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논설위원, 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논설위원
허찬국 논설위원

지난달 하순 발표된 경제 속보치 추계에 따르면 미국은 2023년 2.5% 성장했다. 우리의 1.4%에 비하면 고속 주행이다. 일자리, 임금 등 노동시장 상황도 2년 가까이 양호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누가 봐도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데 미국 소비자들은 경제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아래의 소비자심리지수 그림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지수가 100이 넘으면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자가 부정적 응답자보다 더 많은 것을, 100 이하이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충격으로 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한 후 지지부진한 모습은 2023년에도 이어졌다. 이것만 보면 미국 경제는 불경기라도 겪는 듯하다. 미국이 겪고 있는 것은 소위 ‘바이브세션(Vibecession)’인데, 실제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일종의 느낌(Vibe)상 불경기(Recession)를 지칭하는 말이다. 2022년 한 분석가가 지어낸 신종 합성어가 최근 미국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심리지수(2017~2023년) 
    미국의 소비자심리지수(2017~2023년) 

이와 같이 양호한 경제와 소비자들의 평가가 어긋나는 상황이 전문가들에게는 희한한 호기심거리이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죽을 맛이다. 어떤 선거든 그렇지만 특히 대통령 중임제인 미국에서 재선에 나선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에 경제는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1992년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 H. W. 부시와 맞붙은 민주당 클린턴 후보 측이 내세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가 매우 주효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부시 정부의 다른 업적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8% 가까이 급등한 불경기임을 일깨우는 촌철살인의 구호에 힘입어 클린턴은 부시를 꺾고 당선되었다.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은 재선에 나서는 바이든 대통령을 무너뜨릴 결정적 한 방을 찾고 있다. 얼마 전까지 경제, 특히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그러한 호재다. 수십 년간 3%를 잘 넘지 않던 물가 상승세가 2021년부터 빨라졌다. 쉽게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팬데믹에 따른 국제 공급망 교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적인 요인이 작용한 탓이었지만 공화당 입장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바이든 탓이라고 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사실 그간 바이든과 트럼프 맞대결을 상정한 여러 여론조사에서 경제 분야는 트럼프가 더 잘할 거라는 응답자들이 많았다. 이런 막연한 기대는 무엇보다도 그가 TV쇼에서 성공한 사업가 역할을 했던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트럼프의 사업가로서의 진정한 수완은 뉴욕주 사법당국의 제소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회계부정 혐의 민사 재판에서 드러난 자산 부풀리기 또는 뻥치기가 아닐까 싶다.

인플레이션은 두 가지로 미국 소비자들이 경제를 보는 눈을 비관적으로 채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2022년 6월 전년 동월에 비해 9.1%나 올라 정점을 찍었는데, 이미 팬데믹으로 불안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뜬금없이 물가가 치솟자 소비자들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우리나라에서 물가 하면 감초처럼 언급되는 라면이나 짜장면처럼 미국에서는 휘발유 가격이 가장 흔히 언급된다. 차가 많고 운전을 많이 하는 곳이어서 체감도가 상당히 높아서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재임 기간에 배럴 당 2달러 미만이던 것이 바이든 때문에 5달러를 넘어섰다고 떠벌였다. 이 수치는 트럼프 기간 최저가, 바이든 기간 최고가로 평균치가 아니지만 약 두 배 정도 기름값이 올랐으니 ‘악’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두 번째, 2021년부터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번지기 시작하자 이를 잡기 위해 공격적 금리 인상이 필요하고, 이로 인해 불경기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경제학자들 사이에 지배적이었다. 이때 인플레이션이 단기적 현상이라는 시각을 펼친 크루그먼 교수와 같은 소수 의견도 있었으나 보통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고금리와 불경기가 따른다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의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 중앙은행 연지준이 연이어 금리를 올리자, 언제 불경기에 진입하나 모두 숨죽여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경제학과 거리가 먼 소비자들도 계속되는 언론 보도에 조만간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불경기가 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물가가 빠르게 안정되기 시작했고, 각종 실물 경제 지표들이 양호한 모습을 이어갔다. 흥미로운 것은 지지부진한 소비자심리지수와 달리 개인이나 가계의 재무 사정을 알아보는 조사는 “사정이 좋다”라는 응답자가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게 나왔다는 것이다. 일자리 사정이 좋아졌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심리지수 개선이 매우 더딘 것이다. 그런데 근래 주식 시장의 고점 갱신이 이어지고 성장률, 고용 상황 각종 실물경제지표와 물가 안정세가 더 확실해지면서 점차 소비자기대지수도 오르기 시작했다. 미국이 바이브세션에서 빠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을 공격할 대선 호재가 모래시계 속 빠지는 모래처럼 사라지고 있으니 공화당은 이런 미국 경제 상황 전개가 반갑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91개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의 재판이 시작되고, 만약 유죄판결이 나오면 중도층이 대거 돌아서며 트럼프가 크게 불리해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여간 미국 경제 상황은 더 이상 바이든 후보의 악재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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