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 논설위원, (주)터치포굿 대표

박미현 논설위원
박미현 논설위원

운전을 하지 않는 필자에게 기차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교통수단이다. 빠르게 전국을 쏘다닐 수도 있고 폭신한 의자에서 잠을 푹 잘 수도 있다. KTX는 자리마다 테이블이 있어 돌아오는 길에 출장 보고서를 써서 보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심지어 객차 내 와이파이도 제공되고 운이 좋으면 충전기까지 딸린 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어 많은 일이 해결 가능하다.

최근 전주역에 갔다가 새로 출력해서 붙인 듯한 커다란 안내문을 보게 됐다. 무심코 지나쳤다 다시 돌아가서 한참 읽어보았다.

누군가 무거운 짐을 갖고 온다면 나눠 들기 위해서나 헤어지기 아쉬워 승강장까지 따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입장권 말인가? 이제는 사라진 제도라고 생각했는데 의아스러웠다. 예전이야 종이 기차표를 사서 기차를 타기 전에 (승강장에 입장하고 퇴장할 때) 검표를 하거나 태그를 하던 방식이었으니 승강장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이 있었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도 유지되고 있었단 말인가? 검표 자체가 기차 안에서 이루어지고, 승강장으로 가기 위한 문 자체가 사라진 지금도 말인가?

승강장에 출입하려면 입장권을 구입한 뒤 이용하라는 안내문.
승강장에 출입하려면 입장권을 구입한 뒤 이용하라는 안내문.

그러고 나서 살펴보니 바닥에 운임경계선 표시가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 모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운임경계선을 넘고 있었다. 운임을 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승객의 지인도 다수 보였지만 신경 쓰는 이는 나 하나였다. 이대로라면 이 입장권이 한국철도공사의 재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닐까? 궁금하던 차 때마침 기차가 도착하여 착석 후 와이파이를 이용하여 입장권 제도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정확한 정보를 찾는 데 실패했다. 어느 역에서는 입장권을 구매하라는 방송도 하고 있다고 하고, 어떤 관계자는 기차에 타지만 않으면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된다고 답변을 했다고 하고, 특정 역에 방문 사실을 확인하는 입장권을 수집하는 사람이 있어 인기 있는 기념 역에서만 입장권을 발행한다는 말도 있고, 무엇이 정확한 사실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2017년 KTV에서 방영한 유명무실한 기차역 입장권이라는 기사도 있었는데, 입장권의 목적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500원짜리 입장권이 철도공사의 수익을 위한 것은 아니고 승강장 인원을 조정하기 위한 안전 목적이며, 승강장에서 사고가 났을 때 입장권이 없으면 약관 규정을 어긴 것이어서 손해배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임경계선을 넘었다고 해서 기차역에서 일어난 사고가 여객 책임만 된다는 사례가 있는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겠다. 실제 사고가 일어나면 사고 원인을 따지겠지 입장권 구매 여부만으로 책임 소재가 정해진다면 너무 이상한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니어서 평소 같으면 포기했겠지만 기차 안에서 딱히 다른 할 일이 있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아서, 내친김에 코레일 운영규정까지 다운받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철도공사 여객운송약관(2019.07.05. 개정).
한국철도공사 여객운송약관(2019.07.05. 개정).

물론 내가 못 찾은 것일 수 있지만 홈페이지에서 입장권에 대한 내용을 찾지는 못했다. 어느새 3시간의 기차 여정이 끝나 더 이상 검색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말 열차라 그런지 승강장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짐을 가득 든 사람들이 오르고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며 새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를 실수로 밀쳐서 기차선로로 떨어지는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승강장 입장권이 정말 안전을 목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면, 제대로 관리를 해야 한다. 나중에 작은 사고라도 일어나고 나서야 입장권 검표소를 부랴부랴 만들지 말고 말이다. 요즘은 앱으로도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다. 그러니 입장권 제도를 유지하려면 자동판매기나 매표소만 이용하도록 할 게 아니라 앱으로 구매할 수 있게 변경해야 한다.

반대로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에만 추가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것으로 관리를 하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운영해도 된다면 아예 명확히 입장권 제도를 폐기해야 할 것이다.

내 삶에도 더 이상 의미가 없는데도 관성적으로 해오던 것이 많다. 1년에 한두 번이나 겨우 보면서도 꼭 책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탁상달력이나 결국 휴대폰에 입력하면서 주고받는 종이 명함, 다시 가지 않을 거면서도 혹시 모른다며 받아두는 포인트 카드 등 잠시만 둘러봐도 꽤 많아 보인다.

새해에는 관성보다는 깨어 있는 의미를 따져보고 꼭 필요한 일로 주위와 마음을 채울 수 있는 한 해를 운영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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