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해가 바뀌는 때가 되면 사람들은 예언이라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지는 것 같다. 2000년이 되기 전에 지구에 전대미문의 재앙이 닥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공포를 준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의 예언이 다시 등장한 것이 그것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의사이자 점성가인 노스트라다무스가 1555년에 발표한 ‘예언서(Les Propheties)’에서 4행시로 된 예언(?)으로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나 9·11테러를 언급했다고 해서 주목을 받았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겁을 많이 준 1999년 지구멸망설은 허망한 것으로 드러났고 2023년에 ‘적(赤)그리스도’가 나온다는 이야기도 근거 없이 끝났다. 그런데도 미국이나 영국의 호사가들은 또 2024년의 예언이라는 것을 찾아내었고 그것이 우리 언론에도 소개되었다.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 초상.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 초상.

외국 언론이 보도한 노스트라다무스의 2024년 ‘예언(?)’ 가운데 “붉은 적군이 두려움에 창백해진다. 대양을 공포에 떨게 할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 중국과 대만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고, “메마른 땅은 더욱 메말라가고 큰 홍수가 일어날 것”이라는 구절, “전염병으로 인해 매우 큰 기근이 닥칠 것”이라는 구절들을 찾아내어 이것이 극심한 자연재해를 의미한다고 전한 것이다. 심지어는 지난 1일에 발생한 일본 노토(能登) 반도의 대지진이 벌써 그 예언이 정확함을 입증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싣고 있다.

이러한 자연재해 문제야 해가 바뀔 때마다 나오는 것이어서 특별히 엄청난 재난을 예고한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노스트라다무스가 교황에 대해서 “아주 연로한 교황의 선종을 거쳐 로마인이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그중에 있다고 해서, 필자는 이 표현이 정말 뭔가를 예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해보았다.

 성 말라키(1094~1148) 초상.
 성 말라키(1094~1148) 초상.

무슨 말인가 하면 교황에 대해서는 역대 교황이 누가 될 것인가를 미리 밝힌 성 말라키의 예언이라는 것이 별도로 있는데 이 두 예언이 일치하는 게 아닌가 해서다. 성 말라키는 1094년 북아일랜드 아마(Armagh)에서 태어나 1148년에 승천한 대주교로, 1139년 로마 순례 여행을 가다가 영감을 받아 112명의 미래 교황을 보고 그것을 짧은 시 형식으로 묘사해 놓은 일종의 예언시를 발표했고, 그것이 많이 들어맞는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를테면 264대 교황에 대해서는 "De Labore Solis"(태양의 수고로부터)”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가 젊을 때 노동자로 수고를 많이 했고, 역대 다른 어느 교황보다도 각국 순방을 많이 한 점, 또 1920년 3월 일식기간에 태어난 점 등을 고려하면 상당 부분 맞다는 것이다.

또 그다음 265대 교황은 "올리브의 영광"이라는 표현인데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지만 결국엔 다음 교황으로 베네딕토 16세(1927~2022)가 선출되며 이 또한 맞다는 주장이 나왔다. 베네딕토라는 이름은 6세기에 성 베네딕토가 창립한 ‘베네딕토수도회’에서 나온 것으로, 이 수도회의 상징물이 올리브 가지라는 것이고, 새로 등극한 교황이 하고 많은 이름 중에서 하필이면 베네딕토를 골라 쓴 것이 마치 예언을 맞히기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말라키의 예언은 베네딕토 교황 다음 266대 교황이 마지막에서 두 번째라는 것, 그리고 이 교황은 잠시 재위하다가 곧바로 마지막 교황이 등극하는데, 이 마지막 교황은 베드로 2세가 된다고 쓰고 있다고 한다. 첫 교황은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 1세로 간주하므로, 마지막 교황이 베드로 2세라면 그 이후 교황의 시대가 마감한다는 뜻이 된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역사상 처음으로 살아생전에 사임함으로써 새로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물려받았고, 새 교황은 처음으로 유럽이 아닌 남미 출신의 교황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이 교황이 잠시 재위하다가 오래 로마 사람에게 물려준다고 했다는데, 그렇다면 현 교황이 올해 다른 사람에게 교황 자리를 넘긴다는 뜻이 된다. 이것이 말라키의 예언과 같은 것이 아니냐는 호기심이 필자에게 생긴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서 이 부분이 발췌 인용되자 서방 언론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 문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현 교황은 지난 연말로 87세를 넘겼으니 올해는 88세가 된다. 독감과 폐 염증 등으로 지난해 11월에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도 불참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교황청은 지난해 말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던 오랜 관행을 깨고 동성커플에 대해서도 축복을 내릴 수 있다는 해석을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동성의 결혼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기존 교리와는 크게 다른 것이어서 이러다가 정말 가톨릭의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낳기도 한다.

현실에서 교황이 건강이 좋지 않아 바뀐다면 말라키의 예언처럼 마지막 교황이 나오는 것인가, 과연 가톨릭에 교황이 없는 시대가 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현 교황이 동성 커플도 축복할 수 있다고 한 뜻은 그만큼 동성커플들이 많아져서(프랑스의 새 총리도 34세 동성애자다) 이들을 끌어안고 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의 반영이라면, 현대 혹은 미래 사회에서의 종교의 역할이 많이 달라질 수 있기에 예언가들이 그런 비전이나 환상을 본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예언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자꾸 현실 상황과 비교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2000년 새 밀레니엄을 맞으면서 인류에게는 많은 예언, 특히 종말론이 튀어나왔지만 사실 맞힌 것은 우리가 보다시피 거의 없었고, 사후에 억지로 거기에 맞춘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결국 예언이라는 것은 단지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차원의 경고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본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나 말라키의 예언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진위를 떠나서, 당시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져 이런 세기적(?) 예언들이 나와 수백 년 동안 인류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발칸반도(유럽 남동부의 반도)의 노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이 있는 불가리아 출신의 바바 반가라는 여성의 예언에 주목해보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영감을 보고 내린다는 바바 반가의 예언은 인공지능(AI)이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발전을 계속할 것이고, 양자 컴퓨팅의 부상으로 금융·의료·사이버 분야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예언과는 달리 우리들에게는 반가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중세 때 나온 오래된 예언이 맞니 틀리니 하고 불안해할 일은 아니라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점을 보고 길흉을 판단하고 하지만 대부분 한 해가 지나가면서 별 의미 없이 넘어가는 것을 보면 예언이라는 것은 그저 '혹 이런저런 나쁜 일이 닥칠지도 모르니 늘 조심하고 겸허하여야 한다'는 정도의 경고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이런 예언들에 심각하게 귀를 기울일 일은 아니고 오히려 현대에 대한 희망찬 예언들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이면서 올 한 해 보다 즐겁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새해 초에 생각해보는 것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