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일주일간 베트남 호찌민에 다녀왔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탐방하는 여행이었는데 호찌민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오느라 며칠을 더 묵었다. 한류와 박항서 감독 덕분에 한국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인식이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월남전의 상처로 인한 적대감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반감은 크지 않다고 한다.

‘가족’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의 성공 사례보다 ‘한베가족’의 삶이 더 궁금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질문을 퍼부었다. 한베가족이란 여행이나 유학, 직장 일이나 사업차 베트남에 갔다가 베트남 사람과 결혼하여 가족을 이룬 사람들로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 여성 커플이 절대적으로 많다.

베트남에 사는 한베가족은 한국에 사는 다문화가족보다 만족도가 높다. 우리나라 수출 3위 국인 베트남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남아 있고 가족애가 남다르며 생활력이 뛰어난 베트남 여성을 선호하는 한국 남성이 늘어났다. 시차도 2시간밖에 안 되는 데다 한국 식품이나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코리아타운 부근에 사는 사람은 여기가 해외인지 구별이 안 된다고 했다.

모국어를 쓰고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베트남 아내도 한국에 사는 다문화가족의 아내들보다 발언권이 센 편이다. 아이들도 편견과 차별, 남다른 시선에 시달리는 일이 적어 한국에서 살 생각은 별로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베가족의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한국적인 것에 대한 우월감으로 한국식 생활 방식을 요구하며 자녀 양육에 동참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속상해하는 아내가 많다. 대부분 한국 학교에 보내지만,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학교에서 알려 주지 않으면 한국말을 잘 모르는 엄마는 알 수가 없다. 한국 엄마들과의 모임에도 끼기가 쉽지 않고 은근히 ‘한베’라고 편 가르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남편과 이혼하거나 사별한 한부모가족은 경제적인 문제로 시달린다.

“무엇이 부족해서 베트남 여자와 결혼하느냐?”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택했지만, 의사소통 문제나 처가를 위한 경제적 지원 문제, 잘사는 나라에서 온 사위에 대한 기대, '빨리빨리'와 느릿느릿한 문화의 차이, 농산물이나 과일이 풍부하고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저축보다는 있으면 쓰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는 가치관 때문에, 그리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자식 노릇을 제대로 못 한다는 자책감 등으로 고민하는 남편이 많다.

베트남 아내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둔, 수출 지원 컨설팅 회사의 이종혁 대표 말에 의하면 충분한 교제를 통해 연애결혼으로 가정을 이루고 만족스럽게 사는 한베가족도 많다고 한다. 양성평등을 추구하고 성 역할에 대한 개방성과 다양한 문화에 대한 수용성까지 갖춘, 책임감 있는 한국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베트남 여성도 적지 않다. 빈부 격차가 심하지만, 베트남 인구가 1억 명에 가깝다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부유한 사람도 많아서 남편보다 학력이 높고 재력이 있는 집안의 여성과 결혼한 경우는 데릴사위처럼 사는 가족도 있다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2022년 6월 발표한 ‘2021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다문화가구는 34만 6017가구로 15년 이상 거주자가 39.9%, 청소년기 자녀 비중이 43.9%라고 한다. 다문화 혼인은 2022년 1만7428건으로 전체 혼인 건수의 9.1%, 다문화 이혼은 7853건으로 전체 이혼 건수의 8.4%에 이르며 다문화 출생은 2022년 1만2526명으로 전체 출생(24만 9000명) 건수의 5.0%로 집계됐다.

2023년 5월에 발표한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 남자와 외국 여자와의 혼인은 1만2007건이고 한국 여자와 외국 남자와의 혼인은 4659건이다. 외국 여성의 국적을 살펴보면 베트남, 중국, 태국 순으로 많고 그 뒤를 일본과 미국, 필리핀, 러시아가 잇고 있지만 외국 남성의 국적은 미국, 중국, 베트남, 캐나다, 영국, 일본 순이다. 최근에는 결혼 이민이 아니라 난민 등 귀화자들로 구성된 다문화가족도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 결혼 중매업소의 소개로, 사랑하고 교제하는 과정도 없이 며칠 만에 돈과 성을 맞바꾸는 거래처럼 이루어진 결혼도 많았지만, 그사이 많은 변화가 있어서 차별 경험도 감소하고(2018년 30.9%→2021년 16.3%) 부부관계 만족도도 높아지고 대화 시간도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열~스무 살 가까운 나이 차이에 고국과 가족을 떠나 낯선 언어와 기후, 음식 때문에 외로움과 소외감에 시달리는 배우자의 고통을 모르는 한국 남편이 많다.

이제까지의 다문화가족 연구는 결혼이민 여성을 중심으로 그들의 국적과 연령을 구분하지 않고 ‘다문화가족’이라는 동일 집단으로 묶어서 접근하는 식이었다. 국적에 따라서도 갈등과 불화의 원인이 다르지만, 부부간 나이 차가 많이 나면 단순한 연령차가 아니라 세대까지 달라져 갈등과 오해가 더욱 깊어진다. 이러다 보니 부부간의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인지, 세대차로 빚어지는 문제인지가 불명확하다. 그리고 비교할 만한 마땅한 대상 집단도 없어서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 좀 더 다양하고 정교한 연구 방법으로 그들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절벽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도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과 대책을 더 적극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의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를 통하여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과 제도가 크게 개선되었지만, 다문화가족 1세대가 아니라 그 자녀들로 구성된 다문화가족 2세대가 취업하고 결혼하는 시점이면 더욱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결혼이민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적응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언어나 문화를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배우고, 자녀들에게도 부모의 모국어나 문화에 대해서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의 첨병과 가교 구실을 해내도록 역량을 키워나가야겠다.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이 결혼하거나 대도시에 살던 사람과 농어촌이나 산골에 사는 사람이 결혼해도 다문화가족이요 다른 가족문화와 성장 과정에서 자란 두 남녀가 결혼하여 이룬 가족 모두가 어찌 보면 다 다문화가족이다. 그리고 가족의 한 형태인 다문화가족뿐만 아니라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입양가족, 조손가족 등 전통적인 가족 형태와 다른 모든 가족을 다 품어줄 수 있는 제도와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복도에서 만날 때마다 허리 숙여 공손하게 인사하던 베트남 직원과 눈만 마주쳐도 생글생글 웃어주던 베트남 사람들의 선한 눈매가 그립다. 한베가족들, 그리고 한국에 사는 모든 다문화가족이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침 식사로 빵과 과일에 우유 한 잔을 마시면서 조용히 마음속으로 외쳤다.

“한베가족을 위하여!”

“이 땅에 있는 모든 다문화가족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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