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 논설위원, (주)터치포굿 대표

박미현 논설위원
박미현 논설위원

2008년 업사이클을 주제로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을 때 현수막이 첫 번째 소재였던 이유는 우리가 회의를 하던 카페가 하필 대학로였기 때문이다. 가로등 사이사이마다 매달린 현수막들이 눈에 띄어 저건 누가 만들어서 어떻게 버려지는 것인지를 조사하다가 끝없이 쌓인 현수막 더미를 마주하고 뭐라도 하자고 다짐한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년이 흘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수막을 만져보았다고 자부하게 된 지금은 현수막도 그냥 다 같은 현수막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재질별로도 코팅이 된 것, 열처리가 된 것 등의 차이가 있지만 의외로 현수막은 원단 제작처가 많지 않아 대부분 비슷한 재질이다.

현수막에도 법적인 지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정 게시대에 걸리지 않은 대부분의 가로 현수막은 옥외광고물법상 불법 현수막일 가능성이 크다. 현수막을 업사이클하여 제품을 만들 경우 현수막에 있던 로고나 얼굴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는데, 불법 현수막은 사용 허가를 받을 수 없는 문제가 있어 일일이 제거해야 한다.

반대로 행사에서, 내 건물에서 사용한 합법 현수막이라면 오히려 남아있는 로고가 매력 포인트가 되어 로고를 살려서 만들어달라고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현수막 중 가장 센 놈은 사전 신고도 없이 지정 게시대가 아니어도 길거리에 걸 수 있는 뒷배 있는 현수막, 바로 정당 현수막이다. 행정안전부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은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 중 발췌.
         행정안전부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 중 발췌.

정당 현수막은 정책을 알리거나 정치적 현안을 표시해서 통상적 정당 활동을 보장받는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더라도 통과된 사업이라든가, 예산 책정 등 우리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 효과라 하겠다. 하지만, 정책 내용이 아닌 비방과 조롱만을 담은 정당 현수막이 걸려있을 때 인물 중심 정치의 우리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어지러운 정당 현수막. 가뜩이나 정치 때문에 피곤한 국민들을 괴롭히는 '낙서' 공해다. 정작 각성해야 할 것은 정치인들 자신 아닌가. 
어지러운 정당 현수막. 가뜩이나 정치 때문에 피곤한 국민들을 괴롭히는 '낙서' 공해다. 정작 각성해야 할 것은 정치인들 자신 아닌가. 

가장 황당한 것은 바로 지금 거리를 뒤덮은 정당 현수막이다. 명절 인사나 수험생을 위한 응원이 왜 정치적 현안이 되는 것인가? 사전 허가 없이 먼저 걸 수 있는 정당 현수막의 권리를 악용하는 사례이다. 정당 현수막을 이용해 이름과 얼굴을 가장 크기 인쇄하여 인지도를 높이는 것, 불법 사전 선거운동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필자가 찍은 명절인사 현수막. 정당의 정책이나 지역 현안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필자가 찍은 명절인사 현수막. 정당의 정책이나 지역 현안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정말 국민에게 감사하다면 현수막을 걸 시간과 비용으로 우리 지역의 현안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에 필요한 정책 마련에 힘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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