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미국 대선 후보 경선 2라운드에서 결코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23일 뉴햄프셔에서 실시된 대선 후보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서 공화당의 트럼프가 54.3%를 득표하여 2위 후보인 니키 헤일리(43.3%)를 제치고 10% 이상의 차이로 승리했다. 지난 5일의 첫 경선인 아이오와 당원대회(코커스)에서 승리한 트럼프가 연속으로 50% 이상의 득표로 승리함에 따라 본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비록 헤일리가 계속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완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경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지만, 유권자가 직접 이름을 적는 수기 투표에서 50% 이상을 득표하여 승리하였다. 이로써 이번 11월 대선은 2020년에 이어 바이든 대 트럼프의 재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바이든-트럼프의 리턴매치로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과 결과는 미국 정치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첫째, 극단의 정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헤일리는 트럼프의 과격한 이민 정책이나 대중 정책에 맞서 중도 성향의 정책으로 차별화를 시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뉴햄프셔는 전통적으로 중도층이 많고, 온건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헤일리는 트럼프를 추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11% 차이로 패배함으로써 후보 사퇴 압력에 시달리게 되었다. 헤일리의 온건노선과 캠페인 스타일은 과거보다 더욱 공세적이고 자극적인 트럼프의 캠페인과 대조를 이루었다.

트럼프는 선거 캠페인에서 주로 저임금 저숙련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당과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연일 불법 이민과 국경문제를 거론하며 미국인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삶이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트럼피(트럼프 지지자)들은 “공산주의자가 운영하는 언론과 사악한 괴물 민주당을 물리치고 미국을 구해야 한다.”고 호응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상대방을 서로 악마로 만들어 극단적인 대결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둘째, 미국 대선이 ‘쩐의 전쟁’이 되어 버렸다.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후보들이 아이오와에서 이미 광고비로 1억 달러(약 1300억 원)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경선과 본선에서 주요 후보들이 수십억 달러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비영리 정치단체 책임정치센터(CRP)에 의하면 2020년 미 대선에서 양대 후보가 사용한 비용이 적어도 66억 달러(8조 5800억 원)로 추산됐다. 이는 4년 전의 23억 달러(2조 9900억 원)에 비해 약 3배가 증가한 것이다.

이런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는 배경에는 정치자금 기부액 상한선이 없는 슈퍼 팩(Super PAC, Political Action Committee)이 있다. 2010년 연방대법원이 “특정 후보자와 협의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정치광고에 필요한 기부액 상한액은 없다“고 판결함으로써 슈퍼 팩의 무제한 모금이 가능해졌다.

이후 독립적으로 정치광고를 하는 슈퍼 팩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트럼프를 지지하는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가 대표적인 슈퍼 팩이다. 슈퍼 팩은 해당 후보와 별개로 운영돼야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한 몸처럼 움직인다. 트럼프도 마가 모금 행사에 참석하였다. 이렇게 돈이 좌우하는 선거일수록 돈을 내는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이 국가정책에 반영될 것이다. 후보가 선거 캠페인에서는 일반 유권자들을 위해 일할 것처럼 얘기하지만 집권하게 되면 돈을 기부한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쩐의 전쟁’ 속에 민주주의 갈림길

셋째, 미국 민주주의가 유지되느냐, 퇴보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만약 본선에서 바이든이 당선되면 민주주의 규범과 제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 민주주의는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미 트럼프는 반민주적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해 왔다.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고,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을 묵인하였으며, 더구나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모의한 혐의를 비롯하여 91개 죄목으로 네 차례 형사범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이를 ‘정치적 탄압’이라고 포장하여 지지자를 결속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번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경선 후 실시된 출구조사에서 유권자의 과반 이상이 트럼프가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대통령직에 적합하다고 답했다. 따라서 그가 대선 전에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본다. 만약 그가 본선에서 당선되면 자신을 기소했던 사람들에게 정치적 보복을 가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미국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넷째, 이번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의 대외정책 기조는 바이든과 극명하게 달랐다. 전자는 공공연하게 미국이 세계 경찰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아니라 동맹국이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존 동맹관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고자 한다. 미국 안보의 근간인 나토의 목적과 임무를 근본적으로 재평가할 것을 약속했다. 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비용을 유럽 국가들에게 청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이러한 거래 중심적 동맹관은 바이든의 가치 중심적 동맹관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후자는 한미일 협력을 비롯해서 소다자주의를 선호하지만, 전자는 양자관계를 중시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정상회담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경우 집권 1기 때에는 참모들의 의견을 들었지만 재선되면 자신의 소신에 따라 대외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 미국 대외정책을 미리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한미동맹을 비롯하여 한반도 정세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의 총선에 못지않게 미국 대선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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