의 견제 속에 백의종군을 하면서도 기상을 잃지 않고 혁신과 성장을 통해 나라를 구했던 이순신 장군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동백나무의 꽃은 가장 화려할 때 통째로 뚝 떨어진다. 이순신 장군이 가장 큰 공을 세우던 인생의 절정에서 갑자기 생을 마감했던 것과도 너무나 닮아있다.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거제 외간리 동백나무. 나이 2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오래된 나무이지만 멋지게 균형 잡힌 모습을 유지하고 조금씩 생장하며 꽃을 피운다.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거제 외간리 동백나무. 나이 2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오래된 나무이지만 멋지게 균형 잡힌 모습을 유지하고 조금씩 생장하며 꽃을 피운다.

동백나무뿐만 아니라, 나무는 대부분 이순신 장군의 덕을 닮았다. 장군이 풍파 속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혁신과 성장을 계속하였듯이 나무도 나이와 상관없이 살아있는 동안 조금씩이나마 계속해서 생장한다. 이순신 장군이 삭탈관직(削奪官職)을 당하고 옥살이를 하는 시련을 거치면서도 다시 재기하여 나라를 구한 것처럼, 나무도 겨울 동안 잠시 멈추기도 하지만 일생을 보면 지속해서 생장한다. 이순신 장군이 급박한 전장에서도 ‘일기’를 씀으로써 자기성찰을 통해 성장을 지속했듯이, 나무도 겉으로 볼 때는 생장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내적으로는 생장을 준비한다. 결국, 나무는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생장하며 더 이상 생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입춘(立春)이 지났다. 나무도 사람도 움츠렸던 몸을 펼쳐 다시 생장과 성장을 준비할 때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성장을 이어가야 할까 생각해 본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거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떻게 정신이 성장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다. <다음 글은 2월 22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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