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신구대 식물원 원장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막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보통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로 인식하는 24절기 중 소한(小寒, 1월 6일)과 대한(大寒, 1월 20일) 사이를 지나고 있다. 가장 추운 시기가 한 해의 시작이라는 것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시기에 우리가 사는 온대 지방의 식물들은 모두 생기를 잃어버린다. 나무들 대부분이 잎을 떨어뜨린 채 몸뚱이를 드러내고 있다. 생기를 잃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생명을 잃은 듯한 모습이다.

겨울에 나무가 잎을 떨구었다는 것은 줄기와 가지, 멀리로는 뿌리로부터 이어지는 물을 포함한 모든 물질의 흐름이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뿌리, 줄기, 가지, 잎 간에 연결이 끊어진 것이고, 달리 말하면 관계가 단절된 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나무가 잎을 달고 있는 동안에는 잎에서 증산 작용이 일어나서 연결된 가지, 줄기,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 올려 생명의 원천으로 사용한다. 물과 함께 나무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무기물도 끌어 올려 온몸에 필요로 하는 곳으로 전달해 몸집을 불리고 새잎을 만드는 등에 사용함으로써 더 왕성하게 생명을 이어간다. 상식으로 알고 있듯이, 나무는 끌어 올린 물을 사용해서 광합성 작용을 통해 탄수화물과 같은 에너지 물질을 만들어 생명을 유지한다. 또 여기에 무기물을 합쳐서 몸을 만드는 데 필요한 또 다른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까 이렇게 잎, 줄기, 뿌리가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나무라는 생명체는 더 이상 삶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식물체의 각 기관 사이의 연결만이 아니다. 뿌리는 땅속의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들과 연결되어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주고받기까지 한다. 또 미생물들은 한 나무와 주변의 다른 나무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숲속의 나무들은 이렇게 연결되어 큰 숲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혼자 사는 나무보다는 숲을 이루고 사는 나무들이 더 건강한 것을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자연에서는 연결이 중요하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연결이 곧 생명이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사람도 살기 위해서는 연결이 중요하다. 누구와 연결되고 무엇과 연결되었는가가 삶을 결정한다. 돈을 버는 것도 결국 연결이다. 물건을 판매한다는 것은 상품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연결하는 사이에 부가가치가 발생하고 연결한 사람에게는 소득이 생기는 것이다.

나무수국의 가지에서 역삼각형으로 보이는 부분이 엽흔(葉痕). 그 안에 점처럼 보이는 3개가 관속흔(管束痕)이고, 엽흔 위쪽으로 혹처럼 보이는 것이 새로운 생장과 연결을 준비하고 있는 동아(冬芽, 겨울눈)이다.
나무수국의 가지에서 역삼각형으로 보이는 부분이 엽흔(葉痕). 그 안에 점처럼 보이는 3개가 관속흔(管束痕)이고, 엽흔 위쪽으로 혹처럼 보이는 것이 새로운 생장과 연결을 준비하고 있는 동아(冬芽, 겨울눈)이다.

겨울나무의 가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많은 연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잎이 붙었던 자리인 엽흔(葉痕)이 보인다. 다시 말해 잎과 가지가 연결되었던 흔적이다. 이 엽흔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과 양분의 통로였던 물관과 체관, 즉 관다발의 흔적인 관속흔(管束痕)을 찾을 수 있다. 겨울나무는 이 밖에도 다양한 연결의 흔적을 남긴다.

나무는 새봄이 되면 새잎과 가지를 만들어 낼 것이다. 새로운 연결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연결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지난가을에 많은 잎, 열매, 심지어 가지들과 단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처럼 우리도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새해에는 새로운 연결을 개척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와, 무엇과 연결되는지가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면 환경을 보호하는 데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과 연결되면 황금만능주의에 물들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는 연결이 곧 가치관이고 정체성인 것 같다.

그런데, 나무가 새로운 연결을 만들기 전에 많은 것과 단절하지만, 줄기와 가지 그리고 뿌리의 연결은 거의 끊어내지 않는다. 즉, 핵심이 되는 것들 사이의 연결은 놓치지 않는 것이다.

새해에는 부정적 구태(舊態)로부터 단절하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연결을 시도해 보고 싶다. 단절하면 가지에 남는 엽흔처럼 아픈 상처 같은 흔적이 몸에 새겨질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연결을 위해서는 단절이 필요하다. 다만, 사랑과 우정 같은 핵심 가치는 끊어내지 않고 좀 더 선한 가치와 연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 글은 1월 25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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