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이석구 언론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민주주의는 돌아온다. 그때 보복하지 말고 관용을 베풀라”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단죄했으나 김대중 후임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이들을 사면하고 청와대를 떠났다. 둘은 앙숙이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한미자유무역 협정, 이라크 파병, 제주 강정해군기지 건설을 단행했다. 모두 개인의 정치적 이익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위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이런 통 큰 정치를 볼 수 없다. 우리 정치에서 상대는 악이다.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상대방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용서와 화해는 정치인들에게서 사라진 언어다. 막말과 증오, 조롱만 난무한다. 품격 있는 언행은 정치에서 찾기 힘들다. 정치인들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긴다. 언론도 진영으로 나뉘어 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북한의 핵 위협, 미중 갈등, 저출산, 인플레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정쟁에 여념이 없다. 그 중심에 국정을 책임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정치지도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문제’에 침묵으로 일관, 정쟁 유발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로 인해 정치권은 연일 공방을 벌이며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은 진솔한 사과로 국민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물론 부인이 창피를 당하고, 야당의 정치 공세로 정국이 시끄럽겠지만 이는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업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들을 감옥에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그들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랬겠는가.

이재명 대표는 지난 17일 복귀 후 주재한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상대를 제거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내가 모든 것을 다 가지겠다는 생각 때문에 정치가 전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살자고 하는 일이고, 또 살리자고 하는 일인데 정치가 오히려 죽음의 장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정치현실을 개탄하는 발언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기반성이 없는 유체이탈식 화법이다. 따라서 울림이 없다. 우리 정치가 이처럼 된 것은 정치인들 때문이고, 그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은 외면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법으로도 죽여 보고, 펜으로도 죽여 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며 정부여당을 공격했다. 이는 테러사건의 배후에 현 정부여당이 있음을 시사하는 말로 지지자들에게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 발언이다. 만일 이 대표가 당무 복귀 첫 메시지로 용서와 화해, 정쟁 중단을 호소했다면 어땠을까. 나아가 김건희 특검을 철회하고, 이번 총선에서 여당과 민생을 위한 정책 대결을 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면 중도층의 마음이 어디로 움직일까. 아마 그에 대한 지지율 상승은 물론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정치 꼬라지가 하도 안타까워서 해본 생각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은 한때 촉망받는 젊은 정치인으로 기대를 모았다. 재치 있는 말과 임기응변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능력은 발군이었다. 그러나 자기에 대한 공격은 조금도 참지 못하는 조급한 언행과 갈등 유발로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안철수 씨 조용하세요”로 시작된 여의도 식당에서의 해프닝이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대한 조롱과 공격, 윤석열 대통령 비하 등은 그의 인성마저 의심케 하는 언행들이다. 그가 가는 곳에는 항상 갈등과 대결만 있다. 노인 무임승차제 폐지, 젠더 갈라치기 등도 그 예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상생을 도모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반대로 갈등을 유발하고, 이용한다.

물론 이에 부화뇌동, 자기편이면 무조건 찍어주는 유권자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총선거가 다가올수록 이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날 지경이다.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도 우리 사회분열의 한 단면이다. 한편에 치우친 극단적 인사의 개인적 일탈로 보이지만-. 생각하기도 싫지만 해방정국의 극심한 좌우대립이 떠오를 정도다.

이 같은 진영갈등을 치유할 의사는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직무를 팽개치고 있다. 오히려 환자가 늘어 수입이 많아지길 기대하는 악질 돌팔이처럼 여겨진다. 이번 총선에서 그런 돌팔이들을 몰아내는 것 외 이 사회를 치유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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