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2007년 12월 7일 서해 태안 앞바다에서 14만6848톤 급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소속 1만1828톤 급 크레인 부선(艀船) ‘삼성 1호’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유조선에 실려 있던 원유 1만 2547㎘가 바다로 쏟아졌다. 오염된 곳은 여의도 면적의 120배에 달했다. 국내 최대 해양 오염사고로, 당시 전문가들은 생태계 복원에 최소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극복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백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과 지역민들이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사투, 자원봉사자들의 봉사 행렬은 우리의 기대와 예상을 훨씬 상회했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태안 앞바다의 검은 기름은 완전히 걷혀 푸르른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다. 필자도 두 차례 태안 앞바다에 가서 기름을 닦았다. 피해 지역민들을 돕는다고 지역 특산 육쪽마늘을 사서 이웃과 나눴던 기억이 새롭다.

    바다는 살아났지만 보상비에 지역 오염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바다의 아픔은 많이 치유됐지만, 아직까지 태안 지역민들의 가슴속 응어리는 단단하게 맺혀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쌓아 놓고도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는 지역발전기금의 답보 상태를 수년간 지켜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2018년 ‘허베이 사회적협동조합’은 사고 원인의 한 축이었던 삼성중공업이 출연한 기금 2024억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배분받았다. 지역민들은 조합의 바람직한 기금 집행으로 자치적인 지역사회의 재생을 기대했다. 하지만 주위의 염원과는 달리 허베이조합은 끊임없는 파행을 거듭하며 파열음을 빚었다. 결국 지난달 28일 기금을 배분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 측에서 배분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 기금 환수에 나섰다.

허베이조합은 사업비용보다 일반관리비용을 더 많이 지출하는 기형적 운영을 지속해왔다. 2020년 결산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 한 해 동안 임직원 급여만 12억 1234만 원을 지급하면서 당해 사업비 지출은 400만 원이 고작이었다. 2021년과 2022년 사업비용의 경우 어장환경 복원비, 바지락 종패 사업비 등 목적 사업의 비용을 늘렸지만, 이마저도 관리비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 그쳤다. 2028년까지 2024억 원을 쓰겠다며 해수부와 모금회에 제출한 자금 집행계획서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목적사업의 집행비가 절대적으로 낮은 것도 문제지만, 사업의 불투명함이 가장 큰 문제이다. 불량 바지락 종패가 살포되고 있다는 의혹, 배분사업 계약서를 위반한 기금 지원, 지역 선정에 관련한 공정성 문제 등 수산 종자 방류 지원 사업 한 건만 가지고 보아도 사업 추진 과정에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허베이조합의 사실상 유일 관리 감독기관인 해양수산부의 관리 감독에 대한 지적 역시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해 6월에 열린 허베이사업 정상화 토론회에서 해수부 관계자는 “관리 감독의 한계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해수부는 피해민들이 해양수산부 청사에 찾아가 규탄대회를 열며 집단행동에 나서자 그제야 조합에 대한 감사에 나섰다. 무엇보다 협동조합기본법을 어기며 목적사업을 전혀 하지 않았던 2019~2020년 시기의 해수부 역할에 대한 물음이 남는다.

물론, 감독관청의 개입이 어려운 협동조합기본법의 허점은 고민해 볼 만하다. 사업을 초기에 정상화하기 위한 장치들, 즉 임원의 직무정지나 과태료 부과 등의 감독 수단을 시행할 수 없어 조합의 그릇된 운영에 대한 즉각적인 제재를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소생의 기적을 투명성으로 살려나가자

허베이조합이 공동모금회에 제출한 사업계획서 역시 10년간 2024억 원의 기금을 배분받는 보고서라고 보기엔 너무 부실했다. 공동모금회의 배분 기준에 운용 기관의 투명성에 대한 조사가 사전에 진행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울러 기금을 출연한 삼성중공업 측도 자사가 낸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법인의 지출로 받은 세제 혜택은 결국 투명성이 확보돼야 정당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허베이조합은 주무관청의 관리 감독 부재, 부실하고 불투명한 사업 계획과 이를 따져보지 않은 채 이루어진 기금 배분, 무엇보다도 조합 내부의 방만한 운영으로 존재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늦었지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기금 회수 결정을 통해 제대로 된 목적을 위한 기금 사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16년 전 태안반도에서 우리는 기적을 만났다. 재난을 당한 이웃에 쏟아진 온 국민의 격려와 참여로 태안군민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 기적만 바라고 있을 수는 없다. 기적의 원동력을 투명성으로 제도화해 기적이 일상이 되는 깨끗한 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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