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논설위원, 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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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는 정의하기 어렵지만 악영향이 크다. 사실에 바탕을 둔 사회구성원들 간의 이견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거짓이 바탕이면 모든 게 사상누각이니 사회적 피해가 크다. 이를 막는 중요한 장치가 법정의 재판일 것이다. 최근 거짓말이 특히 의도적이고 악의적이어서 엄청난 배상 판결이 나온 경우가 미국에서 있었다. 이런 징벌이 가짜 뉴스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주 미국의 한 연방 법원에서 배심원단이 피고인 줄리아니(Rudolph Giuliani, 79) 전 뉴욕 시장에게 1억4800만 달러(약 1900억 원)를 명예훼손 피해자 2명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인당 국민소득(GDP)이 우리의 약 2배가 넘는 부자나라이지만 배상 규모가 상당히 크다. 이미 여러 송사에 휘말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내놓았다는 줄리아니가 감당할 재간이 없으니 파산절차를 밟는 게 수순일 듯하다.

    바닥없는 트럼프 측근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의 나락

줄리아니는 승승장구하던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었다. 연방 검사로 뉴욕의 마피아 조직을 사법처리해 인기가 높아지자 민주당 세(勢)가 센 뉴욕시에서 공화당 후보로 시장에 당선되었다. 두 번째 임기 말인 2001년에 9·11테러가 발생하자 발로 뛰며 수습에 전념하는 모습이 언론에 부각되며 ‘미국의 시장’이라 불렸고, 그해 연말에 시사 주간지 타임이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였다.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예비 후보군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2016년 대선 즈음부터 트럼프의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그의 행로는 크게 꼬이기 시작했다.

기자회견에서 머리 염색약이 흐르는 모습의 줄리아니. 이 사진을 캡처한 LA Times의 기사 제목이 ‘줄리아니의 비극과 웃음거리’이다 (2022년 9월 13일)
기자회견에서 머리 염색약이 흐르는 모습의 줄리아니. 이 사진을 캡처한 LA Times의 기사 제목이 ‘줄리아니의 비극과 웃음거리’이다 (2022년 9월 13일)

 

 

2020년 대선 패배 후 선거를 도적맞았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측근이 꾸민 ‘선거 결과 뒤집기’ 간계에서 줄리아니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번 배상 사건의 발단은 줄리아니가 퍼트린 헛소문이다. 그는 바이든이 승리한 조지아주의 선거 결과가 조작되었고, 모녀 관계이며 평범한 주 공무원으로 투표 관리 업무에 종사했던 원고 2인이 선거부정 가담자라고 실명을 언급하여 지목했다. 투표장 CCTV 영상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멋대로 해석해 누명을 씌운 것인데, 예를 들어 민트사탕을 건네는 모습을 결과 조작을 위한 저장장치(USB)를 교환하는 증거라고 했다.

원고인 흑인 모녀의 신상이 인터넷에서 털리고 선거 부정으로 졌다는 트럼프의 선동에 분개하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추종자들의 위협과 괴롭힘이 뒤따랐다. 도망치듯 이사를 했지만 괴롭힘은 집요하게 이어졌다. 배상액 중 약 반이 징벌적 배상금(punitive damages)으로 실제 손해를 넘어서는 악행을 징벌하는 의미의 금액이다. 향후 배상액이 조절될 수도 있으나 재력가가 아닌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게 확실시된다.

줄리아니는 적지 않은 징역형 개연성이 있는 혐의로 연방 법원과 조지아주 법원에서 형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는 민사 재판 과정에서도 법정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고, 횡설수설하며 제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도 보여 그의 음주벽이 원인이 아니냐는 추측을 자아냈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소송 변호 비용을 지원해 달라고 트럼프에게 요청했으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줄리아니는 아마도 새롭게 주목을 받을 일이 없을 듯하다. 재판이 산 넘어 산이다. 2020년 선거 부정에 연루됐다는 가짜 뉴스를 퍼트린 Fox New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8억 달러(약 1조 4000만 원)의 배상금을 받기로 합의한 투·개표기 업체 도미니언이 줄리아니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줄리아니의 민사 재판을 평가하는 글에서 허위와 억지 주장으로 일관한 그를 MAGA와 트럼프의 진면목이라고 평가했다.

  가짜뉴스 자체보다 더 황당한 건 믿는 사람이 많은 것

두 번째 가짜 뉴스 사례 주인공은 알렉스 존스(Alex Jones, 49)라는 극우파 음모론자이다. 음모론이 워낙 황당하고, 지명도가 높아진 후 이를 치부하는 데 이용했던 악인으로 민사소송을 통해 천문학적 배상금 지급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2013년 시위 중인 알렉스 존스. 위키리크스 캡처.
2013년 시위 중인 알렉스 존스. 위키리크스 캡처.

 

2012년 12월 14일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20세 청년이 집에서 총으로 어머니를 살해한 후 샌디 훅 초등학교(Sandy Hook Elementary School)로 가 6, 7세 어린이 20명과 성인 교직원 6명 등 26명을 반자동 소총으로 쏘아 죽인 후 자살한 사건이 코네티컷주에서 발생했다. 사망한 어머니는 10여 정이 넘는 총기를 소지한 애호가로, 자식들에게도 총 쏘기를 가르쳤다고 한다. 코네티컷주 역사상 최악의 총기 범죄였기에 당연히 총기 규제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고, 여러 시도가 있었다. 총기 숭배가 대형 사교(邪敎)인 나라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전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를 위시한 총기 애호가들이 거품을 물고 반대했다. 수십 년간 그들의 로비로 인해 연방이나 주 의회는 제대로 된 규제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존스는 이 어린이 총격 학살 사건은 배우들이 동원되어 연기한 쇼이며 아이들은 다 살아있다는 취지의 음모론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한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히틀러가 왜 독일 의사당(Reichstag)을 폭파했을까?--휘어잡기 위해서지! 왜 정부가 이런 일을 꾸며내는지 아나?--우리의 총기를 뺏어가기 위해서지! 왜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 상상하기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음모론을 믿었다. 존스가 이런 유(類)의 음모론 전파 수단으로 삼는 그의 라디오 방송국과 인터넷 방송매체가 매년 큰 수입을 올렸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민간요법 발기부전 치료제와 같은 건강보조식품의 방송 판매가 주된 돈벌이 수단이었다.

하루아침에 참혹하게 아이를 잃은 청천벽력을 맞은 유가족을 향한 존스와 동조자들의 의혹 제기와 조롱은 가히 악질적이었다. 부모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유족 일부가 존스를 상대로 코네티컷과 텍사스주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작년 말 총 15억 달러(약 1조 9500억 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 전에 이미 그가 설립한 회사가 파산 신청을 했고, 판결 후 존스도 파산 신청을 했다. 하지만 올해 10월 텍사스의 파산법정 판사가 "파산을 통해 11억 달러의 '의도적이고 악의적 행동'에 따른 배상액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현재 존스는 배상 지급 방식에 대해 협상 중이라 한다. 다른 유가족의 소송도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 가짜 뉴스로 돈 벌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TV나 신문을 보지 않고 유튜브만 본다는 사람을 가끔 본다. 유튜브를 음악과 취미활동 용으로만 이용하는 필자는 좀 걱정스럽다. 물론 주류 매체의 왜곡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나쯤 확인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미국의 경우 폭스뉴스나 인터넷 매체만 보는 사람들과 MAGA의 음모론자들이 음험한 공생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한국판 MAGA가 창궐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언론의 신뢰 회복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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