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심의실장

정숭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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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돌아가는 형국을 보노라면 우리가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구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못가에 떼 지어 살다가 자기들이 그렇게 원했던 왕에게 잡아먹혔다던 개구리들 말입니다. 이솝우화에는 이렇게 나오지요.

갈대 우거진 연못가에서 맨날 독창 합창 떼창을 하다가 지치면 물속에 풍덩 뛰어들면서 평화롭지만 무료한 삶을 살던 개구리들은 마침내 어느 날 신(제우스)에게 “신이시여, 우리에게도 왕을 보내주소서. 우리끼리는 이제 심심해서 미치겠나이다. 폼나고 멋진 왕을 보내셔서 우리를 다스리게 해주소서, 제발 왕을 보내주소서”라고 빕니다. 제우스는 왕 없이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를 모르는 그들이 어리석고 어리석다고 생각했으나, 워낙 시끄럽게 빌어대자 큰 통나무 한 토막을 내려보내지요.

개구리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통나무 왕을 처음에는 좋아했으나 자기들을 폼나게 다스리고 가르치기는커녕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 멍청이라는 걸 알고는 그 위에 올라가 제우스에게 정말로 폼나고 멋진 왕을 보내달라고 전보다 더 큰소리로 빕니다.

황새왕이 개구리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있다. (미 의회도서관 소장 이솝우화집 삽화.)
황새왕이 개구리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있다. (미 의회도서관 소장 이솝우화집 삽화.)

제우스는 이번에는 황새를 보냅니다. 개구리들은 날 때는 우아하고 서 있을 때는 늠름한 황새가 자기들이 기다리던 왕이라며 펄떡펄떡 뛰며 좋아했지만 새로운 왕은 연못에 내리자마자 왼쪽 오른쪽 앞뒤 물속 물 밖 가리지 않고 눈에 띄는 대로 개구리를 잡아먹었습니다. 개구리들은 그때야 왕을 보내달라고 한 자기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후회 한탄하더라는 겁니다.

이솝은 이거 말고도 개구리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많이 남겼는데요, 대체로 어리석거나 불쌍한 개구리들입니다. 애들이 재미로,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맞아 죽게 되자 얘들아, 너네는 재미로 그러는 거겠지만 우리는 목숨이 달려 있단 말이야 제발 그만 던지라고 애원하는 개구리가 있는가 하면, 연못에 물 마시러 온 황소가 얼마나 컸던지를 아들 개구리에게 알려주려고 숨을 여러 번 들이쉬며 몸집을 키우다가 뻥 터져 죽은 아비 개구리도 있지요.

물가에 나온 생쥐가 싫다는데도 연못 구경시켜준다며 갈대 줄기로 자기 다리에 묶어 헤엄치다가 부근 하늘을 날던 매가 쏜살처럼 생쥐를 낚아채는 바람에 자기까지 매에게 잡아먹힌 개구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일 어리석고 불쌍한 개구리는 이솝우화가 아니라 우리나라 동화책에 있습니다. 엄마 평생 말 안 듣고 반대로만 하던 청개구리 말입니다. 이 개구리는 엄마가 속병 들어 죽기 직전에야 모든 걸 반대로 한 그동안의 불효를 뉘우치며 처음으로 엄마 말을 들었는데 엄마를 산에 안 묻고 냇가에 묻은 거지요. 나 죽으면 산에 묻지 말고 냇가에 묻어달라는 엄마의 유언을 따른 개구리는 비가 내리면 냇가에 묻은 엄마가 떠내려갈까 봐 더 크게 운다는 거지요. 이거 읽고도 엄마 말 안 듣기 일쑤였던 나는 청개구리보다 못한 존재이겠지만….

어리석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솝우화에는 오랜 가뭄에 바짝 마른 연못을 떠나 살 곳을 새로 찾아 나선 개구리가 물이 고여 있는 깊은 우물을 보고는 무조건 뛰어들려는 걸 뜯어말린 현명한 개구리도 나옵니다. 이 개구리는 천방지축 친구 개구리에게 물 많고 맑은 데 들어가는 건 좋은데 나올 때는 어떻게 하려느냐, 저 깊은 곳에서 우리가 나올 수 있겠냐고 말렸다는 겁니다.

냄비 혹은 가마솥에 들어간 개구리들 이야기도 불쌍합니다. 물이 들어 있는 가마솥에 개구리를 넣고 불을 지피면 개구리는 물이 뜨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슬그머니 익어 죽는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개구리는 얼어서도 죽습니다. 얼어 죽은 개구리는 실제로 자주 목격되기도 합니다. 일제 때 교육자이면서 또 기독교 정신을 지키고 알리는 데 힘쓰다 돌아가신 김교신(金敎臣, 1901~1945) 선생은 개구리를 애도함이라는 뜻인 ‘조와(弔蛙)’라는 제목의 수필에 얼어 죽은 개구리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매일 다니는 산길 모퉁이 연못에 개구리가 있는 걸 봤는데 가을 겨울 지나고 봄이 와 녹은 얼음 아래 떠다니는 개구리 시체를 거둬 매장하고 얼마 뒤 다시 가보니 몇 마리는 여전히 살아있더라는 내용입니다. 김 선생은 이 수필을 ‘성서조선’이라는 자신이 제작 보급하던 간행물 1942년 3월호에 실었습니다.

“짐작건대, 지난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작은 담수(潭水, 연못 물)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 연못 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이 수필이 나간 직후 일경에 끌려간 김 선생은 옥고를 모질게 치르다가 해방 직전에 옥사했습니다. 일경은 “혹한에 다 죽은 줄 알았더니 밑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가 살아있구나, 전멸은 면했나 보다”라는 놀라움과 희망 담은 끝줄이 일제 패망, 조선 독립을 뜻한다고 보고 선생을 끌고 가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지요.

러시아 우화에는 개구리에게 “연못을 건너가고 싶은데 나 좀 업어줄 수 있겠니?”라고 부탁하는 전갈이 나옵니다. 업어주고는 싶지만 독침으로 찌를까 봐 무서워서 안 되겠다고 하는 개구리를 전갈은 내가 왜 그러겠니라고 설득해서 물을 건너는데, 물 가운데에 이르자 느닷없이 독이 든 꼬리로 개구리를 찔러 죽입니다. 죽어가면서 너 나 안 찌른다고 하고는 왜 이렇게 악독한 짓을 하느냐고 묻는 개구리에게 전갈은 나도 모르겠어 그냥 찔러보고 싶었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우화 끝에는 세상에는 어떻게 해도 악한 성질을 못 고치는 무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이야기라는 설명이 붙어 있더군요.

다시 덮친 혹한에 잠깐 풀렸던 물과 땅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이번 추위에도 개구리 몇 마리가 더 얼어 죽겠지요. 그래도 전멸은 면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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