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시내 여기저기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최고조다. 서울에서는 몇 년 전부터 여러 백화점 간에 크리스마스 장식과 야경을 두고 벌이는 경쟁이 재미있고 볼 만하다. 디지털 그래픽기술과 LED 등 조명 분야의 발전으로 이전에는 꿈꿀 수 없던 것들이 이제는 그야말로 여반장이다. 시민들은 여러 곳에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좋고 시 당국은 민간부문이 투자를 해서 도시를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보기만 좋을 뿐 아니라 짧은 기간에 수익도 만만치 않으니 모두에게 즐거운 일이다.

이쯤 되니 서서히 그럼 원조 크리스마스 나라에서는 어떻게 도시 속 크리스마스를 꾸미고 노는지 궁금해진다. 이리저리 유튜브와 웹 서치를 통해 유럽이나 미국 도시 속을 헤치며 거의 실시간 크리스마스 산책을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곳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빛내는 것 중 하나는 도심에 설치되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아닐까 생각한다. 백화점이나 큰 쇼핑센터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맛과 멋을 자랑한다.

건물 전체를 사용하여 크리스마스 관련 주제를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미디어 파사드(S백화점). 사진: 김기호, 2023
건물 전체를 사용하여 크리스마스 관련 주제를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미디어 파사드(S백화점). 사진: 김기호, 2023

현대적인 도시 속에 전통적 형태의 작은 크리스마스 마을이 만들어지는 것이 특이하다. 야외 광장에 설치된 키오스크 사이로 난 마을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삼삼오오 모여 음식이나 따끈한 와인(뱅쇼(Vin Chaud, 프랑스), 글뤼바인

(Gluehwein, 독일), 멀드 와인(Mulled Wine, 영국/미국))을 마시는 것은 크리스마스 시즌만의 맛과 멋이다. 공예소품 등도 중요 살 거리다. 회전목마나 작은 눈썰매장도 어린이들을(실은 어른까지도) 위해 준비된다. 자연스럽게 어린이와 함께 온 사람들로 때로는 가족축제 같은 분위기가 넘치기도 한다. 물론, 말구유에 놓인 아기예수와 동박박사를 모형으로 만들어 놓아 예수 오심을 일깨우는 곳도 있다.

독일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Kaiser Wilhelm Gedaechtniskirche) 옆의 크리스마스 마켓(Weihnachtsmarkt) 사진: https://www.schaustellerverband-berlin.de/piro/xpic/wm_01.jpg
독일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Kaiser Wilhelm Gedaechtniskirche) 옆의 크리스마스 마켓(Weihnachtsmarkt) 사진: https://www.schaustellerverband-berlin.de/piro/xpic/wm_01.jpg

다시 서울로 돌아와 도심을 거닐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살펴보니 우리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겨울축제를 즐기고 있다. 백화점 등 민간부문이 첨단의 미디어 파사드나 장식으로 사람들을 시내로 나오게 해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유럽형 크리스마스 가로와 이야기가 있는 미디어 쇼(남대문로 L백화점 저층부). 사진: 김기호 2023
유럽형 크리스마스 가로와 이야기가 있는 미디어 쇼(남대문로 L백화점 저층부). 사진: 김기호 2023

그런데 서울에는 사실 서구 도시의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불리는 곳은 없다. 아마도 오래된 기독교국가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서구에서도 이미 크리스마스마켓은 종교와 관계없이 관광과 비즈니스가 중심인 것이 사실이다. 서울 도심 크리스마스 산책을 하며 보니 명동길이 바로 크리스마스 마켓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명동길. ‘명동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불러도 좋을 활력과 분위기가 있는 가로. 사진:김기호, 2023
명동길. ‘명동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불러도 좋을 활력과 분위기가 있는 가로. 사진:김기호, 2023

눈을 즐겁게 하는 남대문로변 미디어 쇼나 유럽가로 모형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명동길로 들어서면 그곳에는 또 다른 크리스마스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가로수에 간단한 조명장식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면서 가운데 길의 좌우에 늘어선 수많은 키오스크에서는 다양한 즉석 음식을 내놓아 입이 즐거워지고 이제야 정말 축제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역시 축제는 먹을 것이 있어야 제격이다.

그러나 서울 도심의 겨울 놀이는 이게 다가 아니다. 광화문에서 세종대로 축을 따라 일어나는 ‘서울윈타’(Seoul Winter Festa, 2023.12.15.~2024.1.21.)가 있다. 광장과 하천 등 도시공간을 무대로 일어나는 다양한 외부활동은 ‘명동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얻은 몸무게를 되돌리게 해준다. 시청광장의 스케이트장, 청계천의 수변산책 빛 초롱 축제, 광화문 광장 ‘서울라이트 광화문’과 마켓 등이 즐거운 야외활동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좀 늦게(12월 15일) 시작하는 것이 아쉽지만 결국 크리스마스와 겹치며 겨울축제의 중요한 부분이다. 도심 7개 장소(송현동 솔빛축제, 세종대로 ‘자정의 태양’, DDP 서울라이트 포함)에서 야외활동과 빛의 축제를 펼쳐가며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로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된다.

시청광장 스케이트장. 루미나리에 빛 축제(2007)와 함께 조성된 모습. 2020∼2022 3년 간 코로나로 개장 못하고 올해 12월 22일 재개장 예정, ‘서울 윈타(Seoul Winter Festa)’의 중요 거점이다. 사진: 김기호, 2007.
시청광장 스케이트장. 루미나리에 빛 축제(2007)와 함께 조성된 모습. 2020∼2022 3년 간 코로나로 개장 못하고 올해 12월 22일 재개장 예정, ‘서울 윈타(Seoul Winter Festa)’의 중요 거점이다. 사진: 김기호, 2007.

이처럼 풍부한 서울 도심 겨울축제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두 개의 축(남대문로축; 민간 중심 축제, 세종대로축; 공공 주관 축제)이 공간적 및 시간적으로 연계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남대문로 축과 세종대로 축은 300∼500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러나 스케이트장(시청광장)에서 미디어 파사드(S백화점)로 가는 소공로는 어둡기 그지없고, 을지로 입구(유럽형 크리스마스가로, L백화점)와 ‘명동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가는 길(남대문로 7길)도 마찬가지로 어둡고 지그재그로 찾아가기 쉽지 않다. 양쪽 축을 연결하는 가로도 밝고 즐겁게 하고 양축에서 일어나는 행사 하이라이트도 시간적으로 조절하면 사람들이 두 축 사이를 오가며 즐기는 스릴도 있고 시너지효과도 만들어질 것이다.

겨울축제가 시민들을 집 밖으로 불러내어 겨울 건강도 증진하고 어둠 속에 빛으로 새로 태어나는 도심 가로와 건축을 즐기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국내외 방문객으로 경제적으로도 성과를 거둬 모두가 즐겁게 새해를 맞이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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