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1970년생 90학번 조카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다. 조카는 강남에서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재수해서 운동권이 제법 강세라는 대학에 들어갔다. 입학하자마자 선배들로부터 짱돌 들고 시위에 나가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우리가 왜 지금 시위에 나가야 합니까?” 하고 반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후 운동권 선배들에게는 찍혔지만 졸업할 때까지 동료들한테는 인정을, 후배들로부터는 존중을 받았다고 했다.

조카 이야기론 90학번부터는 솔직히 데모의 필요성을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는데, 1987년의 영광을 체험한 후 입대했다 복학한 88, 89학번 선배의 ‘영웅의식’(?)으로 인해, 학과에는 늘 불편한 긴장과 과도한 갈등 기류가 흘렀다고 한다.

조카 이야기를 듣고 나니, 1973년생 92학번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386 운동권 퇴치를 들고 나온 상황이 조금은 수긍이 되었다. 쌍둥이도 세대차를 느낀다는 한국사회이고 보니, 개인을 이해할 때 청소년기 예민한 시절의 세대 정서에 주목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결국 개인은 시대의 산물이라는 사실에서 누구도 예외는 없을 테니까.

1970년대 생이라면 한국에서는 X세대다. 브라보(Bravo) 세대라는 멋진 이름을 부여받았던 1980년대 생과 Z세대의 주인공 1990년대 생, 이들의 선배격인 X세대의 특징은 ‘오렌지족’이라는 별칭에 농축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X세대라는 이름은, 앞선 세대인 베이비부머가 볼 때 제멋대로인 데다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도대체 이놈들 누구야?”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는 설(說)이 있다.

한국의 X세대 또한 베이비부머나 386운동권 세대와 구별되는 독특한 정서를 다수 보이고 있다. 한 비대위원장은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중고등학교 시절을 강남에서 보냈다는데, 1980년대 초반이면 중앙일보 인명록에 이름을 올린 한국의 유명인사 대부분의 집 주소가 강북에서 강남으로 바뀐 시기다. 강남 개발이 본격화된 시기, 1980년대 군사정권의 혹독한 정치 환경 속에서도 경제적으로는 유례없는 호황과 고도성장을 기록했던 시기,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해외여행 자유화에 수입 자유화에 세계화의 물꼬를 타고 본격적인 소비사회로 진입하던 바로 그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음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고리가 될 것 같다.

한국의 X세대는 결혼 및 출산을 둘러싼 생애주기에서도 변화의 선봉에 서 있다. 대체로 1960년대 생까지는 누구나 비슷한 유형의 표준화된 생애주기를 지나온 반면, 1970년대 생부터는 탈표준화된 생애주기를 지나가는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매사 관행이나 선례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는 데다, 혼전관계에 허용적이면서 관대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이들 세대부터다. 상품 브랜드에 민감해지고, 소비 스타일을 통해 ‘나는 누구인지’ 정체성을 보여주는 방식에도 달인이 되어 가는 세대로, 이들이 20대를 지나던 1990년대 이후로 유통이 생산을 압도하고 전국에 대형 마트가 보급되기 시작했음은 상식이다.

이런 경험들이 대한민국을 향한 자부심으로 연결된 것 같다. 2010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대학에 입학한 90년대 생의 경우,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일본의 토요타보다 더 좋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82학번 교수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설전을 벌였다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민주화 지분을 강조했던 세대가 산업화 세대의 공적을 폄하하는 데 주력해온 반면, X세대로 오면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치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세대 정서가 등장한 것 아니겠는지.

이 대목에서 나 역시 부끄러워지는데, 1977년 대학 입학 후 읽은 책이 바로 그 유명한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1974년 초판본은 금서)였고, 최근 어설픈 중국몽을 담고 있다는 혹평을 받은 바 있는 ‘8億人과의 對話: 현지에서 본 중국대륙’(리영희, 1977)이었으며, “이승만이 가는 곳엔 분열이 있었다”고 주장한 ‘서재필과 이승만’(송건호, 1980)이었다. 요즘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두고 공과(功過)를 냉정하게 평가해보자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음은, 오히려 두 대통령의 과실(過失)을 집중적으로 강조해온 민주화세대 덕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사회학자 Z. 바우만(Zygmunt Bauman, 1925~2017)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은 큰 구조에서 작은 이야기로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 중이다. 국가와 민족이 중요하고 명분을 위해서는 목숨도 걸 수 있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살가운 내 삶의 스토리가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명분보다 실리가 우선순위로 떠올랐다. 한 인물의 화려한 개인기를 넘어 세대 정서 속에 혜안이 돋보이는 시대정신을 현명하게 녹여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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