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수업시간에 대학원생이 들려준 이야기다. 회원 수 2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대형 맘 카페에 “시어머니에게 얼마나 자주 전화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왔단다. 곧바로 달린 댓글이 “결혼할 때 얼마 받으셨나요?”였다는 것이다. 그 뒤로 “강남 전세면 일주일에 한 번, 강북 전세면 한 달에 한 번” 식으로 친절하게 전화 거는 횟수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답글이 달렸다고 한다.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인데, 당시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예전 할머니세대가 빨래터나 우물가에서 속삭이던 이야기들이, 어머니세대가 친척 언니동생들과 소곤소곤 나누던 이야기들이, 이젠 낯 모르는 이들이 모인 맘 카페로 흡수되면서, 보다 솔직해지고 더욱 적나라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맘 카페가 어떤 공간인지 왜 생겼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막연히 부정적 편견을 가졌던 것 같다.

한데 최근 5년간의 맘 카페 운영 경험을 담아 출간한 책을 읽으며 그간의 편견과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게 되었음은 물론, 직접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엄마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초저출생 위기를 벗어날 실낱 같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책 속에는 엄마의 복잡다단한 마음이 솔직담백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엄마 마음이 거기서 거기인지라, 내 아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최우선인데, 이런 마음을 가족 이기주의라 경원시하는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행여 엄마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내 아이만 뒤처지거나 왕따가 되면 어쩌나 늘 불안하기에,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모두 엄마니까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살아가려는 정서가 맘 카페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아이 다섯여섯 낳던 시절, 아이는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큰다고 했던 할머니 시대 방식이 박물관으로 들어가야 할 유물이 된 지금, 좋은 엄마의 기준도 전문가마 다 제 각각이요 그마저도 시시각각 변화해서 어느 장단에 춤춰야 좋을지 모를 때가 다반사인 초보 엄마들이, 동병상련(同病相憐)하면서 아이 키우는 데 요긴한 정보도 주고받고, 삶 속에서 경험하는 상처도 위로 받으려 만든 공간이 맘 카페인 셈이다.

모든 것이 멀미 날 정도로 빠르게 바뀌는 세상이고 보니, 양육 현장에서는 드디어 기 업부모(corporate parenting)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예전엔 할머니 엄마, 동네 아줌마들이 구수한 옛날이야기 들려주며, 권선징악도 가르쳐주고 예의범절도 전수해주었건만, 이제 아이들은 디즈니 만화나 어린이 전용 케이블TV를 보면서 선과 악의 가치도 배우고, 도덕과 규범을 배우는 세상이다. 기업부모는 현란한 마케팅 전략을 발휘해서 머리 좋아지는 약, 키 크는 약을 권유하고, 무엇을 먹일지, 어떤 옷을 입힐지, 무슨 동화를 읽혀야 할지, 각종 학습지에 인공지능 과외교사까지 세일즈를 한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왕따가 될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게임기를 사주고야 말았다는 엄마의 푸념에 맘 카페 회원은 100% 공감하며 위로의 답글을 남긴다.

한데 사면초가에 빠진 엄마들이 불만을 느끼는 현실은 따로 있다. 너나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아이=돈 먹는 하마’로 보는 데다, 저출생 위기가 그리 심각하다고 하면서 노 키즈존은 늘어만 가는 현실이 엄마들은 정말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돈 줄 테니 아이 좀 낳으라는 정부 정책 기조도 그렇거니와, 정말 돈 때문에 아이 못 낳겠다는 소리만 강조되는 현실 또한 엄마를 초라하게 만든단다. 설상가상, 아이 셋 데리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주인장의 눈초리가 등에 꽂히는 것을 느꼈다는 경험담에 이르면,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는 것이다.

책 속엔 ‘그래도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 한 일이 엄마가 된 것’이라 고백하는 이들이 차고 넘치는데, 이런 이야기는 쏙 빠진 채 아이 키우는 데 천문학적 돈이 든다거나, ‘육아=전쟁’이라는 부정적 이야기만 떠돌아다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그동안의 고통과 괴로움을 단번에 날릴 만큼 순수한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이요, 그 어떤 것에도 비견할 수 없는 뿌듯함 포만감을 안겨주는 것 또한 아이임을 왜 외면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무한한 희생과 헌신의 화신으로 기억되던 엄마를 이상화하거나 낭만화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좋은 엄마가 되고픈 엄마 마음의 진정성을 지지해주는 사회, 아이가 두 뼘 자라는 동안 엄마도 한 뼘 성장함을 인정해주는 사회, 엄마라는 경험이 멋지고 소중한 것임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사회, 그런 분위기가 널리널리 자연스럽게 퍼지기를 원한다는 맘 카페의 간절한 목소리가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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