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집권 2기 3년차를 맞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46)이 국정 쇄신의 일환으로 34세인 가브리엘 아탈 교육부 장관을 새해 벽두에 총리로 임명하는 등 개각을 단행하고 “국가의 시민적, 경제적 재무장”을 국정 과제로 선포했다.

    40대 대통령에 30대 최연소 총리

아탈은 이번 인사로 1984년 37세에 총리가 된 로랑 파비우스의 기록을 깨고 프랑스 제5공화국 최연소 총리가 됐다. 39세였던 2017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은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의 최연소 지도자이다. 아탈 총리가 이끄는 프랑스 내각의 평균 연령은 46세로, 제5공화국의 가장 젊은 내각이다. 프랑스 정부는 지금 젊은 X, Y세대가 이끌어 가고 있다. 1958년 드골의 주도하에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를 혼합한 이원집정부제로 출범한 프랑스 제5공화국에서 총리는 ‘정부 수반’(chef de gouvernement)으로서 헌법상 권한과 위상을 누린다.

아탈 총리는 다소 제왕적인 마크롱 대통령과는 달리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스타일이다. 전면에 나서기보다 막후에서 일을 추진하던 전임 엘리자베스 보른(62, 여) 총리와는 달리 아탈은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터진 농민 시위 현장에 뛰어들어 소방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최초의 공개 동성애자 총리이다. 프랑스는 서구 국가 중에서도 성소수자(LGBT) 권익 보호에 앞장서 온 나라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엘리제궁에서 200여 명의 내외신 기자를 초청해 연두 기자회견을 했다. TV 프라임 타임인 저녁 8시 15분에 시작된 이 회견은 프랑스 전역에 생중계되고 유튜브로도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지난해는 마크롱과 프랑스 정부에 어려운 한 해였다.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금개혁을 강행하여 극렬한 반발 시위가 이어졌다. 또 지난해 6월에는 알제리계 10대 청소년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해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 연달아 폭동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극우의 지지를 받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민법을 통과시켰으나 헌법평의회(헌법재판소) 심의 과정에서 일부 조항이 삭제되었다.

     신념과 균형 갖춘 마크롱 연두회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6년 반 동안 프랑스의 개혁을 이끌어 온 마크롱 대통령은 장장 2시간 20분간 계속된 이날 회견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화두로 모두발언을 하면서 “우리는 성공에 필요한 모든 호재를 갖추고 있으며 우리의 후손은 우리보다 더 잘살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임 기간 중 200만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며 300개의 공장이 신설되고 프랑스 산업의 탈탄소화를 이루었다고 밝혔다. 그의 국정 전반을 꿰뚫는 식견과 거침없는 답변은 기자회견장을 압도했다.

그는 “프랑스가 프랑스로 남아있기 위해” 공화국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시민의식 재무장(réarmement civique)”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번 가을 학기부터 공립 중학교의 공민 교육 시간을 두 배로 늘려 매주 1시간씩 프랑스 공화국의 역사와 시민의 의무와 권리 등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그는 또 초등학교에서 프랑스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가르치는 것을 지지한다고도 했다. 프랑스의 영웅인 잔다르크와 나폴레옹의 재조명에 앞장서 온 마크롱은 질서와 권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7월에 파리올림픽이 개최되고 화재로 훼손된 노트르담 성당이 복원되는 2024년은 프랑스인들의 국민적 자긍심이 고조되는 해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계층 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교복 착용을 자원한 100개 공립학교에서 시범 실시해 그 결과가 좋으면 2026년에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또 프랑스 아동과 청소년들을 유해한 내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전문가 자문을 통해 TV와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하겠다고 했다.

경제 정책 관련 마크롱 대통령은 중산층의 구매력 강화를 위해 2025년에는 세금을 20억 유로 감세하겠다고 약속했다. 마크롱은 이어 “프랑스는 출산율을 되살려야 더 강해진다”며 “새롭고 더 좋은 유급 육아휴직 제도를 통해 부모가 원할 경우 6개월 동안 자녀와 함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프랑스 국민들은 16주의 출산휴가 후 최대 3년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프랑스는 유럽의 대표적인 다산 국가였지만 지난해 출산율이 2차대전 이후 최저치로 떨어져 1.68명까지 감소했다. 그러나 마크롱의 ‘인구 재무장’ 정책에 대해 프랑스 여성 인권 단체인 ‘여성 재단’은 “우리들의 자궁을 간섭하지 말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마크롱은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이민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점점 극우화되는 유럽사회에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극우 포퓰리스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을 거짓말을 일삼는 정당이라고 맹비난했다. 유럽 의회 선거 관련 여론 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연합보다 10%포인트 앞서고 있는 ‘국민연합’은 자유무역과 세계화 그리고 유럽 통합에 반대한다. 이에 대해 친(親)EU인 마크롱은 국민연합이 추구하는 것은 ‘집단 빈곤화’정책이라고 공격했다.

     유럽 안보 앞장서 이끄는 나라로

마크롱은 프랑스의 가장 큰 외부 위협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라고 말하고, 러시아가 승리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고 했다. 그럴 경우 러시아의 인접 국가들은 물론 유럽의 안보는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대선과 트럼프 당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마크롱은 “미국 민주주의는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짤막하게 논평한 후 그러나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는 누구든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우선순위는 미국 자신이며 그다음은 ‘중국 문제’라고 진단한 후 유럽은 다른 세력에 의존하지 않는 더욱 강하고 주권적인 제 3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재천명했다. 마크롱은 앙겔라 메르켈 퇴임 후 EU의 선임 지도자이다.

한편 르몽드지는 마크롱 회견에 관한 사설에서 ‘명백한 우경화’지만 유럽 통합에 대한 지지나 불평등 해소에 대한 의지를 보인 점은 균형을 갖추고 있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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